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은 필요하다. 그러나 물러설 때는 아니다"
  • 진행 - 고재열 기자, 정리 - 박근영 수습기자
  • 호수 24
  • 승인 2008.02.25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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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와 청와대, 이명박 당선자 비서실에서 일하는 정치인, 평범한 직장인 등 386 네 명이 386 세대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에 대해 좌담을 가졌다.

   
 
ⓒ시사IN 윤무영
386 좌담 참가자(위)는 386 세대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조금 짓궂었을 수도 있겠다. 386 세대에 속하는 사람에게 386 세대를 평가해보라는 것은 분명히 부담스러운 요구였을 듯하다. 특히 요즘처럼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경제를 망친 참여정부 무능의 원흉’으로 비난받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했을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86 세대에게 스스로 자기들을 평가해달라고 부탁했다. 사회 전체적으로 386 세대에 화살을 돌리는 지금, 그들은 스스로를 어떻게 변호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젊은피 수혈’로 386 세대가 본격 주목되기 시작한 1998년을 기점으로 10년의 시간을 되돌아보는 좌담을 열고자 4명을 불렀다.

386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낸 한창민씨(인터넷기업협회 사무국장, 연세대 철학과 82학번)와 김종민 국정홍보비서관(대통령 비서실, 서울대 국문과 83학번), 그리고 김영춘 의원(창조한국당 최고위원, 고려대 영문과 81학번)과 새로운 정부의 주역이 될 이성복씨(대통령 당선자 비서실, 서울대 불문과 82학번)가 참석했다.

좌담은 뜨거웠다. 애초 2시간으로 예정되었던 좌담은 저녁 술자리로까지 이어졌다. 1980년대의 아련한 기억에서 시작한 좌담은 1990년대 후반 386 세대가 집중 조명받던 시기를 거쳐 참여정부의 주역이 되기까지에 대한 회고는 이어졌다. 지나온 과정을 돌이켜보며 자연스럽게 이들의 좌표는 ‘절망에서 희망으로’ 옮아갔다.

한창민: 386이라는 말을 만들었다는 원죄 때문에 이 자리에 왔다. 그런 용어를 지어내서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는 말로 시작하겠다. 1996년 어느 날 여기 함께 있는 김종민 비서관과 술자리에서 이 말을 처음 썼다. 사실 386이라는 말은 모임을 만들다가 모임 이름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 하다가 지은 것이다. 1960년대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나온 30대라는 의미였는데, 세대적 측면으로 쓰이다가 운동권 출신을 강조하더니 이제 386 정치인으로 귀결된 것 같다. 위화감을 주는 용어라는 비판을 많이 들었다. 대학을 안 나온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는 것보다 하나의 세대로 엮이기를 바랐는데, 그런 의도와 무관하게 엘리트주의가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시사IN 윤무영
김영춘 창조한국당 의원
 
 
김영춘: 386 세대는 민주화 운동을 통해 성장했고, 그 속에서 스스로 정치운동·민중운동 주역이 되었던 세대라고 정리하고 싶다. 앞뒤 세대보다 진보적이고, 공동체 지향적 성격이 강하다. 사회 발전의 견인차가 되기도,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 세대가 이제 나이 40이 되었다. 이제 20대 때 혹은 30대 때와 다른 개인 경험을 갖고 있다. 사회 동력을 만들어가는 주체에서, 변화된 사회를 살아가는 주체로 386이 변화를 겪고 있다. 대선 결과만 보더라도 과거 386이 드러내는 정치 지향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이 점도 같이 논의했으면 한다.

