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서야만 정권 교체를 할 수 있다.” 한 치의 저어함도 없었다. 6월12일 민주통합당(민주당) 정치개혁모임 주최 간담회에 나선 문재인 상임고문은 이전과는 달랐다. ‘대선주자로서 권력 의지가 약하다’는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듯 결기를 보였다. 문 고문은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도, 장외에 있는 안철수 교수도 이길 수 있는 ‘적임자’가 자신임을 내세웠다. 정권 교체를 이뤄 ‘3기 민주정부’의 주인이 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문 고문으로서는 상황이 다급해졌다. 6월9일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발표된 그의 지지율은 9%까지 곤두박질친 상태다(한국갤럽 정례조사). ‘이(해찬)-박(지원) 합의’가 알려지며 당이 홍역을 앓았고, 그 과정에서 가장 큰 생채기를 입은 당사자가 바로 문 고문인 셈이었다. 문 고문의 운신의 폭은 그만큼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시기를 낭비했다”라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시사IN 이명익민주당 문재인 상임고문은 6월12일 국회에서 열린 정치개혁모임 초청 간담회에서 “내가 민주당 내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라고 말했다.

문 고문은 6월12일 간담회 자리에서 전당대회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교훈을 많이 얻었다. 선수도 아닌데 결과에 따라서 타격을 입기도 하고 그렇더라. 언론에 ‘기사회생’이라고 나오기도 하던데…(웃음).” 지지율과 맞바꾸면서까지 ‘정치 수업료’를 톡톡히 치른 셈이다. 문제는 다음이다.

바닥을 친 문 고문의 지지율이 6월17일 공식 출마 선언과 함께 반등할 거라는 데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상승의 여력은 충분하다. 워낙 하향세였기 때문에 등장 자체만으로 반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총선 전 20%대까지 치솟으며 당내 야권 주자들 중 ‘원 톱’이었던 지지율까지 회복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물음표다. “민주당 내 다른 대선주자들 역시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대선 행보를 시작했다. 야권 성향의 유권자들이 보내는 지지가 여러 명에게 분산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은 말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출마 선언 이후다. 총선 이후 문 고문을 둘러싸고 나타난 당 안팎의 우려는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친노의 덫’이다. 문 고문을 둘러싼 ‘친노무현’ 세력에 대한 반감이 당 안팎에 적잖이 퍼져 있다. 그만큼 문 고문에 대한 견제 역시 심해졌다. 6월9일 전당대회도 사실상 문재인 대 비(非)문재인의 싸움처럼 양상이 흘러갔다. 김한길 후보 캠프는 문 고문을 제외한 당내 대선주자들의 지원을 등에 업은 ‘비노 연합군’을 방불케 했다.

한 민주당 의원은 “문 고문이 ‘친노’라는 정파의 프레임에 갇힌 면이 있다. 주변이 ‘친노 패밀리’로 꽉 짜여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는 느낌이 강하다”라고 말했다. 이철희 소장 역시 “민주당 혹은 야권 전체의 후보 문재인으로 프레임을 바꿔야 하는데 아직은 친노 후보를 못 벗어나는 것 같다”라고 평했다.


캠프에서 친노는 2선으로 물러날 듯

이에 대해 문 고문 측 김경수 공보특보는 “총선 캠프에 참여했던 참여정부 인사들은 가능하면 2선으로 물러나 뒤에서 돕는 역할만 하게 될 것이다. 문재인의 비전과 정책을 공유하는 새로운 사람들로 캠프를 구성하기 위해 다방면의 사람들과 접촉 중이다”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정치를 해온 당내 경쟁 주자들이 따로 캠프를 꾸리지 않아도 참모 조직이 탄탄한 데 비해 문 고문은 사실상 4·11 총선이 정치인으로서 치른 첫 선거였던 만큼 친노 참모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그들만의 캠프’라는 오해를 산 측면이 있다는 설명이다.


ⓒ시사IN 이명익6월9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김두관 지사(왼쪽)와 문재인 고문이 최명길씨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문 고문이 전당대회 직후인 6월10일 ‘민주당 당원 여러분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이제 지역이나 계파를 넘어 미래를 놓고 경쟁하고 협력해야 한다. 정책, 비전, 대안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라고 호소한 이유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다는 분석이다. 문 고문은 6월12일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내부의 분열이다”라고 지적하며 친노와 비노 프레임을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고문에 대한 두 번째 우려는 민주당의 ‘정신적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호남 민심을 문 고문이 끌어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경선 과정에서 일으킨 돌풍의 진앙은 호남이었다. 당시 ‘호남에 뿌리를 둔 정당의 영남 후보’라는 노 전 대통령의 콘셉트는 주효했다. 문 고문 역시 그러한 구도를 기본적으로 상정하고 있다. 하지만 호남 지역의 당 대표 경선에서 이해찬 후보가 3위를 거둔 것이나, 문재인 고문이 손학규 상임고문이나 김두관 지사보다 민주당 호남 지역 대의원들의 지지를 덜 받는 것으로 나타난 국가비전연구소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 등을 보면 호남이 아직은 ‘문재인’을 ‘호남을 대리할 후보’로 보지 않는다는 징후가 뚜렷하다. 게다가 문재인 고문이 참여정부 시절 ‘참여정부는 영남 정권’이라는 발언 등을 기억하며 반감을 표출하는 호남 사람도 만만치 않다.

이 틈을 파고든 것이 김두관 경남도지사다. 낮은 지지율로 고전하고 있던 김 도지사는 이번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며 ‘지고도 이긴’ 최대 수혜자가 됐다.

문 고문 캠프는 호남 민심에 대해 짐짓 여유를 부린다. 본격적으로 대선 행보를 시작하면 ‘반전’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서다. 윤희웅 실장 역시 “호남 민심을 존중해주면서 전국적인 인물로 부상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판단이 들면 언제든지 선택을 바꿀 수 있는 전략 집단이 호남이다. 아직까지 문 고문이 충분히 어필하지 못하고 있지만, 호남 표심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라고 내다봤다. 김경수 공보특보는 “출마 선언 전이라 지역을 다니는 데 주저함이 있었다. 기존 당 조직을 중심으로 호남 지역 당원들에게 적극적으로 설명해나가게 되면 시간은 걸리겠지만 기존의 오해는 해소되리라 본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7월 중 대선 후보 경선 룰을 확정하고 9월 중 대선 후보를 선출해 11월 초 안철수 교수와의 단일화 과정을 거치는 ‘대선 플랜’을 세웠다. 문 고문은 6월17일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며 ‘대통령 문재인’을 향한 대장정에 나섰다. SBS 〈힐링캠프〉 출연과 공수부대 사진 한 장으로 첫 번째 도약을 했다면, 이제는 설득력 있는 정책과 로드맵으로 제2의 도약을 꾀할 시점이다. 앞으로의 석 달에 문재인의 ‘운명’이 달려 있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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