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2세의 분노가 터진다면
  • 이의헌 (점프 대표)
  • 호수 246
  • 승인 2012.06.08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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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를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정하여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이민정책이 필요하다. 이민자를 경제 발전의 수단인 이주노동자로만 본다면 경제가 어려울 때 갈등이 생기게 된다.
글쓴이 이름 옆에 붙어 있는 ‘점프 대표’라는 직함을 보고 많은 독자가 ‘뮤지컬 기획사 대표가 웬 다문화 정책에 관한 글질인가?’라고 생각할 테니 간단하게 본인 소개를 하며 글을 풀어가는 게 순서일 듯하다.

2001년 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의 소수계 언론사에 취직돼 로스앤젤레스에서 8년간 기자 생활을 했다. 그곳에서 결혼해 아이를 키우며 한국식 표현을 따르자면 다문화인으로 살았다. 기자로서도 주지사, 서류 미비자(미등록 체류자), 미국에 망명한 탈북자 등을 취재했으니 이러구러 이민 사회의 다양한 결을 직간접으로 체험했다고 할 수 있다. 그 뒤 보스턴으로 건너가 대학원에서 2년간 공공정책을 공부하며 이민 문제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귀동냥했다.

되풀이되는 이주노동자 집중 단속

그리고 지난해 이맘때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역이민을 왔다. 정부에서 다문과 정책과 관련된 일을 해보고도 싶었으나 기회가 없었다. 결국 젊음의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생각해 함께 공부를 한 친구 5명과 함께 ‘다문화 청소년의 학력 증진 및 사회통합형 리더 육성’이라는 사회적 이윤 창출을 목표로 ‘점프’라는 단체를 시작했다.

ⓒ점프 제공점프가 운영하는 다문화 청소년 교육장 앞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1년이 지난 지금 점프는 서울, 부천, 인천, 안산 등 5곳에 교육장을 갖고 있다. 이곳 대학생 점프 선생님 15명이 다문화 중학생을 중심으로 한 취약 계층 청소년 40여 명에게 공정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더 많은 학생들에게 이런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다.

다시 다문화 정책으로 돌아오자면, 전 세계적으로 이민정책은 실패의 역사라 할 수 있다. 미국, 독일, 프랑스 같은 서구 국가는 물론 우리와 비슷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일본도 이 문제에 관한 한 묘수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한국의 다문화 정책은 우리보다 앞서 다문화 사회로 전환한 이런 나라들의 실패담에서 교훈을 찾아야 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는 정책에서는 이런 고민의 흔적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갖가지 문제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민정책은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맞춰져야 한다. 그리고 그 비용은 이민자와 그 문화를 통제나 통합의 대상이 아닌 우리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정할 때 최소화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다문화 정책 혹은 이민정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이 존재하는 근본적 이유는, 수용 국가에서 이민자를 경제적 이유로 받아들이며 인권이 아닌 경제 논리에 따라 그들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국가와 그 사회의 구성원(원주민)은 기본적으로 이민자를 자국의 부족한 노동력을 채워줄 경제 발전의 수단으로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각 국가는 높은 수준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이민자를 선호하는 게 현실이다.

물론 미국과 북유럽 등 일부 국가에서 2차 세계대전, 베트남 전쟁, 이라크 전쟁, 수단 내전 등 분쟁 지역의 탄압받는 사람들을 인도적 차원에서 받아들이고 있기는 하지만 그 숫자는 전체 이민 인구 차원에서는 미미하다. 한국과 일본 같은 나라는 인도적 차원의 망명자를 거의 받아들이지 않는다.

1세대 이민자의 대다수를 구성하는 이주노동자는 이 같은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거나, 이민 후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된다. 하지만 자국보다 높은 임금에 따른 경제적 대가 때문에 새롭게 터를 잡은 나라에서 겪는 차별과 이질감 등 많은 불만 요소를 억누르며 살아간다.

이 경우 양측의 이해관계가 일치해 당분간 안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가 어려워지면 불안한 구조는 바로 노출된다. 사회 구성원은 대안을 세우라고 정부를 몰아세우고, 정치인들은 투표권이 없는 이민자를 희생양으로 지목한다. 한국을 포함해 미국, 일본, 독일 등 거의 모든 이민 국가가 정기적으로 ‘자국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은’ 서류 미비 노동자에 대한 집중단속을 펼치는 이유다.

선진국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쪽으로

미국 땅에 입국한 한국인 대다수는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그야말로 자신의 삶을 헌신한다. 두세 가지 일을 하면서 여유가 생기면 학군이 좋은 지역에 월세방이라도 얻는다. 당연히 해당 도시 정부는 학생과 의사소통이 안 되는 학부모를 돌보기 위해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세금 부담이 늘거나 세금 혜택이 줄어드는 원주민 중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일부 인종주의자는 이민자가 없는 지역으로 이사를 간다.

최근 미국 사회에서는 대학 진학 시 이민자 가정의 자녀에게 가산점을 주는 소수계 우대정책의 폐지 및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또 속지주의임에도 불구하고 원정출산자에게는 시민권을 부여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도 추진되고 있다.

ⓒ뉴시스이주민 출신 이자스민 당선자(왼쪽)가 새누리당 회의에 참석했다.

한국 사회에서도 크고 작은 파열음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많은 경우 언론이 나팔수다. 경찰의 늑장 대응이 원인을 제공했던 수원 여성 살인사건의 경우 살인자가 조선족이라는 사실이 더 크게 강조됐다. ‘다문화특구’라 불리는 안산시 원곡동 지역의 경우 원주민이 줄고 이주민 비율이 늘면서 범죄율이 올라갔다는 식의 선동적인 기사가 튀어나온다.

이민 사회가 겪고 있는 구조적 문제의 정점은 이민 2세의 정체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가장 극적으로 표출된다. 대부분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 노동자를 이민자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수용 국가에서는 은연중에 이주민을 2등 국민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문화적 우월주의 때문에 프랑스의 히잡 착용 금지, 추석날 김치 담그기 행사에 이주 여성 동원하기 같은 정책과 이벤트가 기획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부모 나라의 문화에 대해 자긍심을 갖고 있어야 할 이주민과 그 자녀들에게 한국인이 될 것을 강요하면서도 피부색과 뿌리가 다른 그들을 정서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많은 이주민 자녀들이 혼란과 좌절과 아픔 속에 성장기를 보낸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미국식 교육을 받은 코리안 아메리칸들이 미국 사회에서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생각해보면, 한국 내 이민자 자녀들의 아픔을 좀 더 가깝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005년 프랑스 전역을 달구었던 아랍계 청소년들의 폭동은 이러한 이민 2세들의 분노가 표출된 결과이다. 자유·평등·박애를 부르짖는 프랑스의 형편이 이럴진대, 백의민족 신드롬에 사로잡혀 있는 한국의 미래는 불문가지다.

이렇게 복잡다단한 이민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만병통치 정책은 없다. 앞서 밝혔듯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접근법을 택해 한 걸음씩 천천히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정책과 더불어 국민 정서도 변화해야 한다. 미국 등 이민 역사가 긴 나라들은 대부분 이민자에 대한 분리·관리 정책에서 동화·흡수 정책으로 기조를 바꿨다. 최근에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인정하면서 공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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