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주자들 간의 셈법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가운데, ‘이해찬 대세론’은 일단 소멸했다. 민주당 전당대회 지역 순회경선이 끝난 5월31일, 김한길 후보는 전북에서도 이해찬 후보에게 126표 차이로 승리를 거뒀다. 중간 합계 2263표(김한길) 대 2053표(이해찬)로 210표 차이가 났다.

물론 승부가 끝났다고 하기는 이르다. 민주당 전당대회는 대의원 30%와 국민 참여(모바일 투표 등) 70%로 순위를 가린다. 모바일 표심이 어디로 쏠릴지 지켜봐야 한다. 30% 비중의 대의원 투표도 채 절반이 끝나지 않았다. 6월9일 전당대회장에서 투표하는 서울·인천·경기 대의원과 정책대의원만 8600명. 지금까지 투표를 끝낸 순회경선 지역 대의원 6300명보다도 많다. 210표 차이는 안정권이라고 보기 힘들다.

표 차이는 크지 않지만, 추세와 분위기는 꽤 차이가 난다. 지역 순회경선 막바지에는 이해찬 후보가 아닌 김한길 후보에게 다른 후보들의 견제가 집중됐다. 당내에서는 벌써부터 ‘김한길 대세론’을 말하는 이도 나온다.
 

ⓒ뉴시스민주당 대표 충북 지역 경선에 참석한 이해찬(왼쪽), 김한길(오른쪽) 후보.


전당대회에서 대세론의 형성은 꽤 중요한 변수다. 국회의원과 원외 지역위원장들은 대의원 30여 명의 표심을 좌우할 수 있는데, 이들이 어느 후보에게 ‘베팅’해야 할지를 부지런히 계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세론이 탄탄해지면 일종의 쏠림현상이 나타난다. 아직은 그런 단계는 아니라는 관측이지만, 남은 일주일 동안 이해찬 후보가 반전의 계기를 잡지 못하면 쏠림현상이 올 수 있다는 평이 많다.

이해찬 대세론은 왜 소멸했을까. 중립 성향의 한 재선 의원은 “아무래도 총선 패배의 책임을 한 번은 묻고 가야 한다는 기류가 많은 것 같다. 이 후보가 총선의 막후 지휘자 중 한 명이었던 것은 다 아는 얘기 아닌가. 그렇다고 대선 경선에서 총선 책임론을 말할 수도 없으니, 지금 한 번은 정리하고 가는 것이 당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 많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김한길 후보 측은 ‘이·박 담합’을 거부하는 민심과 당심이 빚어낸 결과라고 주장한다. 친노 대표 주자인 이해찬 당 대표에 비노를 대표하는 박지원 원내대표라는 구상은 공개되자마자 엄청난 역풍을 맞았다. 박지원 카드는 힘겹게 원내대표 선거전을 돌파했다. 하지만 이해찬 카드는 고전 중이다.

뒤바뀐 공수, 모바일 표심 잡기에 총력

이 과정에서 이해찬 후보와 긴밀한 사이인 문재인 의원도 적잖은 상처를 입었다. 특정 정파의 이해를 대변하는 대선주자로 낙인찍혀 위상 하락을 겪었다. “‘이·박 담합’이 사실상 문재인 대선후보 무혈입성 수순이다”라는 주장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그 결과 전당대회에서 대선주자들 간의 전선이 형성됐다. 크게는 문재인 대 반문재인 구도가 떠올랐다. 정세균·손학규 전 대표와 정동영 전 장관, 사실상 대선 출마를 확정한 김두관 경남도지사가 김한길 후보를 측면 지원하고 나섰다는 말이 끊이지 않았다. 김한길 후보는 경남·강원·전북에서 이해찬 후보를 따돌렸는데, 각각 김두관·손학규·정세균·정동영의 영향력이 강한 곳이다. 이해찬 후보를 돕는 한 민주당 초선 의원은 5월31일 전북에서 패배한 뒤 “정세균 전 대표가 그랬다고 믿고 싶지는 않지만, 숫자가 그렇게 말을 하네”라고 말했다. 정세균계는 한때 이해찬 후보와의 연대 징후도 있었지만, 전북 경선을 계기로 선을 그었다는 관전평이 나온다. 

민주당에서 친노 직계로 분류되는 한 초선 의원은 “거봐, 우리가 다수파 아니라고 내가 늘 그랬잖아”라고 말했다. “참여정부하고 관계가 있느냐 없느냐로 따지면, 민주당에 친노 아닌 사람이 얼마나 있나. 하지만 그 ‘친노’ 개념은 실체가 없다. 실제로 계파라 부를 만한 밀집도를 가진 친노는 몇 명 안 된다. 공천 때 나온 말처럼 우리가 다수파였으면 지금 이렇게 밀리겠느냐”.

 

 

 

 


김두관 경남도지사가 이번 호 〈시사IN〉 인터뷰(14~18쪽 참조)에서 직접 밝혔듯, 대중이 보는 친노의 범위와 정치권 내에서 보는 범위는 차이가 있다. 이번 전당대회를 계기로 친노 직계와 방계 사이에 전선이 선명하게 쳐진 셈인데, 직계는 문재인, 방계는 정세균·김두관 등을 구심점 삼는 형국이다. 여기에 손학규 전 대표 등의 비노 그룹까지 친노 직계 포위망에 동참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당의 대주주처럼 보였던 친노 직계를 고립시키며 일단 유리한 구도를 짜는 데 성공한 김한길 후보는 몸조심에 들어갔다. 김한길 캠프에서는 ‘이·박 담합 거부’라는 구호를 계속 들고 가면서도, 이를 문재인으로까지 연결하지는 않겠다는 방침이다. 어쨌거나 당의 자산인 대선주자를 상처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후보는 6월1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민주당 대선주자를 쭉 나열하며 문재인 이름을 빠트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손석희 교수의 지적을 받은 김 후보는 “아, 미안해요. 문재인 고문이 제일 앞에 있어야 되는데 빼먹었네요”라며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손 교수는 “그러니까 자꾸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지적했다. 

이해찬 후보 측은 남은 일주일간 ‘김한길 검증론’에 초점을 맞춘다는 방침이다. 경남 패배 이후 후보 본인이 직접 제기했던 ‘KK(김한길·김두관) 연대’ 의혹은 더 끌고 나가지 않는다는 기류가 많다. 역시 대선주자를 상처 내는 싸움을 벌였다가는 역풍이 분다는 판단이다.

대신 이 후보 측이 내놓는 ‘김한길 검증 포인트’는 이렇다. 첫째, 김 후보의 과거 신한국당(현 새누리당) 공천자 명단 등록 의혹, 둘째, 2007년 열린우리당 분당 사태 책임론과 ‘반노무현’ 발언 이력들, 셋째, 열린우리당 시절의 사학법 처리 과정에서 보이는 정체성 괴리 문제.

하나같이 대의원 투표보다는 모바일 표심에 초점을 맞춘 전략 성격이 강하다. 반새누리·친노무현 성향이 강한 모바일 참여자들이 민감해하는 이슈들을 집중 배치했다. 김한길 후보도 제기된 의혹을 반박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전국 순회경선 기간이 당내 역학구도에 따른 복잡한 셈법이 작동한 기간이었다면, 남은 일주일은 모바일 표심을 잡기 위한 공중전이 치열할 전망이다. 선두주자가 달라지면서, 공수도 바뀌었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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