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고령화’가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과제로 떠오른 지는 제법 오래되었다. 이는 말 그대로 젊은 부부들은 아이를 적게 낳는 반면, 노인은 수명이 길어졌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당연히 해결책은 젊은 부부의 출산 기피 심리를 자극하는 과중한 보육·교육비 부담을 줄여주는 쪽으로 잡았다. 그래서 우리나라 복지 지출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것이 보육 관련 지출이다.

그런데 저출산 현상을 한 꺼풀 더 벗겨보면 만혼(晩婚)과 젊은 독신(싱글)의 증가가 나온다. 예컨대 1991년 우리나라 평균 결혼 연령은 남자 27.91세, 여자 24.84세였다. 20년이 흘러 2011년에는 남자 31.90세, 여자 29.14세다. 20년 동안 남자는 4세, 여자는 4.3세 늘었다. 서울은 전국 평균보다 더 높아, 1991년에는 남자 28.38세, 여자 25.58세였는데, 2011년에는 32.26세, 30.03세로 늘었다.

만혼과 싱글, 달리 말하면 결혼 연기·기피의 원인을 파고들어가 보면 굵직굵직한 사회경제적 문제와 문화(풍조)적 문제가 나타난다. 사회경제적 문제의 선두에는 결혼과 출산의 필수 요소로 여겨지는 괜찮은 일자리 부족과 대도시일수록 급상승하는 신혼집 마련 비용 문제가 있다. 뒤이어 높은 대학진학률 등으로 인한 입직 연령의 상승 문제도 있다. 한번 민간·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에 발을 들여놓으면 영원히 헤어나지 못한다는, 사회적 이동성에 대한 절망도 빼놓을 수 없다. 낮은 출발을 극도로 기피하는 젊은이들은 고시촌에서 각종 고시·공무원시험 준비를 하거나, 번듯한 직장을 찾아 헤매며 청춘을 보낼 공산이 크다. 과거에 지하 셋방과 단칸방에서 과감히 신혼살림을 시작하는 부부가 많았던 것은 기본적으로 공장 기숙사 생활보다 훨씬 낫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내일보다 나은 모레가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한번 낮게 출발하면 영원히 낮게 간다는 냉철한 인식이 만혼을 부른다.


ⓒ뉴시스한 결혼정보 회사가 주최한 미혼 남녀 단체미팅 행사.

사회문화적 문제로는 젊은 세대 전체가 공유하는, 자유롭고 자립적인 생활에 대한 욕구를 빼놓을 수 없다. 현대의 문화적·기술적 환경은 미혼의 싱글 생활을 얼마든지 즐겁게 꾸릴 수 있도록 해준다. 이를 뒷받침할 일자리나 소득이 부족한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튼 결혼이 동반하는 다양한 형태의 속박을 절감하는 젊은 여성들은 거칠 것이 없는 싱글 생활을 즐기는 편이다. 


신혼집 신랑이 책임지는 인습도 문제

또한 서울이라면 전세금이 최소 1억원이 넘는 신혼집을 신랑이 전적으로 책임지고, 신부는 2000만원이면 충분한 혼수를 책임지는 (신부 부모가 특히 집착하는) 오랜 인습도 남자에 대한 부담 편중을 초래하여 만혼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 2010년 여성가족부가 전국 25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남자의 신혼집 마련 비용 평균은 6465만원인 데 비해, 여자는 512만원에 불과하다. 결혼에 드는 총비용은 남자가 8078만원, 여자가 2936만원이며, 여자의 75%는 신혼집 마련 비용을 전혀 부담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결혼하는 자식에 대한 중산층 이상 부모(이들 대부분은 부동산을 통한 재산 증식에 성공했다)의 신혼집 마련 비용(전세금 따위) 증여 문화도 신혼부부의 출발선 내지 기대 수준을 높여서, 그 선에 도달하지 못한 가난한 집안 청년의 결혼을 어렵게 한다.

