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유럽 안에서도 외교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대표 주자로 통한다. 부정선거 의혹 이후 루카셴코 대통령이 반정부 인사들을 탄압하자 유럽연합(EU)은 지난 2월 이에 항의하는 표시로 벨라루스 고위 관료들에 대한 비자 발급 금지 조치를 취했다. EU는 또 벨라루스의 고위 경찰관 2명과 판사 19명을 비자 제한 블랙리스트에 추가했는데, 이 블랙리스트에는 루카셴코 대통령과 그의 두 아들을 포함해 230명이 넘는 벨라루스 인사가 포함됐다. 이로써 이들은 EU 국가로 입국이 금지되는 것은 물론이고 EU 은행에서 이들의 계좌가 발견되는 순간 곧바로 동결되는 상황을 맞게 됐다.

이 같은 제재 조치에 가만히 당할 루카셴코가 아니었다. EU 주재 벨라루스 대표와 폴란드 주재 대사를 소환함과 동시에 루카셴코는 벨라루스 수도인 민스크 주재 EU 대표와 폴란드 대사에게 “우리의 강경한 입장을 자국 지도부에 전달하라”며 벨라루스를 즉각 떠나라고 통보했다. 벨라루스 외무부의 안드레이 사비니흐 공보실장은 이날 외무부 사이트에 올린 성명에서 “벨라루스에 대한 압력이 계속될 경우 우리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다른 조치들이 취해질 것이다”라고 엄포를 놓았다. 


ⓒAP Photo귀도 베스터벨레 독일 외무장관.

이에 질세라 EU도 반격에 나섰다. EU 회원국 대표들은 브뤼셀에서 긴급 비상회의를 열고 모든 회원국들이 벨라루스 주재 대사를 소환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벨라루스에 주재하는 27개 회원국 대사가 한꺼번에 소환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이다.

캐서린 애슈턴 EU 외교대표는 “단합과 통합의 표시로 민스크에 있는 모든 EU 회원국 대사들을 본국으로 소환하기로 합의했다”라고 강조했다. 미국도 벨라루스 편이 아니었다. 마크 토너 미국 국무부 부대변인도 “벨라루스 정부가 EU 대표와 폴란드 대사를 추방하고 EU 주재 자국 대표와 폴란드 대사를 소환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이 같은 행동은 벨라루스의 고립을 심화시킬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유럽의 ‘왕따’ 신세가 된 루카셴코는 런던 올림픽에도 참석할 수 없었다. 런던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벨라루스 올림픽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루카셴코 대통령의 올림픽 참석 신청 등록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루카셴코는 막말 파문도 곧잘 일으켜왔다. 지난 3월 루카셴코 대통령은 한 스키 행사장에서 “한 명은 바르샤바에, 또 다른 한 명은 베를린에 살고 있는데 (나에게) 독재자라며 악을 쓰는 두 번째 사람의 얘기를 들었을 때 ‘게이가 되느니 독재자인 편이 낫지’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다. 여기서 두 사람은 벨라루스 정부에 대한 외교적 제재 조치를 앞장서 이끌고 있는 라도슬라브 시코르스키 폴란드 외무장관과 귀도 베스터벨레 독일 외무장관을 가리킨 것이다. 특히 두 번째로 언급된 귀도 베스터벨레 독일 외무장관은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한 바 있는데, 루카셴코가 이를 공개적인 조롱거리로 만든 것이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지난해에도 한 회담 자리에서 베스터벨레 외무장관에게 “정상적인 삶을 살 필요가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 뒤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이 쏟아지자 그는 자신의 발언을 사과하면서도 “난 동성애자가 싫다”라며, 끝까지 베스터벨레 외무장관에게 막말을 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기에는 믿기 힘들 만큼 서툰 외교력을 보여준 셈이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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