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쌍용차 한상균 지부장을 만나다
  • 김은지 기자
  • 호수 257
  • 승인 2012.08.21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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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6일은 쌍용차 파업이 끝난 지 딱 3년이 되던 날이었다. 이날 쌍용차 사태를 다룬 르포르타주 를 펴낸 공지영 작가와 파업 사태로 인해 3년간 복역하고 출소한 한상균 전 쌍용차 지부장이 만났다.
‘110번 사장님’ 한상균씨(50)는 8월5일 0시2분 경기도 화성교도소에서 출소했다. 한씨에게 적용되었던 죄목은 모두 8가지. 특수공무집행방해·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특수체포치상·업무방해 따위였다. 2009년 5월부터 77일간 이어진 쌍용차 파업을 주도하면서 쌓인 혐의였다. 한 전 지부장은 파업을 풀자마자 연행된 뒤 징역 3년을 꼬박 채우고 감방을 나왔다. 출소하던 날 자정, 그를 기다리던 300여 명에게 한 전 지부장은 “감방에서는 서로 ‘사장님’ ‘사장님’ 하는데, 여기 나오니 드디어 동지라 부를 수 있고 불릴 수 있게 되었다. 이 말이 눈물 나게 그리웠다”라고 말했다.

다음 날 소설가 공지영씨(49)는 르포르타주 작가로 데뷔했다. ‘대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라는 말이 책 뒤표지에 쓰여 있는 〈의자놀이〉(휴머니스트)는 쌍용차 파업 이후 3년의 시간을 담았다. 스스로 ‘원고료를 받지 않으면 일기도 쓰지 못할 정도로 노회한 나이’라고 밝힌 공 작가가 인세 전액을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위한 후원금으로 기부하겠다는 작정을 하고 쓴 책이다. 기획부터 출판까지 모두 재능기부로 이루어졌다. “출간 시점을 일부러 맞춘 게 아닌데, 운명같이 그렇게 되었다(공지영)”라는 〈의자놀이〉는 쌍용차 파업이 끝난 지 딱 3년 만에 나왔다.

ⓒ시사IN 조남진〈의자놀이〉를 펴낸 공지영 작가(오른쪽)와 한상균 전 쌍용차 지부장(왼쪽)이 8월6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길을 걸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공 작가는 책을 쓰기 위해 여러 명의 쌍용차 노동자를 만났지만, 감옥에 있던 한 전 지부장은 만날 수 없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쌍용차 사태 3년. 그 사이 쌍용차의 대주주는 중국 상하이자동차에서 인도 마힌드라 사로 바뀌었다. 파업을 접을 당시 회사가 노조에 약속했던 무급 휴직자 복직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신 쌍용차 조합원 및 가족 희생자가 22명에 이르는 지경까지 왔다. 쌍용차 사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동안 스러져간 목숨들이었다. 8월6일 오후, 쌍용차 희생자들을 위한 분향소가 124일째 차려져 있는 서울 덕수궁 대한문 근처 한 카페에서 만난 공 작가와 한 전 지부장은 다시금 한국 사회가 쌍용차 사태를 바라보게 하자고 다짐했다. 

공지영(공):한상균 전 지부장을 만나고 싶었다. 〈의자놀이〉를 쓰면서 쌍용차 사태와 관련된 사람을 30명 정도 만났는데, 정작 파업을 핵심에서 이끈 한 전 지부장을 뵙지 못해 안타까웠다. 대신 전해 들은 이야기가 많다. 워낙 칭찬 일색이다 보니 어떤 분인지 궁금했다. 김대중 대통령 집권 이후부터 ‘귀족 노조’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나. 특히 대기업 자동차 노조를 중심으로 그런 지적이 많았고, 사실 쌍용차 노조도 과거에는 그런 혐의가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한 전 지부장은 어려운 상황에서 노조를 맡아 파업 77일 동안에도 잘 이끌었다고 하더라. 특히 파업을 접는 날, 조합원 한 명이 그동안 감춰놨던 소주 한 병을 한 전 지부장에게 헌납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그때가 기억나나?

