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5월이 된다는 것은! 본격적인 맥주의 계절이 돌아온다는 의미다. 신록 속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즐기는 ‘낮맥’, 양화대교 아래서 한강의 야경을 보며 마시는 ‘강맥’, 맥주에 찰떡궁합인 닭튀김과 함께 즐기는 ‘치맥’ 등 가지가지 방법으로 맥주를 음용하는 사람들이 좀 더 많아질 것이다.

맥주 대국인 독일에서도 5월은 맥주 시즌의 시작이다. 쌀쌀한 한겨울에도 비어가르텐(Biergarten: 독일의 야외 맥주집)에서 입김을 호호 내뿜어가며 맥주를 마시는 독일 사람들인데, 하물며 5월에랴! 더구나 독일에서 5월은 아프릴베터(Aprilwetter: 직역하면 ‘4월 날씨’라는 뜻인데 하도 변덕이 심하고 비가 오락가락한다 해서 ‘미친 날씨’쯤의 뜻으로 쓰인다)가 지나가고 찾아오는 명실상부한 봄의 시작이다. 한바탕 축제를 벌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조바심이 사람들 마음속에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이다.

남부 독일의 맥주 축제라고 하면 누구나 뮌헨의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1810년 바이에른의 영주 루드비히 1세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열렸던 축제에서 기원한 이 맥주의 제전은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 일본의 삿포로 눈축제와 더불어 세계 3대 축제로 자리 잡았다. ‘10월 축제’라는 뜻의 이름 그대로, 옥토버페스트는 해마다 9월 마지막 주부터 10월 첫째 주에 걸쳐 열린다. 하지만 바이에른에서라면, 맥주 축제의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 10월까지 기다릴 이유가 전혀 없다. 뮌헨에서 북쪽으로 1시간30분 정도 떨어진 중세풍의 멋진 도시, 레겐스부르크에서 5월의 맥주 축제, 마이둘트(Maidult)가 열리기 때문이다.

 

ⓒ탁재형 제공레겐스부르크에서 열리는 마이둘트 축제의 모습. 일찌감치 광장에 차려진 맥주 천막에 모인 사람들은 30분에 한 번꼴로 권주가를 합창한다.

 


옥토버페스트보다 마이둘트!

‘5월 장날’이라는 뜻을 가진 마이둘트는 1389년, 이웃 도시와의 전쟁으로 피폐해진 지역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바바리아 공작으로부터 연중 2회의 축제를 열 권리를 확인받으면서 시작되었고, 이제는 바이에른에서 가장 먼저 열리는 맥주 축제로 자리 잡았다. 옥토버페스트보다 나은 점도 있다. 덜 붐비고, 차가 덜 막히면서도 축제 분위기는 그대로인 데다가 맥주 값도 옥토버페스트에 비해 20%나 싸니까 말이다.

축제 당일, 사람들은 일찌감치 둘트 광장에 차려진 맥주 텐트 안으로 모여든다. 시장님이 무대에 올라 그해의 첫 맥주통을 따서 건배를 제의하고 나면 본격적인 축제가 시작된다.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밴드와 팝송을 연주하는 밴드가 교대로 무대에 오르고, 사람들은 1ℓ짜리 맥주잔을 기세 좋게 비워댄다. 그러다 익숙한 전주가 흘러나오면 저마다 하던 이야기를 잠시 멈추고 합창에 가세한다.

“아인 프로싯! 아인 프로싯! 데어 게뮈틀리카이트!(건배하세! 건배하세! 건강을 위해!)”

간단해서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이 권주가는 축제 기간 내내 30분에 한 번꼴로 울려퍼지며, 모든 사람을 하나로 묶는 접착제 구실을 톡톡히 한다. 독일을 떠난 뒤에도 맥주를 마실 땐 혼자서 한참을 흥얼거리곤 했다.

마이둘트 축제에 사용되는 맥주는 ‘마이복’이라고 불린다. 마이복은 발효를 더 오래 진행시켜 알코올 도수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여름을 앞두고 만드는 맥주이기 때문에, 알코올 도수를 평상시에 비해 높게 만들어 변질을 막으려 했던 것에서 기인한다. 냉장 기술이 처음 발명된 것이 1834년이니, 맥주를 지금처럼 차게 해서 먹은 역사는 200년이 채 넘지 않는다. 그전에는 비어가르텐의 중심에 있는 밤나무 그늘이 맥주 온도를 낮춰주는 게 전부였다. 지금도 커다란 밤나무가 있는 비어가르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유다. 이런 연유에서인지 바이에른 사람들은 맥주의 온도가 얼음장처럼 차가우면 오히려 맥주 맛을 느낄 수 없다고 불평한다.

 

 

 

 

ⓒ탁재형 제공독일 뮌헨의 파울라너 양조장에서 생산된 맥주들(아래). 왼쪽부터 바이스비어, 마이복, 라거, 둥켈.

 


바이에른 맥주의 제왕, 바이스비어

바이에른 사람들의 맥주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는 뮌헨 공항 내의 양조장이다. 공항 안에 있는 맥주 양조장으로는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하는데, 비어가르텐을 겸하고 있어서 언제나 신선한 맥주를 맛볼 수 있다.

“어떤 손님이 지난주 목요일 10시쯤에 비행기를 타려 했는데, 저희 집 맥주 10잔을 마시고 그만 비행기를 놓쳐버렸지 뭐예요.”

자랑스러운 웃음을 지어가며 바텐더가 하는 말이다.

마이복이 바이에른 맥주계의 보졸레 누보라고 한다면, 바이스비어(백맥주. 밀이 첨가되어 맛이 부드럽고 향이 풍부하다)는 명실상부한 바이에른 맥주의 제왕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바이스비어는 가장 독일 맥주답지 않은 맥주 중 하나라는 점이다. 독일 맥주는 지금도 대부분 1516년에 공포된 ‘맥주순수령’에 따라 만들어지는데, 그 내용은 맥주를 만들 때 물·보리·홉(뽕나무과의 식물로 맥주에 특유의 쌉쌀한 맛을 가미해주고 발효 시 잡균의 번식을 억제한다) 이외의 원료를 쓰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이 법령은 독일 맥주의 맛과 품질 보증에 기여하기도 했지만, 보리 이외의 원료를 쓰는 맥주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밀을 원료로 하는 바이스비어가 문제였다. 맛은 뛰어났지만 결과적으론 제조 자체가 불법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특권층은 예외 규정을 만들어놓길 좋아했던 모양이다. 바이에른 공국의 왕실 내에서 사용되는 분량에 한해 소량의 바이스비어 제조가 계속되었고, 소수의 장인에 의해 그 제조 기법이 전승될 수 있었다.

바이스비어를 따를 때는 병을 휘휘 흔들어서 바닥에 가라앉은 효모 침전물까지 다 따라지도록 하는 것이 정석이다. 침전물이 걸러지지 않아서 불투명한 색채를 띠는 바이스비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잔잔한 행복감이 밀려온다. 난 지금 왕족에게만 허락되었던, 비밀의 맛을 입에 머금을 참이니까. 이 순간만은 내가 왕이니까.

 

 

 

기자명 탁재형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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