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날, 통합진보당 폭력 사태가 터졌다. 덕분에 달콤함에서 단숨에 깨어났다. 이번 호에 실린 기사와 외고 상당수가 이로 인한 후유증을 호소하고 있으니 이 지면에서까지 우울한 이야기를 보태진 않으련다.

그래도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겠다. 1년여 전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합당 소식을 전한 〈시사IN〉 커버스토리 제목이 ‘셸 위 통합’이었다. 유시민·이정희 대표가 눈 맞추며 춤추는 이미지를 선보였다가 ‘악의가 있는 것 아니냐’는 오해도 받았다. 양당 지지자조차 모르는 사이 급조된 ‘애정촌’. 어리둥절했지만 그만큼 정치 세력을 확대하고픈 열망이 절박하다는 뜻이겠거니 했다. 살아온 이력이나 가치·성향으로 봐서 쉽게 어울릴 것 같지는 않지만 기왕지사 맺어진 남자 1호와 여자 1호, 잘살았으면 했다.


그런데 결과는? 보시는 대로다. 그렇다 해도 이혼한 연예인을 놓고 그러듯 너도나도 독하게 여론재판을 벌여대는 모습은 아무래도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이른바 당권파가 이번 과정에서 보인 비민주적 행태나 상식 이하의 발언·논리를 옹호하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다. 북한과 관련된 미심쩍은 의혹들 또한 이들 스스로 국민 앞에 해소해야 할 일이다. 그렇지만 이로 인해 진보 정당이 내걸었던 통일이나 자주의 기치마저 도매금으로 매도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노동과 통일은 한국의 진보 정당으로서 반드시 매달고 가야 할 양 날개였다.

최근 법륜 스님이 펴낸 대화록 〈새로운 100년〉을 보며 감회가 묘했다. ‘즉문즉설’ 강의 현장에서 본 그는 아이돌 스타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런 그가 이번 책에서 꺼낸 주제는 뜻밖에도 통일이었다. 부부간 불화, 자식 키우는 고민…. 뭐 이런 것만 우아하게 얘기하고 다녀도 서포터스 넘칠 이가 왜 이런 인기 떨어질 주제를? 그는 말한다. 우리는 지금 한계에 봉착해 있다고. 경제성장도 예전 같지 않고, 행복지수는 OECD 국가 중 최하다. 양극화의 덫은 갈수록 우리를 옥죈다. 이를 제대로 해소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 분단의 질곡을 벗어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미·중 신냉전의 도래라는 엄혹한 시대 조건은 우리에게 오래 망설일 시간조차 허락지 않는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이 어디 그런가? 본시 통일에 관심 없는 보수 세력은 그렇다 치고, 진보마저 통일을 입에 올리는 것이 금기가 되는 것은 아닐까 싶은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가는 중이다. 이러다가는 ‘결혼 불능 사회’처럼 ‘통일 불능 사회’의 저주가 우리 스스로를 좀먹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5월의 끝자락이 스산하다.

기자명 김은남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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