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찬란한 문화유산 하나를 시내 곳곳에서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팔랑크스라는 이름의 아주 유명한 보병전술이 바로 그것이다.

보병밀집방진(步兵密集方陣)이라고도 불리는 이 전술은, 이름 그대로 보병들이 직사각형 대형으로 빽빽하게 모여 서서 벌이는 싸움 방식이다. 직사각형은 옆으로 긴 모양이고, 좌우로는 한없이 길어질 수 있지만 폭은 네 줄이나 다섯 줄, 때로는 그보다 몇 줄이 더 많은 정도다. 병사들 손에는 주로 창이 들려 있고,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많은 경우에 방패가 들려 있다. 기세 좋게 달려들어 쾅 하고 부딪치기보다는, 대형을 유지한 채 조금씩 상대를 향해 전진하는 방식으로 싸운다.

전술의 핵심은 말 그대로 ‘줄’인데, 대열을 유지함으로써 수백, 수천 명의 개인을 하나의 강력한 폭력수단으로 압축해낼 수 있다. 그러므로 ‘군대의 핵심이 사기’라는 말은 레토릭(수사)이 아니다. 하나의 압축된 집단으로 싸우느냐 과격한 개인의 단순한 합으로 싸우느냐를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가 바로 이 ‘사기’이기 때문이다. 줄지어 늘어서 있는 어른 남자 무리를 본다는 건 그것 자체만으로도 기가 꺾이는 일이며, 고대 그리스나 로마제국의 영광이 이 밀집방진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야만족’은 이런 형태로 줄을 지어 싸우지 않으며, 이런 문명화된 군대와 마주칠 경우 아무리 거칠어 보이는 병사들이라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굴복해버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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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줄의 위력이 얼마나 강한가 하면, 판금 갑옷과 장창으로 무장한 중세 기사군의 기병 돌격도 대열이 흐트러지지 않은 팔랑크스는 무너뜨리지 못했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웬만큼 단련되지 않은 인간은 돌격해오는 기병 앞에서 줄을 유지하기가 어려운데, 그래서 줄을 유지한다는 것은 곧 훈련의 강도와 사기를 나타내는 척도가 된다. 서양 전쟁 영화에서 포탄이 날아드는 전장 한가운데에 선 지휘관이 전열을 유지하라고 목이 터져라 외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 텐데, 그것도 결국은 방진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늘어선 줄의 모양이 무너지는 순간 그 군대는 패주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역시 줄이 핵심이라는 뜻이다.

전쟁사를 3년쯤 공부한 다음이었다.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그 보병밀집방진이 시내 곳곳에 일상적으로 전개되곤 하는 나라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지하철역 입구에, 광장으로 가는 길 곳곳에, 퇴근길 인도 한가운데에, 그리고 차들이 멈춰선 도로 중앙에.

왜 국가가 먼저 전개하는 폭력을 비판하지 않나

국가는 종종 이런 말을 한다. 시위대가 먼저 무기를 들었다고. 그런데 참 이상하다. 국가가 먼저 보병밀집방진을 전개했는데도, 국가가 먼저 대단히 압축적으로 조직된 폭력을 길 위에 전개했다고 비난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혹시 국가가 광장 한가운데에 학익진 같은 걸 전개했다면 여론이 좀 떠들썩해졌을까. 그런데 보병밀집방진은 절대 학익진보다 덜 강력한 전술이 아니다. 2000년이 넘도록 세계 곳곳에서 전장을 지배한 전술이다.

손에 치명적인 무기를 들지 않았으니 공격 의도는 없었다고? 앞에도 말했지만 핵심은 개인장비가 아니라 ‘줄’이다. 건장한 20대 남자 수백 명이 광장 한가운데에 투구와 방패와 곤봉만으로 무장한 채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발견된다면, 국가 또한 그것을 위협행위로 간주할 것이다. 그러니 국가가 먼저 팔랑크스를 전개했다면, 먼저 위협을 가한 쪽은 당연히 국가다.

결론은 이렇다. 국가가 시민을 상대로 보병밀집방진을 전개하는 행위는 반드시 엄격하게 통제되어야 한다. 심지어 국가도 아닌 것이 그런 짓을 한다면, 그건 물론 말할 것도 없고!

기자명 배명훈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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