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첫아이를 낳은 이지은씨(가명 ·29)는 아이의 백일 즈음에 우편물 한 통을 받았다. 아이 이름 앞으로 온 첫 편지였다. 안내문에는 만 0~2세 영아에 대해 어린이집 보육료를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올해 3월부터 정부가 실시하는 무상보육 정책의 일환(아래 표 참조)이었다. 안내문에 따르면 부모의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해당 나이에 속하는 영아(만 0~2세)가 어린이집 등 보육시설에 가게 되면 모두에게 보육료를 지원해준다고 했다.

이씨는 의아했다. “말도 못하는 아기에게 사회성을 기르게 할 것도 아니고, 전염성 질환도 염려되는 어린이집 단체 생활을 국가가 돈까지 줘가면서 권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는 평소 무상보육이 필요하다고 여겼지만 이런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작 어린이집을 활발히 다니는 연령대인 만 3~4세에 대해 지원하는 게 아니라, 만 0~2세 아이에 대해 먼저 지원하는 조처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이는 단순히 엄마의 ‘감’만이 아니다. 실제 수치가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해 1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소득계층별 출산·양육 행태 분석 및 정책방안’을 보면 만 3~4세 보육시설 이용률은 만 0~2세에 비해 2~3배 더 많다. 자녀를 둔 1838가구(2008년 기준)를 분석한 결과, 연령별 어린이집 또는 유치원 이용률은 △만 1세 이하 13% △만 2세 38% △만 3세 64% △만 4세 89% △만 5세 93%로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점점 늘어났다.


만 2세까지는 가정 양육 권고

현장의 목소리도 다르지 않다. 김성희 서울 서대문구립어린이집 연합회장은 “부모가 육아하기 어려운 경우라면 국가가 보육을 지원해야겠지만, 영아는 아동 인권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가능하다면 가정에서 기르는 게 좋다”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민간 어린이집 원장도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영아 전담 어린이집이 생기고는 있지만, OECD는 영아의 경우 만 2세까지 가정 양육을 권고한다. 이 사실은 유아교육을 전공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상식인데 정책은 좀 이상한 방향으로 나왔다”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러다 애들이 ‘엄마’보다 ‘선생님’이라는 말을 먼저 배우는 거 아니냐”라는 말이 오갈 정도다. 

만 3~4세 아이를 기르는 부모들의 반응은 더 적나라하다. 만 0~2세 아이들은 부모의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지원하면서, 자신들은 그렇지 못해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부모의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만 0~2세 보육료 지원이 시작된 지난 3월, 인터넷 다음 아고라에는 한 청원이 올라왔다. ‘5~6세는 대한민국 아이 아닙니까?(제도 지원에서 빠진 아이들은 만 3~4세로 한국 나이로는 5~6세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만 3~4세에게도 보육료 지원을 해달라는 내용이다. 보건복지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도 항의 글이 올랐다. 

 

 

 

 

ⓒ뉴시스1월12일 국회 앞에서 서울 YMCA 시민중계실 회원들이 만 0~2세 무상보육 정책 수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하루 만에 급조된 무상보육

유아교육 전공자들도 갸우뚱하는 이런 정책이 어떻게 해서 나온 걸까. 보건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 예산에 없던 내용이 국회 심의 과정에서 증액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만 0~2세 대상의 무상보육 정책에 비판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보건복지부의 의지가 아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결국 정책 우선순위와 재원 배분의 문제인데, 관련 공무원인 내가 결정했더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한 것이니 그 자체로 존중하고 싶다”라며 말을 아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지난해 12월31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그날 마지막 국회 예산결산특별소위가 열렸다. 예결특위는 이듬해 국가 예산을 최종적으로 심사하는 자리이다. 보건복지부는 2011년과 마찬가지로 만 0~2세 영유아 보육료 지원은 부모 소득 하위 70%만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는 안을 올렸고, 이 안은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소위는 12월20일부터 시작되었는데, 6차 회의가 열린 12월27일까지 ‘보육료’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12월31일, 7차 회의가 마지막으로 열렸다. 이날 회의에서 주승용 의원(민주통합당)이 갑자기 증액된 보육료 3697억원의 쓰임새를 문제 삼았다. 다음은 당시 예결특위 소위 회의록에 나오는 주 의원의 발언이다.

