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받는 세상에 불을 지른 소년
  • 송지혜 기자
  • 호수 246
  • 승인 2012.06.0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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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가정 청소년인 임군은 방화범으로 수감돼 있다. 조부모 밑에서 자란 임군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가출을 반복했다. 일자리를 구하다 조롱을 받기도 했다. 그는 주택가를 돌아다니며 폐휴지에 불을 질렀다.
속눈썹이 짙고 얼굴이 하얀 소년. 찌개를 좋아하고 한국말이 능숙한 임종수군(가명·18)은 서류상 ‘다문화 가정’으로 분류돼 있다. 1994년, 임군은 러시아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 살 되던 해 모스크바에서 서울로 온 그는 러시아보다 한국 문화가 더 익숙하다. 하지만 여느 ‘한국 청소년’처럼 살 수 없었다.

임군은 현재 방화범으로 수감돼 있다. 그가 최초로 불을 지른 것은 지난 1월15일. 친구 전 아무개군(18)과 함께 영화 〈괴물〉을 이야기하던 중에 주인공이 괴물을 물리치는 장면을 떠올렸다. ‘화염병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순진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두 사람은 서울 광진구에 있는 임군의 모교를 찾아갔다. 180㎖ 작은 유리병에 라이터용 기름을 넣어 화염병을 만들었다. 그리고 재빨리 급식소 건물 외벽에 설치된 하수구로 던졌다. 다행히 불길은 크게 번지지 않았다. 전군은 “종수가 ‘바닥에 던지면 사람들이 지나가기 불편할 것 같고, 학교 잔디에 던지면 큰불이 날 테니 하수구에 던지자’고 했다”라고 말했다.

ⓒCCTV 화면 캡쳐3월3일 밤 주차장 폐휴지에 불을 지른 임군의 CCTV 화면.

또다시 불을 지른 것은 그로부터 보름여가 지난 2월3일, 서울 광진구 구의동. 3월3일 밤 11시55분에는 화양동 연립주택 주차장 한쪽에 쌓인 폐휴지에 불을 붙였다. 세 번째 방화였다. 불길은 인근 주택으로 옮아붙었다. 임군은 소방차가 오는 것을 지켜본 뒤 2㎞ 떨어진 자양동으로 걸어가 다세대 주택 1층 입구에 있던 폐휴지에 또 불을 붙였다. 이어 50m 떨어진 주택 주차장에 쌓여 있던 쓰레기 더미에도 불을 질렀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밤 이어진 세 차례 방화로 총 2200여 만원의 재산 피해가 났다.

방화범으로 체포될 당시 임군은 가출한 상태였다. 다니던 고등학교는 지난해 자퇴했다. 임군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가 없었다. 러시아인 어머니는 임군의 동생이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집을 나갔다. 아버지가 모스크바에서 두 달 동안 아이들을 키웠지만, 혼자서 역부족이었다. 할머니와 막내 삼촌이 러시아로 가서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임군이 두 살, 임군의 동생이 생후 4개월 되던 때였다. 그런데 몇 개월 만에 아버지마저 러시아 현지에서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 이때부터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실질적 보호자가 되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형제에게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입학 즈음 할아버지의 사업이 부도를 맞으면서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2005년 이후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됐다. 초등학교 같은 반이었던 한 친구는 임군에 대해 “단체 생활을 힘들어하고, 늘 위축돼 있었다”라고 기억했다. 이따금 이유 없이 결석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임군의 할아버지(76)는 임군이 초등학교 입학 이후 ‘혼혈인’이라는 것을 인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두 아이의 생김새가 한국인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데도 한국인 핏줄이 아니라며 놀림받았다. 스트레스가 컸을 것이다”라며 흐느꼈다. 친구는 “(임군이) 위축돼 있으니, 주변 친구들도 혼혈인이라고 더 얕잡아봤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조부모의 사랑도 임군이 엇나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중학생이 되자 가출이 잦아졌다. 자연히 결석 횟수가 늘어났다. 할머니가 한두 달에 한 번씩 학교에 찾아가 상담을 하기도 했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2008년 중 2에 재학 중이던 어느 날, 한 선생님은 임군에게 한 위탁교육기관을 추천했다. 일주일여 준비 적응기간을 거쳐야 했는데, 임군은 첫날만 출석한 뒤 바로 집을 나갔다. 임군을 기억하는 한 위탁교육기관 교사는 “할머니가 통사정을 해 종수에게는 특별히 수탁 기회가 세 차례나 주어졌다. 하지만 종수는 학교를 다닐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였다”라고 말했다. 다니던 중학교에서도 출석일이 모자라 유급당했다.

