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6일 새벽 5시 50분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 가수 혜은이의 〈열정〉이 울려 퍼졌다.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 손에는 가지가, 밀짚모자에는 당근이 있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200명 가까운 사람들은 “공사 말고 농사”를 외쳤다. 행정대집행을 10분 남겨놓은 ‘마지막 4대강 공사 현장’의 풍경은 자못 흥겨웠다.

‘두물머리에 농사를’이라는 플래카드를 든 두물머리 최후의 농부 4인 김병인·서규섭·임인환·최요왕씨가 가장 앞자리에 섰다. 그 뒤에는 새벽 5시 생명평화를 위한 미사를 지낸 신부들과 민주통합당 이미경·최재성·이학영·현현·박홍근·유은혜 의원, 통합진보당 오병윤 의원, 녹색당 하승수 사무처장 등이 부들을 들고 서 있었다. 


  ⓒ시사IN 백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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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6시가 되자 ‘농지보존 친환경농업 사수를 위한 팔당공동대책위(팔당공대위)’의 집회를 지켜보던 류공수 서울지방국토관리청 하천계획과장은 A4 용지에 쓰인 계고장을 읽기 시작했다. “공사 말고 농사”라는 집회 참가자들의 외침에 마이크 없이 계고장을 읽는 류 과장의 목소리가 묻혔다.

곧이어 임광수 서울국토관리천 하천국장은 “오늘 (행정대집행을) 전격적으로 할 수도 있지만 여건이 아니라고 본다. 개시 선언은 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6일 당장 행정대집행을 하지는 않겠다는 말이었다. 다만, 행정대집행은 계고장을 읽는 순간부터 법적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향후 언제든 행정대집행을 할 수 있다는 여운을 남겼다. 이날 현장에는 용역 직원은 없었지만, 경찰 3개 중대 300여명이 자리를 지켰다.

서울국토관리청 직원이 자리를 뜬 6시30분, 잠시 감돌던 긴장감은 사라지고 다시 두물머리에는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다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춤사위에 어울리던 한 남성(28)은 “4대강 공사지 마지막이라는 이 두물머리마저 농작물 대신 콘크리트에 묻히게 둘 수 없단 생각에 어젯밤부터 와 있었다. 저들은 계속 공사를 하겠다고 협박하겠지만, 이렇게 계속해서 즐겁게 싸워가며 두물머리를 지킬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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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두물머리의 ‘작은 평화’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정리발언에 나선 민주통합당 이미경 의원은 “오늘은 우리가 여기를 지켜냈지만 안심할 수 없다. 끝까지 관심을 가지고 철거를 막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두물머리 입구에서 만난 ‘수유+너머 R’ 연구원 박정수씨는 “정부에서 사람들 관심이 떨어진 때를 틈타 새벽녘이나 밤에 갑자기 쳐들어 올까봐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녹색당은 아예 야외 당사를 두물머리에 차렸다. 한동안 두물머리 지키기에 집중할 계획이다. 행정대집행이 예고된 전날인 5일 저녁 두물머리에서 ‘4대강조사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킨 민주통합당은 국회의원이 한 명씩 돌아가며 두물머리 ‘불침번’을 서기로 했다. 첫 타자는 국토해양위 소속 현현 의원이다.

숨 가쁘게 돌아갔던 6일 아침 일정을 마친 농부 김병인씨는 다시 비닐하우스로 돌아갔다. 그는 때를 놓치면 꽃이 피어 아욱 농사가 제대로 안된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 일이 안 일어났으면 하지만, 혹 행정대집행을 하면 농사짓다가 잡혀갔으면 좋겠다. 하우스에서 아욱 따고, 토마토 따다가 경찰들이 몰려와 끌고가면 ‘아욱아 미안하다. 토마토야 미안하다. 내가 너희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 말하며 울면서 끌려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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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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