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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작다고 생각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잘 드러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달라.” 지난 3월5일 국회 통합민주신당 대표실. 손학규 대표를 대신해 나온 우상호 대변인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 거부 여부를 묻는 항의 방문단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임명권자가 임명을 강행하면 막을 방법은 없다. 양당은 청문회 날짜를 놓고 지난주 내내 입씨름을 벌였다.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 유관 업무를 합쳐 맡게 될 방송통신융합위원회(방송위)가 출발부터 삐거덕거린다. 방통위 통합 사무실이 들어설 서울 광화문 KT 사옥 바깥에는 변변한 간판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목동 방송위 사무실에서는 떠나기 위해 꾸려놓은 짐꾸러미들이 아직 광화문을 향해 출발하지 못했다.
최시중 후보자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요란하다. 정점은 MB의 ‘멘토 중의 멘토’라는 것이다. 그는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과 50년 친구 사이다. ‘미디어 빅 브라더를 꿈꾸는 이명박 대통령을 위한 형님 인사’라는 비아냥은 여기에서 비롯했다.

거꾸로 궁금해진다. 일흔이 넘은 ‘그런 거물’을 굳이 거친 일선에 배치한 까닭이 뭘까. 주변에서는 방송통신위원회 업무의 중요성과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난관의 험난함, 직접 그 과정을 챙기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집약된 인사라고 본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신문·방송 겸영과 MBC와 KBS 2TV 민영화 문제 등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방통위원장은 어차피 정치적 자리” 반론도

청문회 이전에 이미 최 후보자에 대해서는 여러 갈래의 의혹이 불거졌다. 신고 재산이 78억원에 이르는 그는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는다.  한국갤럽 회장 재직 시절인 1997년 대선 때 여론조사 공표가 불법인 기간에 미국 대사에게 관련 내용을 알려주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최시중 카드를 접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조·중·동’은 그가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실행력과 추진력을 암시할 뿐, 과거 노무현 후보 언론특보 출신인 서동구씨가 KBS 사장으로 내정되었을 때와는 판이한 잣대를 적용한다. 

미디어 평론가 백병규씨는 “이명박 정부가 정권 인수 및 조각 과정에서 여론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 상당한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 만큼 우호 언론 의존은 더욱 심해지고, 방송 매체를 활용한 여론 동원의 유혹도 커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유재천 한림대 특임 교수는 “방통위원장은 어차피 정치적으로 임명하는 자리다. 대통령 측근이어서 문제가 되는데 본인이 방송 독립성에 대한 신념을 갖고 있으면 오히려 독립성을 지키는 데 더 좋을 수도 있다. 그 밑과 주변에서 이런저런 인사가 개입하려고 할 때 대통령이 이래라저래라 하기보다는, 최시중씨는 힘이 있기 때문에 바람막이 구실을 할 수 있지 않겠나. 그는 외풍을 막아낼 만한 인사이다”라고 말했다. 활동의 독립성을 해칠 수 있는 외풍이나 외압으로 기존 방송사 노조와 언론계 시민단체 등을 겨냥하는 것이다.

지상파 방송으로서는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대통령의 마인드 자체가 위협적이다. 지상파 방송의 위기는, 미디어 환경 변화 그 자체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유선방송의 약진 등으로 보도 기능을 제외하고는 지상파 방송사의 독점 지위는 현저히 약해졌다. IPTV 등 차세대 방통 융합 서비스가 전면화하면 이런 흐름이 더욱 가속된다. 방통위가 당선자 스타일을 좇아 산업 논리에 충실할 경우 지상파 방송의 영향력은 자연스럽게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가장 단적인 예가 디지털 전환 작업이다. 오는 2012년 아날로그 방송이 종료되고 2013년부터 디지털 방송 서비스가 시작된다. 총 2조원가량 재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된다. 합의된 원칙은 방송사가 충당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상파 수입은 정책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 이미 한국방송광고공사를 통해 배분되는 방송광고 유통 경로를 손질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지 오래이다. 조짐이 심상치 않다. 2007년 정부는 ‘디지털전환촉진에 관한 특별법’을 마련했는데, 올해 2월26일 국회를 통과하면서 재원 관련 대목이 수정되었다.

또 있다. 지난해 말 논란 끝에 지상파 중간광고를 허용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실행 여부는 불투명하다. 방송위의 인수위 보고 사항에 중간광고 실행 방안에 대한 내용이 빠진 것이다. 새로 출범한 방통위가 이전 정부에서 결정한 대로 지상파 방송에 덜컥 선물을 안겨줄 이유가 없다. 설혹 주더라도 천천히, 지상파 방송의 태도를 보아가며 주어도 늦지 않다.

ⓒ시사IN 윤무영지난 3월5일 국회에서 ‘독립성이 요구되는 방통위원장에 부적합하다’며 최시중 후보 지명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진 언론계 관계자들.
방송과 통신 정책이 결합되어야 할 융합 업무에서 중점이 어디에 주어질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융합 논의가 벌어질 때마다 방송과 통신은 주도권을 놓고 신경전을 벌여왔다. 방·통 융합이나 통·방 융합이냐를 놓고도 좀체 양보를 하지 않았던 것이 한 예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관심 추가 통신 쪽에 기울었다는 징표가 또렷하다.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실 아래 방송통신비서관실이 ‘통신통(通)’으로 속속 채워지는 것이다.