“할아버지, 바닷가 가서 살자”

2010년, 임군은 중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치르고 이듬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할머니의 간절한 바람 때문이었다. 그러나 3월에 입학한 뒤 자퇴한 5월까지 재학한 60여 일 동안 출석 일수는 40일이 채 되지 않았다. 자퇴 이후 다시 가출이 이어졌다. 이때, 할머니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고가 났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임군은 크게 오열했다고 한다.

사고가 난 이후에 임군은 할머니가 없는 집으로 돌아왔다. 할아버지는 화가 날 때 이따금 ‘할머니가 너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학교 자퇴 이후 이런저런 아르바이트에 나섰지만 임군은 사회 생활에도 잘 적응하지 못했다. 올해 초, 임군은 초등학교 앞에서 피에로 분장을 하고 전단을 나눠주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런데 ‘초등학생이 나를 무시한다’며 몇 시간 만에 일을 그만두었다. 그러고서 가출해 불을 낸 것이다.

임군이 불 지른 폐휴지 더미는 화양동 주민 김 아무개씨(74)가 수거해 모은 것이었다. 가출 후 산에서 지내던 임군은 이따금 산에서 내려오면, 김씨의 폐휴지 수거를 돕고서 얻은 빵으로 끼니를 해결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김씨가 빵을 주지 않자 홧김에 불을 질렀다는 것이다. 임군은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았다. 짜증이 나서…”라고 말했다.

ⓒCCTV 화면 캡쳐임군이 지른 불이 인근 주택으로 옮아 붙었다. 소방관들이 불을 끄고 있다.

임군 동생의 사정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2학년 때 중학교를 그만둔 임군 동생은 검정고시를 통과해 지난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역시 2개월가량 다닌 뒤 자퇴했다. 지난 12월에는 폭행 혐의로 소년보호시설 감호위탁 6개월 처분을 받았다. 현재 그는 대전에 있는 보호치료시설에서 생활한다.

기자가 찾아간 임군의 방에는 4분의 1가량 공부한 대입검정고시 국어 기출 문제지가 놓여 있었다.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다던 임군은 현재 성동구치소에 수감된 상태다. 그는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주유소나 식당 서빙 아르바이트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며 말끝을 흐렸다.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 음식점에서는 임군에게 ‘(생긴 게 달라) 신뢰가 안 간다’ ‘저능아’라고 놀리기도 했다고 한다. 방화 사건이 있기 직전에는 토끼를 데려와 방에서 혼자 키우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사랑이 고팠을 것이다. 할머니가 애를 썼지만, 부모에게 사랑받고 싶었을 거다”라고 말했다.

두 형제의 유일한 보호자인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홀로 쌀을 씻으며 눈물을 흘린다고 했다. 사업 실패 후 8년 동안 고등학교 경비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렸지만, 아내가 죽은 뒤에는 두 손자를 돌보기 위해 하던 일마저 그만두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할아버지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통계에 따르면 이주민 자녀 상당수는 학교 생활이나 사회 생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범죄자로 내몰린 임군은 그중에서도 극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임군을 잠시 담당했던 교사는 “다문화 가정에 대한 차별과 가정 환경의 어려움이 동시에 겹쳤던 것 같다”라며 안타까워했다.

5월11일, 임군은 현주건조물방화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수감된 이후, 할아버지를 만난 임군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할아버지, 바닷가에 가서 살자. 내가 고깃배 타고 돈 벌어올게. 서울을 떠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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