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지동의 어느 집 앞.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한곳을 응시했다. 한낮인데도 무섭다고 진저리를 쳤다. 노란색 폴리스 라인이 쳐진 이곳은 지난 4월1일 오원춘씨(42)가 곽 아무개씨(28)를 끌고 가 살해한 장소이다. 대문에서 오씨의 집 현관까지 성인 여성 걸음으로 약 30발자국. 인테리어 가게에 붙어 있는 좁은 통로를 지나야 하는 그의 집은 외부에서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곽씨의 언니(32)에 따르면, 곽씨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실업계 고교에 진학했고, 졸업 후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일했다. 혼자 힘으로 전문대에 진학해 졸업한 뒤로는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하지만 공부와 일을 병행하기란 쉽지 않았다. 더욱이 학원비 부담까지 겹쳐 3년 만에 꿈을 포기했다. 곽씨가 고향인 전북 군산을 떠나 언니가 사는 수원으로 올라온 것은 사고가 있기 고작 8개월 전인 지난해 8월. 경기도 오산에 있는 휴대전화 부품 공장에 다니다가 지난 2월 집 근처 공장으로 옮겨 일을 하고 있었다.

ⓒ시사IN 조남진살인 사건이 일어난 집 앞. 외부에서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다.

“당신 조선족이냐” 묻는 주민들

사고가 난 날은 일요일이었다. 평소 타고 다니던 마을버스가 일찍 끊겼다. 오후 10시32분에 촬영된 CCTV에는 오씨가 귀가 중이던 곽씨를 3m 떨어진 그의 집으로 끌고 들어가는 장면이 포착됐다. 경찰은 곽씨의 신고 전화를 받고도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 ‘CCTV가 없다’ ‘샅샅이 탐문 수사했다’ 따위 사고 직후 내놓은 경찰의 해명은 속속 거짓으로 들통 났다.

인근 상점 주인과 주민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분개했다. 경찰과 범인 오씨에게 하는 말이었다. 분노는 중국 동포(조선족)에게도 향했다. 범인 오씨가 조선족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인근 음식점에서 밥을 먹던 50대 남성은 종업원 윤 아무개씨에게 “당신, 조선족 아니냐”라고 물었다. 한참 동안 ‘조선족을 내쫓아야 한다’며 성을 부린 뒤였다. 윤씨는 “아니다. 나는 그냥 종업원이다”라고 얼버무렸다. 그는 조선족 출신이다. 윤씨는 조선족에 대한 분노를 체감하고 있었다. 한국에 온 지 4년. 한국인 남편을 만나 아이를 낳았고 ‘죽을 때까지’ 한국에서 살 생각이지만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움츠러든다.

그런가 하면 분식집에서 일하는 30대 여성이 “조선족이 있어서 나쁜 것만은 아니다. 밥도 좀 팔리고…”라고 말했다가 옆집 남자로부터 역정을 듣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그는 “몇 푼이나 번다고. 혼자 와서 잠깐 있다가 가는 사람들한테 덕 볼 것 없다”라며 화를 냈다.

조선족 사이에서도 이번 사건은 많이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사건 현장에서 만난 조선족 장 아무개씨는 “곱게 돈만 벌고 갈 일이지 조선족 망신만 시켰다”라며 울분을 토했다. 사건 이후 장씨는 한동안 눈칫밥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일감이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이었다. 장씨와 동행한 조선족 남성은 “범인은 네이멍구(내몽고) 자치구 사람이다. 우리와 같은 연변(옌볜) 출신 조선족이 아니다”라며 선을 그으려 했다.


ⓒ시사IN 조남진수원시 팔달구 지동 일대는 구도심 지역으로 전입ㆍ전출이 잦다.

재개발 앞두고 방치된 동네

사건이 발생한 지동 일대는 전형적인 구도심 지역이다. 한때는 동네가 번성한 적도 있었다. 지동과 가까운 수원역과 팔달문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돼 있었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 택지개발 바람이 불면서 ‘영통지구’ 등이 생겼고 지동을 비롯한 고등동 등 도심 지역은 방치되기 시작했다. 1997년, 지동과 인접한 수원 화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고 ‘문화재 보존’ 등을 이유로 개발 기피가 심해지면서 구도심의 슬럼화는 빠르게 진행됐다.

2007년 이 동네를 포함한 20여 구역에 재개발 바람이 불었다. 재개발 바람이 불면서 지역 사정이 더 나빠졌다는 게 동네 사람들 설명이다. 부동산업을 하는 임 아무개씨는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동네 관리가 아예 안 된다. 사정이 나아진 사람들은 생활 여건이 좋은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갔다”라고 말했다. 철거가 예정된 빈집은 자연스레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로 채워졌다. 지동주민센터 관계자는 “전입·전출이 많아 유동성이 심하다. 노인들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인근 초등학교에는 기초생활수급자 자녀가 전교생의 절반에 가까울 만큼 늘어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곳으로 전입한 외국인 노동자도 많아졌다. 현재 지동에 거주하는 외국인 1347명 가운데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인은 1227명에 이른다. 지난해 서너 명이던 지동초등학교 ‘다문화가정’ 자녀는 올해 9명으로 늘었다. 이유순 교감은 “한국인 아버지와 조선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밝히길 꺼려하는 아이들이 많아 드러나지 않은 수가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지역 공동체의 일원으로 뿌리를 내린 것도 아니다. 특히 조선족 가운데 오씨처럼 막일을 하는 사람은 일감에 따라 거주지를 옮기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동네 주민들은 조선족을 ‘잠깐 지내다 가는 이방인’으로 뜨내기 취급했다. 이런 상황에서 엽기적인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서 조선족에 대한 반감이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한 조선족이 일으킨 특수 사건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많다. 수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노건형 정책실장은 “지역 슬럼화는 치안·보안에 심각한 문제를 가져온다”라고 말했다. 소외된 지역, 특히 철거가 예정된 구역은 보안의 사각지대가 되기 쉽다는 것이다. 부산 사상구 덕포동 ‘김길태 사건’과 경기 화성시 연쇄살인 사건도 사회적으로 고립된 지역에서 일어났다. 이번 사건이 일어난 지동의 경우 7300가구 1만6000여 명이 사는 동네에 방범용 CCTV는 단 7대였다. 한 주민은 “집들이 낮은 담장 사이로 오밀조밀하게 얽혀 있어 마음만 먹으면 담을 넘기도 쉽다”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평소 경찰이 순찰을 도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이 주민들의 말이다.

4월12일, 동네에는 경찰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오씨의 여죄를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사건 이후, 매일 밤 8시만 되면 경찰차가 동네를 순찰한다. CCTV도 추가로 2대 더 설치했다. 곽씨가 숨지고 열흘 사이 벌어진 변화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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