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씨 억울함 보듬는 것도 숭례문 사건의 교훈이다
  •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 호수 24
  • 승인 2008.02.26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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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방화범 채 아무개씨는 방화범이기 이전에 민원인이었다. 그가 무리한 요구를 했다고 해도 우리 사회가, 특히 정부가 제 임무를 다했는지 의문이다. 진정인 처지에서 인생을 좌우할 문제가 풀리기는커녕 정부
채씨는 끝까지 억울하다고 했다. 국보 1호 숭례문을 잿더미로 만든 사람치고는 염치도 없어 보였다. “순간적인 감정으로 그런 일을 저질렀다. 문화재를 훼손해 국민께 죄송하다”라고 말은 하지만 반성하는 태도는 아니다. 입만 열면 억울하단다. 방화 책임에 대해서도 “노무현 대통령에게 99% 잘못이 있다. 나는 0.1%만 잘못했다”라고 항변한다. “그래도 인명 피해는 없었다. 문화재는 복원하면 된다”라는 말까지 듣고 나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채씨의 억울함은 토지 보상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값을 더 쳐줄 때까지 버텼는데, 조합이 제시한 보상금을 받고 떠난 사람보다 훨씬 낮은 감정가에 땅을 내놓아야 했던 게 ‘한’이 됐다. 가족은 “전셋집에도 못 사는 사람이 있다”라며 지난 일을 잊자고 했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나 보다. 채씨가 남들처럼 적당한 가격에 타협하지 못하고 끝까지 버티다가 결국 역사에 남을 만행까지 저지르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뉴시스
채씨(위)는 토지 보상 문제 때문에 숭례문에 불을 질렀다.
 
 
‘신자유주의’라는 고상한 이름이 지배하는 한국의 자본주의는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시장 만능의 원리로 작동한다. 돈이면 다 되는 사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꼽아보기조차 힘든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자신의 기대치보다 훨씬 싼값에 자기 부동산을 처분해야 한다면 그것은 곧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다. 너나없이 물신의 노예가 되어버린 세상에 국보가 되었든, 다른 사람의 생명이 되었든 내 돈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하겠다는 사람은 채씨 말고도 거리에 널렸다.

‘문화재야 복원하면 그만’이라는 그의 뻔뻔함 뒤에는 200억원이면 숭례문을 복원할 수 있다는 문화재청의 섣부른 셈법도 한몫했다. 채씨의 눈에 숭례문이 단지 200억원짜리 ‘부동산’이 된 것은 결국 문화재청의 계산에 따른 것이라고 봐야 한다. 600년을 이어온 공공의 유산에 불을 지른 만행을 용서하자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채씨도 우리의 이웃이고, 또 다른 모습의 우리 자신일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숭례문이 단지 200억원짜리 부동산이라고?

숭례문 화재 사건이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 한 가지는 이것이다. 그는 방화범이기 이전에 진정을 제기한 시민이었다. 채씨의 요구가 무리했다고 해도 우리 사회가, 특히 정부가 제 임무를 다 했는지 따져봐야 한다. 물론 정부 처지에서 볼 때 채씨처럼 법률상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는 이들은 분명 골칫거리다. 그래서인지 정부의 반응은 늘 한결같다. ‘이미 종결 처리된 사안이므로 불가. 양지 바람’ 하는 식으로 건조한 답변만을 내놓는다. 이처럼 뻔한 답변을 듣는 데도 몇 달씩 걸리기 일쑤다.

공무원은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을 자기 업무 부담만 늘리는 골치 아픈 존재로 여기지 말고, 가족이나 동창, 동료로 여길 수는 없는 걸까. 원하는 대로 처리해줄 수는 없다 해도 따뜻한 마음으로 위로하거나 설득했던 공무원이 있었다면 채씨가 숭례문에 불을 지르는 만행 따위는 저지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모든 시민은 공익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탐욕에 눈먼 사람이 많고, 채씨처럼 사욕을 채우지 못해 비뚤어진 사람도 적지 않다. 우리 사회가 좀더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그런 이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객관적으로 타당하든 아니든, ‘스스로’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기 심경을 토로할 공간이 있어야 한다. 이번 사건이 그들을 위해 우리 사회가 뭘 해야 하는지 살펴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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