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이야기다. 3월13일 박근혜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장은 부산 사상을 방문했다. 박 위원장은 이 지역 손수조 후보와 함께 선루프가 장착된 차에 동승해서 손을 흔들며 카퍼레이드를 벌였는데, 선거법 위반 논란이 번졌다. 이에 대해 3월28일 선관위가 내놓은 공식 브리핑은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로서 행하는 예의, 즉 의례적 행위에 해당하여 선거운동으로 보기에는 어려움”이었다.

공직선거법 91조3항은 ‘자동차를 이용하여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선관위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여당 대표와 지역구 후보의 카퍼레이드를 ‘통상적인 정당 활동’으로 유권해석해 면죄부를 주었다.

 

ⓒ김흥구

 


이 같은 선관위의 답변은 논란을 더욱 부추겼다. 당장 야당인 민주통합당(민주당)이 반발했다. 박지웅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선관위가 선거법을 위반하고 있다”라고 비난했다.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역시 “내가 요새는 선관위를 ‘손관위’라고 부른다. ‘손수조 관리위원회’의 줄임말이다”라고 비꼬았다.


대법원 판결도 거슬러

선관위의 ‘여당 감싸기’ 논란은 경남 김해을에서도 반복됐다. 김태호 새누리당 후보는 지난해 10월 지역구 행사 뒤풀이 자리에서 대리운전비와 술값을 제공해 기부 행위를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112조 등을 어겼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선관위는 3월15일쯤 제보를 받았지만 수사 사실을 고지하지 않는 등 석연치 않은 태도를 보였다. 제보자는 선관위가 늑장 대처 및 은폐하려는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해시 선관위는 “늑장 수사한 바 없고, 특정 후보 감싸기는 말도 안 된다”라고 일축했다.

반면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은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지지운동을 독려하며 돈 봉투를 제공했다’는 제보로 인해 ‘정치 인생’을 거는 위기에 처했다. 선관위가 제보자 진술 외에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는 대조된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후보자들의 불법 선거운동보다, 선거 관리 자체에 대한 불신을 받는 지금의 상황은 선관위가 자초한 측면이 더 크다. 지난해 10·26 재·보궐 선거 당시 불거진 ‘디도스 파문’에 선관위가 연루됐다는 의혹 역시 해소되지 못했다(18~19쪽 기사 참조).

시간을 2010년 6·2 지방선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무상급식·4대강 사업 등에 대한 종교·시민사회 단체의 반대 캠페인에 ‘검열’을 시작한 곳은 다름 아닌 선관위였다. 선관위는 지방선거를 한 달여 앞둔 2010년 5월, ‘선거 쟁점에 대한 찬반활동 관련 선거법 안내’를 통해 선거 쟁점 찬반 표시도 선거운동으로 간주된다는 해석을 들고 나왔다.

이 같은 선관위의 선거법 과잉 해석은 2011년 10월 “특정 정책에 대한 단체의 지지·반대 활동이 전부 공직선거법 규제 대상은 아니다”라고 대법원 판결이 나면서 일단락됐다. 그러나 최근 미국 뉴욕 한국총영사관에서 실시된 재외국민 투표소 앞에서 논란은 재연됐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 캠페인을 벌이는 활동가에 대해 재외선관위가 한국 입국 저지를 경고하는 등 다시금 논란의 불씨를 지폈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총선부터는 SNS상 투표 독려운동이 합법화됐지만, 지난해 10·26 재·보궐 선거에서는 ‘투표 인증샷’을 게재하는 것에 대해 제재를 가하기도 했다. 선관위가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논란을 자초한 것이다.

 

 

 

 

 

 

ⓒ뉴시스선관위가 박근혜 위원장(왼쪽 앞)과 김태호 후보(오른쪽)를 감싸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같은 선관위 논리대로라면 정부 견해에 반대하는 모든 의견은 선거법 위반이 된다. 반면 선관위는 정부·여당의 홍보에 대해서는 모르쇠 내지 구두 경고로 일관해왔다. 선관위가 ‘(여당) 선거대책위원회’라는, 불명예스러운 오명을 뒤집어쓰기 시작한 애초의 이유들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선관위의 본령인 중립성에 대한 시비와 유권자의 불신도 날로 거세진다.


박근혜 위원장 의식하나?

그러던 선관위가 정부와 각을 세우는 모습도 보였다. 4월4일 선관위는 기획재정부(기재부)가 각 정당의 복지 공약을 비교 분석해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발표한 것과 관련해,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라는 이유로 기재부에 주의를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선관위가 제 할 일을 했다기보다 ‘미래 권력’을 의식한 모습 아니냐는 해석이 많다. 박근혜 위원장이 새누리당의 새 정강·정책에 복지를 전면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박근혜 위원장을 의식한 것으로 의심받는 행보는 이뿐만이 아니다. 선관위는 “‘대선 입후보 예정자’에 대한 사전 선거운동에 해당한다”라며 ‘안철수’라는 이름을 총선 후보자의 현수막이나 명함에 사용하지 못하게 했던 지역 선관위의 방침도 뒤집었다. ‘박근혜는 되고, 안철수는 안 되냐’라는 반발을 의식했다는 평이다.

1963년 창설된 선관위는 독재정권 당시에는 있으나 마나한 기구였다. 그러다가 1987년 헌법 개정을 통해 지금의 독립적 지위를 부여받았다. 2000년대로 들어오면서는 주민소환 투표, 정당 내 경선, 대학 총장 선거 등 이른바 ‘생활 선거’에까지 선거 관리 범위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왔다.

선관위의 구실은 선거를 ‘관리’하는 데만 머물지 않는다. 정치자금과 관련된 사무, 민주주의 교육 등 선관위의 권능은 날로 강력해지고 있다. “선관위가 민주주의의 기초 원리인 삼권분립을 침해하고 있다”(김갑배 변호사)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정치학 박사)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선거 관리 기관이 행정부 소속임을 지적했다. 그런데 한국 선관위는 이와 달리 독립돼 있으면서 “민주화 이후 국가 기구 가운데 예산과 인원이 가장 많이 늘어난 대표적인 조직이다. 몸집이 커지면서 권한 또한 막강해졌다”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막강한 독립기관은 여전히 폐쇄적인 회의체를 유지하고 있다(오른쪽 딸린 기사 참조). 총선에 이어 대선이라는 중차대한 선거를 앞둔 이 시점에서, 선관위의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선관위원들의 면면과 선관위의 의사결정 구조를 들춰봐야 한다는 지적이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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