김종민: 386이라는 용어가 부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혀 미안하지 않다. 한국 현대사를 보는 중요한 모티브다. 지금은 이른바 386 운동권, 혹은 386 정치인 이렇게 특정되거나 좁혀져서 논란이 있는 거다. 그런 의미보다 1960년대에 태어났다는 세대적 의미가 크다고 본다. 우리 역사에는 ‘전쟁’과 ‘가난 극복’이라는 두 가지 큰 축이 있다. 386 세대는 이 두 가지 사회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사회를 반영하는 그룹이다. 우리 부모 세대는 전쟁 극복하고 먹고살자고 허리띠 졸라매면서, 386 세대를 낳았다. 우리 앞 세대, 부모 세대들이 먹고사는 데 집중했다면, 그 위의 가치인 문화·정치·정의 등을 고민하고, 합리적인 가치에 에너지를 쏟은 세대였다. 대학을 다녔건 안 다녔건 반공 체제에서 벗어나는 합리성과 사회를 변화시킬 에너지를 갖고 있었고 이는 성과와 진보로 이어졌다.

   
  고려대 총학생회장 시절 김영춘 의원(왼쪽)과 연세대 총학생회장 시절의 송영길 의원(오른쪽)  
 
이성복: 386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별로 안 좋았다. 학번을 내세운다는 것이 비민주적이라고 생각했다. 잘 안 쓰일 줄 알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결론적으로 시대를 꿰뚫는 용어였다. 386 중에 1960년대생이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팩트다. 우리의 성장과 경제성장이 거의 일치했다. 우리는 한 번도 ‘후회’를 해본 적이 없는 세대다. 성장이 자연스러운 세대가 대학에 들어가서 인정할 수 없는 독재체제를 보니까 답답했던 거다. 정치 이념에 도전할 생각을 했고 결국 극우독재를 깬 것이기에 자부심이 강하다. 이 사람들이 30~40대가 되면서 터진 것이 참여정부라고 본다. 역설적으로 전두환 대통령이 참여정부의 씨앗을 만들어준 것이 아닌가 싶다. 참여정부가 이명박 정부를 결정적으로 만들었다라고 말하듯이….

한창민: 한 번도 후퇴나 좌절을 안 해봤고, 심지어는 군부정권까지 꺾어냈으며, 새로운 정권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대단한 동력을 가진 세대다. 어느 정도 사회에서 인정을 받다 보니 자연스럽게 리더십을 갖게 된 거다. 하지만 그 리더십에 대해서 부정의 평가가 내려진 것이 바로 이번 정권 교체다. 이명박(MB) 정부의 탄생은 386 위·아래 세대의 반격이다. 윗 세대와 이른바 88만원 세대. 좌절한 세대의 합작품이다. 어떻게 보면 386이 이번에 처음 좌절한 것이다.

김종민: 참여정부가 ‘386 정권’이라고 불렸는데, 그것은 언론에서 말하기 좋고 쓰기 좋아 쓴 말이지 실상을 정확히 반영하는 용어는 아니다. 386이 정권을 세우고 흐름을 만든 것이 아니다. 이번 정권 교체가 386에 대한 심판이었다는 것도 오버다. 386이 그 윗 세대와 다른 차이는 있었다. 합리적이고 가치에 대한 지향이 강했다. 그 차이 때문에 각 분야에서 많은 일을 했다. 특히 정치에서 그랬다. 과도한 상징 때문에 기대한 것에 비해 조금 못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앞 세대보다 실패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시사IN 윤무영
김종민 전 청와대 국정홍보 비서관
 