사회정책의 기본은 법·제도, 재정, 캠페인 등으로 바꿀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데 있다. 동시에 볼링의 5번 핀처럼, 하나를 쓰러뜨리면 나머지 핀이 다 쓰러지는 킹핀을 찾아내어 힘을 집중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자유롭고 자립적인 생활에 대한 욕구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및 경력 개발 욕구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 한국 중산층의 자식에 대한 증여 문화에서 기인하는 지나치게 높은 출발선 문제와 신혼집 마련에 대한 신랑의 과도한 책임 등은 불합리한 인습이긴 하지만 국가의 정책 의지로 쉽게 바꿀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이는 자발적인 문화운동(후진적 인습 혁파 운동) 등으로 개선해야 할 어떤 것이다.

그런데 신혼부부의 보금자리 마련 비용은 국가가 상당 부분 줄여줄 수 있다. 부동산 시장을 왜곡하고 주택 관련 공기업(LH·SH)의 적자를 폭증시켜 지속 가능한 사업은 아니라는 것이 중평이지만, 어쨌든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 사업으로 시작해 10만 가구 넘게 공급된 보금자리주택이 그 일례다. 국가의 신혼부부에 대한 주거비용 분담정책은 임대료 지원정책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될 수 있다.


 

만혼이나 결혼 기피·포기 현상을 초래한 사회경제적 문제의 핵심은 괜찮은 일자리가 늘어나기 힘든 구조에 있다. 과도한 대학진학률, 너무 높은 입직 연령, 높은 기대 수준의 뿌리도 이 구조에서 발원한다.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만악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괜찮은 일자리 부족 혹은 사회적 이동성 저하 문제의 원인은 교사, 공무원, 은행원, 자동차 조립공, 대·공기업 직원 등 주요 직업, 직장의 연평균 임금이 그 나라 1인당 국민소득의 몇 배쯤 되는지를 따져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은행, 증권사 같은 수익성 좋은 회사, 현대자동차 같은 시장지배적 대기업, 공공 부문 등의 정규 직원이 되면 팔자가 피고, 민간·중소기업, 하청 기업 등에 들어가면 인생이 꼬인다. 130만명가량인 공공 부문은 2000만명 이상인 민간 부문에 비해 고용이 매우 안정적이고 임금도 높다. 당연히 고용 비중이 클 수가 없다. 대우자동차·쌍용자동차·한진중공업 등 한때 잘나갔지만 지속적인 수익성 악화로 존망의 기로에 선 회사가 구조조정에 돌입하면 예외 없이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절규가 터져나온다. 인수봉에서 추락하기 때문이다.


좁고 높은 인수봉을 넓고 낮은 남산으로

그런데 선진국은 좋은 회사와 보통 회사 간에, 고숙련·전문 직능과 저숙련·단순 직능 간에 임금 격차가 크지 않다. 공공 부문의 고용과 임금이 민간 부문에 비해 결코 높지 않다. 당연히 공공 부문 고용 비중이 크다. 격차가 크지 않으면 유사시 구조조정이 어렵지 않다. 기업도 호황기나 잘나갈 때 채용을 겁내지 않는다. 외주·하청화에도 적극적일 이유가 없다. 당연히 대기업 고용 비중이 높다.

한마디로 1인당 국민소득의 창으로 보면, 한국의 고용임금 체계는 북한산 인수봉, 선진국은 서울 남산이라 비유할 만하다.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수준이 너무 높고 정상은 너무 좁기 때문이다. 올라가는 줄이나 사다리도 부족하다. 그나마 교육·시험이라는 사다리 말고는 없다. 살인적인 경쟁은 필연이다. 용케 올라가도 불안하다. 매트리스(사회안전망)가 얇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는 엄청난 낙차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출산 고령화와 그 핵심 원인인 출산과 결혼 연기·기피·불능 사태를 혁파할 ‘킹핀’ 정책은 좁고 높은 인수봉을 깎아, 넓고 낮은 남산을 만드는 것이다. 연대임금제, 대기업과 공공 부문의 자제, 최저임금 인상, 누진소득세제 등을 통해 전반적으로 사회경제적 격차를 줄이면서, 노동의 질(성과·능력)과 우리의 생산력 수준과 새로운 경제·산업 환경에 조응하도록 사회경제적 격차를 합리적으로 바꿔나가면서 유연하고 안정적인 고용임금 체계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결혼·출산 기피를 혁파하는 길이다.

기자명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결혼불능세대〉 공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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