방통비서관(1급)에 임명된 중앙대 양유석 교수는 대표적인 통신통이다.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텍사스 대학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91년부터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연구위원으로 일했다. 이후 아주대를 거쳐 현재 중앙대 국제대학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정통부 정보통신정책심의회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양 교수는 중앙대 출신이지만 박범훈 총장과의 관계보다는 이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시절부터 직접 안면을 익혔다. 대표적 학계 MB 인맥인 유장희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언급한 바에 따르면 양 교수는 유 교수가 이 대통령과 연결해준 전문가 그룹의 한 멤버였다.

이 밖에 방송통신비서관실 행정관으로 황철증 전 정통부 국장(2급), 이상진 전 정통부 팀장(3급)을 발령했다. 방송계에서는 신상근 전 방송위 시청자지원실 시청자지원팀장(4급) 한 명이 발령받았을 뿐이다. 그런데 방송위에서 파견된 인물조차 방송위에서 맡았던 업무가 방통 융합과는 거리가 먼 데다 방송위 입사 전에 조선일보사에서 여성 월간지 기자로 일한 이력이 있다. 한나라당에서 당 몫으로 고려 중인 인물도 대부분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출신이다. 방송계 인물로는 양휘부 전 방송위 위원이 거명되지만 방송계 정원이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민주당이나 언론단체가 야당 몫 두 명을 모두 방송을 대변할 인물로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는 이런 위기감이 두루 깔려 있다. 지난주 내내 수면 위에서는 최시중 후보자에 대한 자격 논란이 분분했지만, 동시에 물밑으로는 나머지 방통위원을 둘러싼 신경전이 치열했다.

MBC ‘뜨거운 감자’, KBS2 ‘질긴 고기’

그 과정에서 민주당과 언론단체 사이의 긴장감도 만만치 않았다. 불만은 범방송계로부터 터져나왔다. 2월 법안 통과 때 졸속 처리한 민주당이 방통위원 구성에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지 못한 채 내부 정치에 골몰했다는 것이다. 김효석 원내대표가 누구를 짚자, 손학규 대표가 자신의 사람을 올렸다,는 식의 소문이다. 3월5일 우상호 대변인이 항의단을 만나자마자 ‘당 지도부가 방통위원 인선을 위한 추천위원회를 꾸리기로 했다’는 사실을 맨 처음 꺼낸 것도 외부의 반발 기류를 읽었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지상파 방송으로서는 임명을 막지 못하더라도 최시중 자질 논란을 키워가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과거 방송위원회와 달리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위원장 자리는 다른 상임위원과 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 위원장에 대해 견제력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이번 기회에 그의 부적격성을 조금이라도 더 부각해야 한다.

한나라당 방송특위 간사인 이재웅 의원은 청문회 조정에 난항을 겪자 “본인들이 인정해 통과시켜놓고 이제 와서 대통령 직속 기구인 것을 문제삼으면 어떻게 하느냐”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말은 절반은 맞다. 열린우리당 시절 정부가 내놓은 초안은 방통위를 대통령 직속 기구화하는 것은 물론 방통위원 5인을 모두 대통령이 임명하는, 더욱 화끈한 행정기구였기 때문이다. 방송계 한 관계자는 “솔직히 한나라당 법안이 더 균형 잡힌 것으로 비칠 정도였다. 누군가 ‘참여정부가 놓은 다리로 이명박이 건너왔다’고 표현하는데, 공공성에 대한 인식 부재라는 점에서는 참여정부나 이명박 정부나 다를 게 없다”라고 꼬집었다.

방송과 통신이 융합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통합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직제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충분히 사회 공론화를 거쳐야 하는 사안이었다. 과거 방송위가 독립 기구로 출범한 것은, 1998년 방송개혁위원회 결정에 따른 것으로 방송의 공공성을 제대로 확보하기 위한 방안이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이전 참여정부 스스로 이 화두를 버렸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방통 융합 논의에서 공공성이라는 화두가 부각되지 못하는 데 위기감을 피력했다. 그는 “산업 논리로는 공공성에 관심을 돌리기 어렵다. 과거 참여정부도 방송 미디어의 공공성에 대한 천착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신문·방송 겸영 허용으로 보수 신문사가 지상파 방송을 ‘먹지 않겠느냐’는 위기감은 실체가 있는 것일까. 언론계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기존 지상파 방송을 민영화하고, 그것을 신문사가 소유하는 문제는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런데도 화두처럼 방송계에 돌아다니는 이유는, ‘순치를 위한 압박용’ 혐의가 짙다는 것이다. 그는 “MBC는 정수장학회가 박근혜 전 대표 소유라는 점 때문에 ‘뜨거운 감자’이고, KBS 2TV는 덩치도 크고 기존 인력을 컨트롤하는 문제 등으로 ‘질긴 고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케이블 보도 채널인 YTN의 위기감이 가장 크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 지난해 중순 증권가에서는 YTN 인수설이 파다했다. 인수 주체로 언급된 곳은 SKT. 신문의 방송 겸영이 허용되면, 특정 일간지가 돈이 많은 곳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상당 지분을 매수 할 수 있다. 조선이나 중앙에 비해 통합 미디어 전략이 또렷하지 않았던 동아일보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자명 노순동, 고동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lazys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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