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갑 통합진보당(통진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은 당 대표 후보 등록 마감일을 앞두고도 출마에 대한 확답을 하지 않고 버텼다. 출마 선언 전날까지만 해도 서울 대방동 당사에서 이불을 나눠 덮고 잠을 청했던, ‘30년 동지’ 강병기 전 경상남도 정무부지사와의 경쟁이 강 위원장의 발목을 자꾸만 붙잡았다.

6월15일 당 대표 출마 선언을 한 강 전 부지사의 출마 선언문은 강 위원장이 이끌고 있는 혁신비대위에 대한 전면적 비판에 무게를 뒀다. 강 전 부지사는 자신이 계파를 떠난 중립임을 강조했지만, ‘사실상’ 당권파 연합(경기동부연합+부산울산경남연합+광주전남연합)의 지지를 등에 업은 후보로 나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비당권파 연합(국민참여당계+진보신당 탈당파+인천연합)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출마를 머뭇거리는 강 위원장을 놓고 압박이 거세졌다. 공동 선대위원장만 32명인 거대 선본이 꾸려졌다. 결국 강 위원장은 후보 등록 마감일인 6월18일 당 대표 출마를 선언했다.

ⓒ시사IN 조남진6월21일 열린 통합진보당 최고위원 후보 합동연설회.

이로써 ‘당권파 대 비당권파’로 선거 구도는 명확하게 짜였다. 모두 5명을 뽑는 최고위원 후보로 나선 이들의 면면 역시 3대3 구도로 팽팽하다. 이혜선·유선희·민병렬(당권파) 대 이정미·천호선·이홍우(비당권파)가 맞붙는다. 단 한 사람만 낙선하는 최고위원 선거에서 어느 계파의 사람이 떨어질 것인가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두 달여 가까이 지리멸렬하게 이어져오는 당권파와 비당권파 간 갈등의 핵심은 전국중앙위원회에서 의결한 경쟁명부 비례대표 전원 사퇴안이었다. 국회 개원 전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자진 사퇴가 이뤄지지 않자, 혁신비대위는 ‘제명’ 절차에 들어갔다.

이 사안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두 계파의 온도차는 확연하다. 강 전 부지사는 “비례후보 당선자 거취 문제는 곧 나올 ‘최종조사 결과’에 따라 엄정히 처리하겠다”라고 선언하며, 당권파와 견해를 함께했다. 혁신비대위가 추진하던 제명이 아닌, 6월26일께 나올 2차 진상조사 결과를 보고 판단하겠다는 의미이다.

애초 당권파 쪽에서는 혁신비대위에 맞서 ‘당원 비상대책위원회’를 이끌어왔던 오병윤 의원이 당권에 도전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수세’에 몰려 있는 당권파 측은 오병윤 카드로는 당선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 여론의 역풍도 주요 고려 사항이었다. 이때 당원비대위와 혁신비대위 사이에서 ‘모호한’ 스탠스를 취해왔던 부산울산경남 연합이 들고 온 카드가 강병기 전 부지사였다.

강병기 후보 내세워 당권파 재집결

오병윤 의원은 6월20일 당원 비대위를 해산하며 “당 지도부 선거에 집중하여 당 정상화의 길로 나아가겠다”라고 밝혔다. 사실상 강 전 부지사에게 힘을 실어준 셈이다. 당권파 측 한 관계자는 “강 전 부지사가 당 대표가 될 경우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명분용’으로 이석기 의원 자진 사퇴에 대한 논의가 있을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강 전 부지사를 활용한 출구전략을 짜놓은 셈이다.

비당권파 쪽 역시 심상정 의원이 당권 도전 의사가 있었지만, 강 전 부지사가 당권파 연합의 후보로 나서는 모양새가 되자 앞장서 강 위원장의 추대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당권파 연합의 경우 당 대표 선거에서 질 때에 대비한 출구전략이 마땅치 않다. 한 당직자는 “(강 위원장이 지면) 혁신에 실패한 정당을 누가 신경 쓰겠나. 원내 활동 위축은 물론 민주당과의 협력, 대선까지 다 물 건너가는 거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조직 표’를 셈하기는 쉽지 않다. 일단 강-강 두 후보는 ‘전농(전국농민회총연맹)’ 출신으로 지지 기반을 나눠야 한다. 또 각 계파의 지도부가 특정 후보 지지를 결정했다고 하더라도, 구성원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당권파인 울산연합, 비당권파인 인천연합의 조직 결속력이 많이 약해졌다”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편으로는 ‘조건부 지지 철회’를 내건 당의 대주주인 민주노총, 특히 산별노조의 표심을 잡기 위한 움직임도 분주하다.

무엇보다 일반 당원들의 표심이 어디로 향할지가 변수다. 강 전 부지사의 경우 지난 총선에서 단일화 과정 중 불거진 논란이 당원들 사이에 다시 회자되고 있다. 경남 진주을에서 출마를 준비하던 강 전 부지사는 새누리당 성향의 강갑중 후보와의 단일화를 추진하는 가운데 강갑중 후보를 지지하는 ‘강씨 종친회’의 압박에 굴복해 출마를 포기한 바 있다. 강기갑 위원장 역시 비대위원장을 맡고 있으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가 나온 상황이다.

6월22일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 합동연설회가 열린 서울 관악구민회관 강당 200석은 거의 비어 있었다. 한 당직자는 “당에 대한 무언의 항의를 보여주는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현장’이 보여주듯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 당원들의 투표율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판세를 움직일 외부 변수 역시 만만치 않다. 먼저 박원석 통합진보당 새로나기 특별위원회 위원장이 6월18일 발표한 ‘혁신안 보고서’는 당내 논쟁을 불러왔다. 보고서는 주한미군 철수 강령 조항 재검토, 당원 총투표로 정하던 비례대표 후보를 지도부 협의제로 바꾸는 안 등을 담고 있다. 6월20일 당권파로 분류되는 이상규 의원실이 주최한 공청회에서는 새로나기 특위에 대한 맹공이 주를 이뤘다. 박원석·이상규 두 의원은 이를 두고 ‘맞장토론’을 예고했다.

혁신비대위 쪽 관계자들 역시 보고서의 발표 시기를 놓고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한 관계자는 “공론화 시기에 신중했어야 했다. 박 의원이 미디어 중심적 사고만 한 것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라고 말했다.

통진당의 야권연대 파트너인 민주통합당(민주당) 변수도 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6월20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강기갑 위원장이 당 대표로 당선되지 않는다면 야권 연대가 성립되기 어렵다”라고 선을 그으며 강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당장 강 전 부지사 측은 “선거 개입”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아직까지는 손을 마주잡고 있지만, 이번 선거에서 누가 당권을 잡느냐에 따라 통진당 두 계파의 ‘운명’이 갈린다. 그 결과는 6월29일 확인할 수 있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