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때 사진을 보여주었다. 네 살, 일곱 살, 열 살, 열일곱 살 때, 그리고 대학생이 된 스물세 살 때 사진까지 아이는, 청소년은, 대학생은 커가면서도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싸거나, 뒤로 감추거나, 주머니에 넣은 채 사진을 찍었다.

선천적인 오른손 장애 때문이다. 꿈은 소박했다. ‘다른 사람과 똑같아지는 것’이었다. 발버둥쳐도 이루어질 수 없는 꿈. 그래도 포기하거나 주저앉지는 않았다. 곰곰이 자신이 못하는 걸 꼽았다. 아코디언을 열 손가락으로 불 수 없는 것, 턱걸이를 못하는 것…. 할 수 없는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 걸 깨달았고 오른손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문제아가 아니라 ‘특별한 존재’였다고 생각을 바꾸었다. 생각을 바꾸니 다른 사람과 똑같아졌다.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시사IN 조남진5월30일 충남 공주 교통연수원에서 열린 공감 콘서트.

5월29일 서울 연세대. ‘하버드·MIT 한인학생회와 함께하는 〈시사IN〉 리더십 포럼-청소년을 위한 〈시사IN〉 공감 콘서트(공감 콘서트)’에 강사로 나선 이주호씨(35·하버드 대학 건축학)는 불편한 오른손으로 마이크를 잡고 강의를 했다.


자신만의 ‘보물찾기’에 나서는 법

2010년에 시작한 ‘공감 콘서트’가 3회를 맞았다. 이번 콘서트 주제는 ‘꿈’. 공감 콘서트는 사회 환원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입시나 환경에 짓눌려 꿈을 꾸지 못하는 고등학생을 위한 무료 강연이다. 3회 공감 콘서트는 서울(5월29일), 충남(5월30일), 경남(6월1일)에서 열렸다. 충남은 충남인재육성재단(이사장 안희정 충남지사)과, 경남은 경남미래교육재단(이사장 고영진 경남 교육감)과 각각 공동 주최했다. 공감 콘서트는 게스트 특강-공감 토크-멘토·멘티 만남 등 3부로 진행되었다. 초대 강사로는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 박사(서울)와 사회적 기업 ‘모티브하우스’ 서동효 대표(충남·경남)가 나섰다.

서울의 공감 콘서트에서 이소연 박사는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의 우주를 향한 도전’을 주제로 강연했다. 이 박사는 고등학생의 눈높이에 맞춰 자신의 학창 시절과 친구의 소중함, 꿈을 향한 도전을 얘기했다. 이 박사는 “남들이 모두 아니라고 할 때 맞다고 해준 친구 한 명 덕분에 우주인이 되는 과정뿐 아니라 그 뒤의 정신적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충남과 경남의 공감 콘서트에서 초대 강사를 맡은 서동효 모티브하우스 대표는 고졸이다. 놀이공원 직원, 유치원 교사를 거쳐 ‘꿈 문화 기획자’라는 자신만의 직업을 만들었다. 서 대표는 “누군가의 기준에 맞춰 꿈을 만들려고 하지 말자. 실현 가능성? 돈을 벌 수 있나? 이런 것 신경 쓰지 말고 꿈을 꿔보자”라고 강조했다.

2부 토크 콘서트는 강사로 나선 하버드· MIT 유학생들이 열쇳말을 하나씩 제시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서울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을 졸업한 박재홍 CBS 아나운서 사회로 진행되었다. 2010년부터 3년째 콘서트에 참가하고 있는 제이슨 안 씨(29·하버드 의대)는 ‘캐릭터’를 열쇳말로 제시했다. 안씨는 캐릭터를 인품이라고 설명하며, 인품은 공부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비전·인내·진실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버드 의대 입학사정관을 지낸 그는 “입학사정관 당시 서류를 검토하면서 왜 이 학생이 꼭 하버드 의대에 와야 하는지 질문했다. 결론적으로 비전이 있는 사람을 추천하게 되더라”고 말했다.

유혜영 강사(29·하버드 대학 정치경제학 박사과정)는 ‘보물찾기’를 열쇳말로 제시했다. 그녀는 경남 진주 출신으로 진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 유혜영 강사는 첫 번째 보물로 ‘책’을 꼽았다. 그녀는 “제이슨은 멕시코 등을 고등학교 때 여행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보고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했지만 한국은 그런 기회가 흔치 않다. 대신 나는 책을 좋아해서 다양한 세상을 간접적으로 경험했다”라고 말했다. 유씨는 또 공부를 핑계로 책 읽기를 게을리하지 말라고 당부하며 중·고등학교 시절 자신의 노하우를 소개하기도 했다. “친구들과 읽고 싶은 소설책 한 권을 정한 다음 한 장씩 찢어서 모든 반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한 사람이 한 장씩 소리 내어 읽었다.” 