“노동자들, 조금만 ‘양아치’였더라면…”

한상균(한):당연하다. 오늘 아침(8월6일)에 회사 앞에서 출근 인사를 했다. 사실 그 전까지는 좀 멍했다. 그런데 3년 전 그 얼굴들이 출근하는 모습을 보니 ‘아, 내가 정말 나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합원 동지들이 먼저 다가와 인사하고 끌어안는데 울컥했다. 말은 못하지만 안에서도 고통이 얼마나 심할까 싶었다. 또 동지라는 말이 그렇게 감격스러울 수 없었다. 감방 안에서는 수형자들끼리 전부 다 사장이라고 부른다. 그것도 ‘한 사장님’이 아니라 ‘110번 사장님’이다. 서로 이름이나 죄목을 묻지 않다보니 아는 게 수형복에 붙어 있는 번호뿐이라서 그렇다. 나는 사장님이라는 표현이 불쾌했다. 이제 ‘사장의 세계’에서 ‘동지의 공간’으로 왔으니 동지들과 함께하지 못한 지난 3년을 메워야 한다. 

:가족도 돌보고 하셔야지…(웃음). 쌍용차 노동자들은 이게 문제다. 너무 성실하다. 한 전 지부장만 그런 게 아니다. 하나같이 먼저 남을 배려하고 염치 있는 시민이다. 그러니까 15년, 20년씩 성실하게 근속을 하지. 아마 이런 점이 쌍용차 노동자들을 더 힘들게 했을 거라고 본다. 남 탓을 해도 되는데, ‘그쪽도 얼마나 힘들었겠나’라고 생각해주다 보니 오히려 병이 더 깊어지고 자살률이 높다. 조금만 ‘양아치’였어도 이렇게 많은 분이 돌아가시지는 않았을 거다. 글을 쓰다가 놀랐던 게, 파업 막판에 치달아서는 공장 안이 단전·단수가 된다. 전기를 못 켜서 공장 안에서 움직이던 노동자들이 서로 계속 부딪치는 상황이었는데, 그런 와중에도 딱 한 대 남은 비상발전기를 돌린 곳이 도장 공장이었다. 단전으로 도료가 굳으면 공장 재가동 시기가 한 달은 늦어지고, 그렇게 되면 1300억원 이상 손해가 난다며 전기를 공장 돌리는 데 쓴 것이다. 공장 청소도 만날 했다고 한다. 그 덕에 파업이 끝난 지 6일 만에 체어맨이 생산된다. 반듯하게 공장을 지키려는 그 강박이 어떻게 보면 험한 세상에서 이들을 죽게 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시사IN 이명익

:공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싸운 거니깐 그랬다. 해고되었지만 모든 파업 참가자들은 여전히 ‘우리 공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도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그 사이 22명이 목숨을 잃었다. 감옥에서 부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만장을 만들었다. 향 하나 못 피우고 술 한 잔 못 올리는 처지라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편지지에다가 사연을 적고 미안함·한스러움 등을 담아 벽에 붙였다. 쓰다 보니 스물 두 장이 되어버렸다. 그걸 옥 안에서 썼던 일기와 어머니께 받은 편지 등과 함께 고이 가지고 나왔다.

:22명의 죽음은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글을 쓰다 보면 일종의 빙의 비슷한 걸 겪게 된다. 늘 그 사람들의 정황을 상상하고 느끼려다 보니 생기는 현상 같다. 〈도가니〉 쓸 때는 몸이 무지 아파서 7kg이 빠졌다. 이번에는 잠을 전혀 못 잤다. 스물두 분의 영혼이 우리 집 주변에 서늘하게 있는 것 같았다. 이분들이 나에게 의지하고 싶고 억울함을 풀고 싶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빨리 쓰자’였다. 이런 감정을 독자에게 분산시키면 이분들도 위로를 얻을 테니까.

