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성신여대 교수.언론인)전통적으로 언론에 영향을 끼쳐온, 혹은 끼치려 노력해온 국가와 자본에 더하여 수도 없이 많은 이해집단에 둘러싸여 있는 언론이 추구해야 할 지고의 가치는 독립성일 수밖에 없고, 그 기본은 사실과 진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미국 공영방송 PBS의 저녁 뉴스 진행자인 짐 레러(Jim Lehrer)는 우리에게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가끔씩 미국 대통령 선거 후보 토론의 사회자로 나온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는 정도라고 할까. 우리 언론들은 대개 미국의 상업방송 네트워크 뉴스 진행자들에 대한 소식은 재밋거리로라도 자주 다루지만, 이 시청률 낮은 공영방송의 뉴스 진행자는 거의 소개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의 생각 있는 시청자들에게 짐 레러는 무척 신뢰받는 뉴스 진행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다른 상업방송의 뉴스 진행자들처럼 매력적인 외모를 갖고 있지도 않으며, 현란한 말의 기교를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가 가장 신뢰받는 인물이 된 것은 자신이 진행하는 PBS 저녁 뉴스의 진중함 때문이다. 
1998년 어느 날, 짐 레러는 뉴스의 첫머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오늘부터 아무개 기자가 저녁 뉴스에 참여하는 것을 제한하기로 했다.  그가 리포터가 아닌 코멘테이터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뉴스의 전달에는 그 어떤 섣부른 가치 판단보다도 사실과 진실이 중요하다는 뜻일 게다. 논평을 하려면 그건 따로 마련된 논평 시간에 하면 되는 것이니까.

〈시사IN〉 창간호의 광고 수를 세어본 까닭

전통적으로 언론에 영향을 끼쳐온, 혹은 끼치려 노력해온 국가와 자본에 더하여 수도 없이 많은 이해집단에 둘러싸여 있는 언론이 추구해야 할 지고의 가치는 독립성일 수밖에 없고, 그 기본은 사실과 진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시사IN〉 창간호를 사들고 보니 표지의 대문 기사 제목이 ‘위기의 독립 언론’이다. 그럴 만도 하다. 지난 1년 동안 편집권 독립 문제로 죽도록 싸워온 기자들이 만들었으니 창간호 대표 기사가 그게 될 줄 알았다. 그래서 좀 야박하지만 전체 면 수 가운데 광고면이 얼마나 되는지부터 세어보았다. 표지를 포함해 1백48면에 광고는 15면이다. 몇 번이고 세어보았다. 너무 적지 않은가?  당분간은 독자의 힘으로 갈 수밖에 없게 생겼다. 정기 독자든 거리 독자든 견고하게 늘어나야 하고 그러면 결국 광고도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가? 독립 언론을 표방하며 창간된 시사 잡지의 첫 호를 받아보고 광고 면수를 세어보는 일부터가 모순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게 현실이다. 적은 광고로 많은 지면을 만들며 버텨낼 잡지사는 없다. 문제는 결국 광고가 늘어난다 하더라도 그것이 〈시사IN〉 기자들이 그토록 지켜내려 한 편집권에 ‘독’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또 다른 지난한 여정이 시작돼야 한다는 것이다.

〈시사IN〉도 창간호 대표 기사에서 월스트리트 저널을 인수한 호주의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Rupert Murdoch)의 ‘돈’이 언론에는 ‘독’이 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이와 비슷한 성을 가진 영국의 네오 마르크시스트 정치경제학자 그래험 머독(Graham Murdock)도 이미 오래 전에 〈시사IN〉과 같은 우려를 한 바 있다. 즉, 광고가 콘텐츠에 끼치는 영향은 이슈에 대한 명확한 당파적 견해를 유보시키고, 소비자 지향적인 이슈에 매몰시키며, 결국 구매력 있는 소비자(독자)에게만 접근하려는 광고주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시사IN〉을 탄생시킨 기자들과 깨어 있는 독자들의 동력은 또다시 훼손될 것이다. 결국 〈시사IN〉이 여전히 갖게 될 고민은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존재를 바라는 독자 대중과, 이를 통해 이윤을 더 창출하기를 원하는 광고주들 사이에서 당초의 방향성을 지켜내는 데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두려워하진 마시라. PBS도 짐 레러의 신뢰도와는 상관없이 매년 재정난에 시달리지만 뜻있는 시청자들이 이를 쓰러지게 놓아두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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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언론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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