ⓒ김흥구‘대한민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 박사(위)가 5월29일 서울 연세대에서 열린 공감 콘서트 특별 강사로 나섰다.

불편한 오른손으로 마이크를 잡은 이주호 강사는 ‘장애와 연애’를 열쇳말로 제시했다.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남들에게 보이기 싫은 장애가 있을 텐데, 객관적으로 자신을 보고 자신을 사랑하면 남을 사랑할 수 있게 되고, 그러면 다른 사람도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라고 이씨는 말했다. 그의 프레젠테이션 마지막 사진은 하버드 대학 건축학과에 함께 다니는 아내였다. 이씨의 오른손을 잡아준 아내의 모습에 학생들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환경’을 열쇳말로 꺼낸 윤선규 강사(31· MIT 환경공학)는 자기 부모의 젊었을 적 사진을 보여주었다. 윤씨 부모는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다. 변변한 집도 없었다. 어머니가 청소를 해주는 고등학교 테니스부 훈련장에 딸린 가건물이 집이었다. 그런 환경이 열등감으로 작용했다. 그러다 오기가 생겼다. 도대체 환경이 뭐라고? 유혜영 강사처럼 윤선규 강사도 보물찾기에 나섰고, 정부와 MIT로부터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그의 프레젠테이션 마지막 사진은 부모의 현재 사진이었다. 윤 강사는 “지금은 부모님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지금의 단단한 나를 만든 건 바로 부모님의 사랑이다”라고 말했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을 모두 만났다고 소개한 하위준 강사(27·하버드 대학 건축학)의 열쇳말은 ‘나’였다. 하 강사의 스펙은 화려하다. 과학 영재였다. 2002년 우크라이나 오데사에서 개최된 세계 물리토론대회(IYPT)에서 개인 최우수상을 받으며 카이스트에 합격했다. 그러나 행복하지 않았다. 다시 고민했고 행복한 길을 찾아 카이스트를 중퇴했다. 건축학으로 진로를 바꿨다. 부모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장학금을 타낸 뒤 부모를 설득했다. 하씨는 “얼마 전 〈디아블로3〉가 나왔는데 1만 렙 찍었다(웃음). 어느 누구도 ‘디아블로 열심히 해,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라고 이야기 안 한다. 여러분이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다. 꿈이나 진로도 좋아하는 것, 즐거운 것, 관심 있는 것, 재미있는 것을 찾다보면 생기고 결정될 것이다”라며 강의를 끝냈다.


마지막 강사로 나선 황인애씨(36·MIT 부동산개발학)의 열쇳말은 ‘타이틀’이었다. 황 강사는 영남대 출신이다. 지방대라는 꼬리표에 스스로를 가뒀다. 그녀는 타이틀을 바꾸기 위해 대학원 문을 두드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녀에게 타이틀은 ‘간판’이었다.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하며 타이틀(간판)은 수직상승했다. 취직도 하고 회사에서 인정도 받았다. 인정받은 직장인으로 남을 것인가? 그러면서 타이틀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다. 자발적 백수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다 유학을 떠났다. 황 강사는 “타이틀이 간판이 아닌 걸 깨달았다. 꿈의 진화가 바로 내 타이틀이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가르치던 학생이 맞나”

공감 콘서트의 하이라이트는 강사 한 명과 학생 20~30명이 만나는 멘토·멘티 만남이다. 지난해 처음 도입된 멘토·멘티 만남의 반응이 좋아 이번에는 두 차례 멘토를 선정하게 했다. 1지망, 2지망 멘토를 학생들 스스로 찾아가도록 했다.

멘토·멘티 시간에 강사와 학생들은 고민을 나누며 공감했다. 멘토·멘티 시간을 거치면서 학생들과 강사들은 이메일과 페이스북 주소 등을 주고받았다.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학생들을 인솔한 학교 교사들은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학생들을 보며 ‘저 애들이 우리가 가르치는 학생이 맞나’ 하는 반응을 보였다. 경남 공감 콘서트에 학생들을 데리고 참여한 김대기 김해외고 교사는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행사 취지를 잘 몰랐다. 아이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대학을 어떻게 가느냐보다, 꿈을 결정하고 한발 한발 걸어가는 것인데, 이걸 말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배들을 오늘 만났다. 아이들이 이렇게 즐기는 걸 보고 놀랐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고제규·허은선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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