“지금 3697억 반영한 것이 0세부터 2세라고 한다면, 지금 급한 것은 3세와 4세가 제일 급합니다. 지금 정부가 지원해주는 표준 보육료보다도 월 10만원씩 못 받고 있는 데다 3세, 4세가 시급한데 지금 정부에서 0세부터 2세까지 지원해준다는 것은 정말 생색만 내려고 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0세부터 2세까지 시설을 이용한 영·유아들이 아주 적어요.”

주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예결특위 내내 한마디도 언급이 없었던 무상보육 예산이 예결특위 마지막 날인 12월31일에 갑자기 튀어나왔다. 정부·여당이 2012년 선거를 앞두고 무상복지 정책은 내놔야겠는데 돈은 3000억~4000억원밖에 없으니까 그 돈에 맞추어 대상을 만 0~2세로만 한 거다. 만 3~4세를 적용하기에는 예산이 부족하니까 연령대가 그렇게 결정된 거다. 당일 갑자기 나온 내용이라 문제점을 제대로 지적할 새도 없이 통과되어버렸다.” 

 

 

 

 

 

 

 

 

ⓒ김흥구올해부터 만 0~2세 아이들에 대해 보육료가 지원되면서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가 크게 늘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와 정치권 인사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2012년부터 실시된 만 0~2세 무상보육은 정치 일정과 재정 상황을 동시에 고려해 하루 만에 급조된 정책인 셈이다. 만 0~2세 보육료 지원에는 예산 3700억원가량이 증액되어 모두 1조8600억원이 집행된다.

이렇게 급하게 정책이 정해진 터라 곳곳에서 파열음이 터졌다. 한 육아 관련 단체에서 일하는 관계자는 “갑자기 올해 급히 현장 실사를 나가고 상황을 파악하느라 초창기에 난리를 피웠다”라고 말했다. 또 만 0~2세 무상보육 정책은 매칭 펀드(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같이 돈을 대는 방식)로 예산이 지원되는데, 미처 지방정부와 협의를 하지 못한 상태로 진행되는 바람에 지자체 단체장들이 재정 문제가 심각하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올 하반기 무상보육이 중단된다고? 기사 참조). 


어린이집 취원 경쟁 치열

정책 시행 두 달째. 현장에서는 어떤 반응이 나올까. 먼저 어린이집을 이용하려는 가정이 대폭 늘어났다(아래 표 참조). 전국에 있는 어린이집은 대략 4만 개. 어린이집 수는 그대로인데, 이용하려는 부모가 늘다보니 ‘취원 경쟁’도 치열해졌다. 그동안 아이를 집에서 키우던 ‘전업맘(전업 주부)’도 일단은 어린이집에 등록하고 보자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집에서만 키우면 혜택을 받지 못하니 자기만 손해라는 생각이 퍼져서다. 경기도 용인에 사는 김성은씨(가명·33)는 2월에 아파트 단지에 있는 어린이집 세 군데를 돌아다녔다. 17개월 된 아이를 취원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모두 ‘만원’ 상태였다. 김씨는 비교적 아파트 단지와 가까운 한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낼 수 있었다. 김씨는 “주변에서 아이를 너무 빨리 어린이집에 보내는 거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그런데 주변을 보면 내 아이 또래 열에 아홉은 어린이집을 보낸다. 아이를 키우면서 몸이 너무 안 좋고 육아 스트레스가 심했는데, 지금은 만족한다. 나를 돌볼 시간이 생기니까 아이와 남편에게도 더 잘 대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셋째를 낳은 주부 남소연씨(가명·31)도 비슷한 경우다. 지방 중소도시에서 사는 남씨는 올해 3월 아이를 언니가 근무하는 어린이집에 ‘등록’시켰다. 지금은 일을 하지 않지만 아이가 돌이 지나고 나면 일을 하려고 한다. 안 그래도 심한 어린이집 경쟁이 요즘 들어 더 심해져 막상 그때가 되면 어린이집을 구하기 어려울까봐 미리 조치를 취해두었다. 남씨는 볼 일이 있을 때에만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긴다. 병원에 갈 일이 있거나 할 때 서너 시간. 유아교육 1급 자격증이 있는 남씨는 애착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36개월 이하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게 좋지 않다고 배웠기에 일이 있을 때만 이용한다고 했다. 물론 이름을 등록해놓고 가끔 맡기는 식이라 ‘국가의 세금을 이렇게 써도 되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린이집에서도 좋아하는 눈치다. 똑같은 지원금을 받고도 ‘직장맘(취업 여성)’ 아이보다 ‘전업맘’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더 적기 때문이다. 뜻하지 않게 ‘전업맘 아이 vs 직장맘 아이’ 구도가 생겨버린 것이다.


