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중위 오른손의 진실이 밝혀졌다. 1998년 2월24일 판문점 241 GP에서 의문의 두부 권총 총상을 입고 사망한 경비 소대장 김훈 중위가 스스로 총을 쏘지 않았다는 사실이 과학적 실험을 통해 입증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국회 국방위 소속인 서종표 의원(민주통합당)과 국민권익위원회의 요구로 지난해 말부터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벌여온 국방부 조사본부가 3월22일 실시한 총기시험 결과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과학적으로 분석하면서 드러났다.

군 내부의 고질적 의문사 문제를 인권 이슈로 공론화하는 데 기폭제가 됐던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해 그동안 군 수사당국은 세 차례에 걸친 자체 조사를 통해 거듭 ‘격무와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이라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국회(국방위원회)와 대법원,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등 다른 국가기관은 이 사건 재판 및 재조사 과정을 통해 군 수사당국의 거듭된 자살 결론을 수용하지 않았다. 


3월22일 국방부 조사본부는 14년 만에 김훈 중위 사망 진상 조사를 위해 총기 발사 시험을 실시했다.

이처럼 김훈 중위 사망 원인을 둘러싸고 3개 국가기관이 과거 국방부 특조단이 내린 자살 결론에 손을 들어주지 않자 국회 국방위원회와 육사 총동창회, 김훈 중위 동기회(육사 52기) 등에서는 지난해부터 김 중위를 순직 처리해 국립묘지에 안장함으로써 명예를 회복해줘야 한다는 요구가 들끓었다. 사건 진정을 받은 국민권익위원회에서도 재조사에 들어가 국방부로 하여금 김훈 중위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도록 촉구해왔다.

이런 배경 속에 과거 국방부 특조단의 ‘자살’ 결론을 방어하던 국방부 조사본부는 지난해 말부터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시작했다. 김 중위가 자살했다면 초동수사에서 그 근거가 될 유서의 존재, 자살 배경과 동기가 사실대로 드러나고, 객관적 부검 결과와 총기시험 등 과학적 분석 결과 등이 자살자의 특징과 합치돼야만 한다. 하지만 김 중위에게는 유서도 자살할 만한 이유도 없었다는 점이 밝혀졌다. 부검 군의관은 김 중위 사체를 처음 수습한 미군 군의관이 임의로 권총 탄환 사입구의 화약과 혈흔 잔재를 닦고 마치 자살자처럼 변형해 보낸 김 중위 시신을 받은 뒤 부검도 시작하기 전에 ‘자살’이라고 문서에 표기했다가 유족의 항의를 받고 취소하기도 했다. 또 군의문사위 조사 결과 과거 특조단이 주장한 김 중위의 자살 동기나 징후는 허위라는 점이 드러난 상태다.

따라서 남은 재조사의 핵심은 그동안 김훈 중위 사인을 둘러싸고 최대 쟁점이던 ‘누가 권총을 발사했는가’를 과학적으로 가리는 총기 발사 시험으로 모아졌다. 오른손잡이인 김훈 중위가 스스로 피스톨 권총(M9 베레타)을 격발했다면 방아쇠를 당긴 오른손에 어떤 식으로든 뇌관화약 잔재물이 남아 있어야만 자살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다. 하지만 김 중위 사망 후 군 수사당국이 세 차례나 요란한 수사를 벌였지만 이런 과학적 실험은 전혀 실시하지 않았다. 


김훈 중위
엄지손가락으로 당겨도 뇌관화약 남아

주목할 점은 김 중위 사망 현장을 최초에 장악한 미군수사대(CID)가 사체의 양손과 팔, 피복 등에 뇌관화약이 분포하는지 시료를 채취해 미국 본토에 있는 육군범죄수사연구소에 보냈는데 그 결과 김훈 중위의 왼손바닥에만 화약 잔재물이 강렬하게 부착돼 나올 뿐 오른손에는 어떤 화약 잔재물도 없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는 점이다. 미군 연구소에서는 김 중위 사체에서 채취한 시료 분석 결과를 주한 미군 수사대에 회신하면서 “오른손잡이(김 중위)의 왼손바닥에서만 뇌관화약 잔재물이 나왔다는 점은 스스로 쏘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됨”이라고 주의 문구까지 특별히 넣어서 보냈다. 그러나 당시 군 수사당국은 타살 정황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해줄 수도 있는 미군 연구소의 이런 분석 결과를 아예 묵살했다. 대신 부검 군의관(이상한 대위, 현 경북대 법의학부 부교수)의 자살 주장을 옹호하던 고려대 황적준 교수가 편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격발하면 뇌관화약 잔재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에 기대버렸다.