:저도 감옥에 있으면서 부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악몽에 시달렸다. 그래서 잠을 제대로 못자니까 옆방에 있던 스님이 달마 세 장을 그려서 건네줬다. 문에 붙이라고 해서 그렇게 했더니 정말 잠이 잘 왔다. 그런데 부고 소식이 15번째, 16번째로 계속 늘어나니깐 달마를 더 이상 붙이고 있을 수 없었다. 악몽에 시달리더라도 돌아가신 분들의 한스럽고 억울한 마음과 함께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22명의 부고로만 쌍용차 사태를 봐서는 안 된다. 제도적 문제의 해결이 공존해야 한다. 이 모든 문제의 근본은 정리해고다. ‘안됐다’라는 동정만 넘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헤쳐나가지 못하고 동정만 넘친다면 그것은 겉치레에 불과하다.

:나도 쌍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데에는 연이은 죽음의 영향이 컸다. 13번째 죽음이 결정적이었다. 2011년 2월 한 무급 휴직자가 목숨을 잃으면서 그의 두 자녀는 고아가 되었다. 그 전해, 아이들의 엄마는 투신자살을 했다. 어떻게 하면 이분들을 도와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 쌍용차 분들을 만났다. 그때 물었다. 솔직히 해고를 여기만 당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냐고. 그랬는데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또 관련 책을 소개해달라고 했는데 내용이 어려웠다. 그래서 내가 책을 써서 쌍용차 문제를 알리는 소통의 다리 구실을 하고 싶었다. 

“공 작가 커리어에 누가 되지나 않을까”

:신문으로 공 작가께서 쌍용차 사태에 관한 책을 쓴다는 소식을 접했다. 처음에는 의문도 있었다. 베스트셀러 소설 작가가 르포 형식으로 글을 쓴다는 게 가능할까, 오히려 공 작가가 쌓아온 커리어에 누가 되지는 않을까. 그런데 나온 책을 보니 정말 고맙다. 쌍용차 사태를 푸는 해법은 복직이다. 복직이라는 결과를 얻는 것 자체가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피어나는 희망도 소중하다. ‘와락’이나 공 작가 같이 연대 해주시는 분이 우리에게 희망이다.

ⓒ시사IN 이명익한상균 전 쌍용차 지부장(가운데)이 8월5일 자정, 3년간의 복역을 마치고 화성교도소를 나오고 있다.

:책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노동자의 죽음이었지만, 이 사태에 대해 취재하고 알아갈수록 핵심에 뭔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부분은 꼭 강조하고 싶다. 쌍용자동차의 해고는 비인간적일 뿐 아니라 불법이라는 혐의가 짙다. 2008년 9월 쌍용차 부채 비율은 168%였다. 그런데 쌍용차를 담당한 대형 회계법인이 3개월 후를 기준으로 작성한 보고서에는 부채 비율이 561%로 뛰어 있었다. 기계장치의 손상차손(기계나 건물 등 자산이 낡아가기 때문에 미래에 그것을 내다팔았을 때 현재보다 헐값을 받게 되며 생기는 손해액) 누계액은 2년 만에 8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증가했다. 구축물의 손상차손 누계액 또한 8600만원에서 375억원으로 증가했다. 천재지변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외계인이 나타나 건물에 전부 구멍을 뚫은 것도 아닌데…. 졸지에 부실회사로 전락한 쌍용차는 2646명을 해고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대형 회계법인이 쌍용차의 위기를 과장해 정리해고의 근거를 제공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책에다 회계법인 이름을 실명으로 다 썼다. 그 법인들이 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 문제의 진실을 법정에서 따져 묻고 싶다.

:상하이차의 ‘먹튀’ 논란은 당시에도 컸다. 그로 인한 경영 실패의 부담을 온전히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이 부당하다며 맞서 싸운 게 쌍용차 노조가 벌인 77일간의 옥쇄파업이었다. 경찰이 강경 진압을 하고 노조의 폭력성을 강조하면서 노조 파업의 본질이 흐려진 듯 보였지만, 결국 ‘함께 살자’는 뜻이다. 결국 쌍용차 문제는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맞다.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쌍용차 노동자가 먼저 겪었을 뿐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도 언젠가 대한문 앞으로 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대한문은 100년 동안 노동자가 농성하는 곳이 될 것이다. ‘쌍용차 노동자가 불쌍하다’ 이렇게 끝낼 게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를 바꿔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알아야 한다. 〈의자놀이〉는 중학교 2학년도 읽을 수 있게끔 쉽게 썼다. 많이 봐달라.

취재 도움:김동인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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