국가가 여성 사회 진출 막나

실제로 보육이 필요한 맞벌이 가정 아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가기 힘들다는 민원이 잦아지면서, 정부는 지난 3월 말 각 민간 어린이집으로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민간 및 가정 어린이집 입소 우선순위 보완지침’이라는 제목의 공문은 맞벌이 부모·저소득층·다자녀 가구에 어린이집 입소 우선순위를 적용하라고 쓰여 있었다. 그동안 국·공립 어린이집에는 이런 규정이 적용되었지만, 민간 어린이집에 대해서까지 이를 ‘압박’하는 내용이었다.

김종해 가톨릭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보육료 지원은 시설의 원아 모집을 과열시켰다. 가정 보육시설이 증가함으로써 보육 서비스의 질 저하가 예상된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해에 비해 3월 현재 어린이집은 500곳 가까이 늘어났다. 이 중 가정 어린이집이 327곳, 민간 어린이집이 111곳이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의 최정은 연구원은 국공립 시설을 확충하지 않고, 이처럼 ‘현금 지원’을 하는 무상보육 정책이 결국 민간 시장을 키우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애초 무상보육은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공약이었다. 당시 이명박 후보는 “2012년까지 0~5세의 보육비를 전액 지원하겠다”라고 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8월 ‘서울시 무상급식 찬반 투표’를 앞두고서 정치적 이유로 이 공약이 재등장했다. 무상급식에 맞선 이슈로 정부·여당에서 ‘무상보육’을 들고 나온 것이다. 그렇게 정치적 이슈로 무상보육이 추진되었고, 공론화가 덜 된 상태에서 추진되면서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이다.

이는 또 다른 형평성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집에서 아이를 기르는 사람에게도 양육수당을 달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만 0~2세 자녀를 둔 차상위계층에게만 지원되는 양육수당을 보육료 지원과 같이 전 계층으로 확대하라는 요구이다.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내년부터 매달 25만원 선에서 전 계층에 양육수당을 주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차옥경 한국여성단체연합 사회권 국장은 “보육료 지원은 여성의 사회 진출을 장려하기 위한 정책이다. 그런데 양육수당까지 정부에서 주게 되면 국가가 양육을 여성에게 권장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최정은 새사연 연구원은 “국공립 어린이집을 확충하는 것을 현물정책이라고 하고, 부모들에게 돈을 주어 시장에서 보육 서비스를 구입하는 것을 현금정책이라고 한다. 정부는 현재 부모들의 피부에 와 닿고 홍보하기 좋은 현금 지원을 정책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국공립 시설을 늘리지 않고 민간 시장에 의존하면 이 비용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국가의 보육 플랜이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말로는 국가가 보육을 책임진다고 하면서, 보육시장만 키우는 꼴이라는 설명이다.

 

 

기자명 차형석·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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