자살 결론을 고수하기 위해 심지어 군 수사팀은 국가 공문서 조작도 서슴지 않았다. 1998년 10월 김훈 중위 유류품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 증거물 감정을 의뢰하자 국과수는“김훈 중위의 야전 점퍼 좌우측 어깨에서 무연화약 성분이 검출되나 양손에 대한 뇌관화약 검사를 별도로 실시하지 못해 발사자가 누구인지 논단할 수 없다”라고 회신했다. 하지만 국방부 특조단은 국과수 회신 문구를 조작해 “(국과수는) 김훈 중위가 스스로 사격했다고 했다”라고 거짓 발표했다.

따라서 이번 총기 발사 시험은 국방부 조사본부가 사건 발생 14년 만에 비로소 과학적 기법을 동원해 직접 진실을 가리려 시도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총기 발사 시험은 3월22일 특전사 공수여단 실내사격장에서 김훈 중위가 사망하던 당시 판문점 241 GP의 조건과 모형을 그대로 재현한 가운데 실시됐다. 정상적인 권총 자살 자세(오른손 검지손가락 격발)를 취한 4명과 그동안 자살론을 편 일부 법의학자들이 주장한 자세(오른손 엄지손가락 격발)를 취한 6명 등 총 10명이 시험에 참가했다. 또 김 중위 사망 초기 미군 군의관 등이 현장을 오고 간 주변 정황을 재현하기 위해 발사자가 4시간 동안 김 중위와 같은 사체 자세를 취하도록 하고 그 사이 사람이 드나들도록 했다. 자살과 타살 양측이 주장하는 각기 다른 총기 격발 자세와 현장 조건을 두루 갖춘 실험이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김 중위의 실제 사망 현장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발사 4시간이 지난 뒤 10명의 시험 참가자들 양손과 팔, 피복 등에서 뇌관화약 존재 여부를 밝혀줄 시료를 채취했다. 이 시험 시료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졌다.

최근 국과수에서 이 시험 분석 결과가 나왔다. 놀랍게도 10명 전원의 오른손에서 뇌관화약 잔재물이 검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M9 베레타 권총은 김 중위 사망 현장과 같은 조건에서는 어떤 사격 자세를 취하든 방아쇠를 당긴 손에서 뇌관화약 잔재물이 검출된다는 점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그동안 김훈 중위 자살론자들이 법의학적 자살 근거라고 내세웠던 “김훈 중위가 왼손으로 총열을 잡고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겨서 격발했기 때문에 오른손에서 뇌관화약 잔재가 검출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한다”라는 논거가 단박에 허물어진 것이다.


국과수 감정 결과 총기 발사자 10명 전원의 오른손에서 뇌관화약이 검출됐다.

이 시험에 앞서 국방부 조사본부는 국과수에 “(스스로 쏜 사람이) 권총을 어떤 방법으로 파지했을 때 오른손에서 뇌관화약 잔재가 검출되지 않을 수 있나?”라는 질의를 했다. 이에 대해 국과수는 “그 원인으로는 일반적인 권총 파지 자세가 아닌 다른 형태의 파지 자세로 격발했을 가능성과 실제로 (김훈 중위가) 총기를 격발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추정할 수 있다”라고 회신했다. 다른 형태의 파지 자세에 대해서는 엄지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눌러 격발하는 파지 자세를 들 수 있다고 예시했다. 결국 이 같은 국과수의 분석 견해로 보면 다른 형태의 파지 자세를 취한 시험 참가자도 전원 오른손에서 뇌관화약 잔재가 검출됐다는 점에서 김훈 중위가 실제로 총기를 격발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국과수의 추정이 이번 총기 시험으로 증명된 셈이다.

이로써 국방부가 지난 14년 동안 완강하게 고수해온 김 중위 자살 결론은 비과학적인 단정이었다는 논란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국가보훈처와 국방부 등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국방부는 조만간 김훈 중위처럼 접경지역(GOP, GP)에서 원인 미상으로 사망한 장병에 대해서는 순직 처리와 함께 적절한 보훈보상을 실시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훈 중위의 부친 김척씨(예비역 육군중장)는 “14년간 아들 사망의 진상 규명을 위해 뛰어온 것은 단지 시혜나 보상을 바라서가 아니었다.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진실을 밝히고 그동안 사건을 자살로 조작 은폐하는 데 앞장선 사람들에게 응분의 책임을 지우는 일이 우선이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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