 
김영춘: 386 정권이라는 것이 실제로 근거 있고 인정할 만한 구석이 있나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김종민: 청와대에서 많이 거론됐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50~60대의 반감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공격기제로 사용됐다. 그런데 실상을 놓고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안희정·이광재라는 386 참모가 있었지만 어렸다. 이들이 대통령을 자주 만나고 양적으로 조언을 많이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 정부 운영 면에서는 50대 학자, 관료가 핵심이었다. 대통령과의 거리 때문에 역할이 두드러진 경우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시스템 자체를 386이 주도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김영춘: 정치권에서는 어떨까. 그 이전 시기와 비교하면 2004년 총선에서 상대적으로 386 출신이 국회에 많이 입성했다. 제일 큰 영향은 탄핵의 역풍이었다. 하지만 과거가 너무 연만했지 지금이 너무 젊은 것은 아니다. 지금 여야 정당에서 40대 의원이 주로 하는 일은 실무 간부, 정책위 부위원장, 원내 부대표 정도다. 경우에 따라 나처럼 열린우리당 최고의원을 하거나 원희룡 의원처럼 한나라당 최고의원을 지낸 경우도 있었지만 예외였다. 바깥에서 흔히 386이 주도하는 정치라고 했지만 정치권 내부에서 살펴보면 과장된 평가였다. 그렇기 때문에 주어지는 비판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젊은 의원들이 과거보다 적극 구실을 하면서 정치권과 정당을 바꾸어내는 데 주도적이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그러나 실제로는 너무 겸손했거나 능력이 부족해 그러지 못했다.

한창민: 386이라는 공통의 경험은 있으나 하나로 엮을 만한 이념과 리더십이 없었다. 운동하던 시절에도 NL·PD 등 정파적으로 갈렸다. 지금 386은 과거에는 얘기할 수 없었던 MB 지지층까지 나타난 상황이다. 현재 386을 묶을 만한 것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김종민: 386을 정치적으로 함께 가야 하는 그룹으로 묶는 분석틀은 무리가 있다. 진보 개혁의 한 축이라고 하지만 원희룡·고진화도 386이다. 386이 사회적 힘을 발휘하기 위해 같이 움직였다는 것은 맞지 않다. 이들이 공통적인 사회 역할을 했던 것은 1980년대 민주화 운동 때였다. 그러나 정치 세력으로 묶여가야 할 까닭은 없다. 세월이 가면 생각도 달라지고 변화한다. 그러면 소속은 달라질 수 있다. 욕먹을 얘기 좀 하겠다. 총학생회장 출신이 386을 대리해서 정치권에 많이 갔다. 한 명이라도 새로운 정치인으로서 새로운 행태를 보여주었다면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성과나 업적이 별로 없었

   
 
ⓒ시사IN 윤무영
이성복 당선자 비서실 인터넷 담당
 
 
다. 2004년 총선 때는 그야말로 386이 대거 국회의원이 됐다. 그 과정에서 의원들이 자유롭게 정치 활동을 해서 열린우리당은 지도부도 아홉 번씩 갈리고 당이 찢어졌다. 그러나 예전처럼 비합리적 규율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깼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의미가 있다. 자율적이고 새로운 정치 행태나 문화를 가진 정치인이 생겼다.

이성복: 그 점에 동의한다. 졸업정원제로 엄청난 수의 대학생이 양산되었고, 민주화를 이끌면서 1980년대 학번이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세력이 됐다. 결국 그 세력이 정치 세력화해서 권력의 중심부에 들어가 권위주의를 다 깼다. 그러면서 세계화에 적응할 기회도 얻은 것이다. 권위주의를 깼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나아가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됐다고 본다. 우리는 의식이 자유로울 수 있어 행복했다.

한창민: 내가 몸담고 있는 인터넷, 벤처업계가 386이 가장 주도적으로 일하는 영역이다. 386은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인다. 이쪽 업계에는 전체적으로 386이 두드러진다. 대형 인터넷기업 CEO 대다수가 386이다. 영화 쪽에서도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감독·스태프·배우가 386이었다. 그건 맥이 있다. 1980년대 운동의 여러 영역이 있었고 그 중에는 문화운동도 있었다. 정치권을 제외하고 본다면 386의 구실이 컸다.

김영춘: 금융산업도 마찬가지다. 금융산업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지금은 질적으로 달라지고 새롭게 국부를 만들어내고 지킬 의무가 주어졌다. 지금 386 세대 애널리스트·펀드매니저가 그 선봉 노릇을 한다. 외국의 금융사, 전문회사와 경쟁할 만한 세대이자 뒷 세대에게 바통을 넘겨줄 세대다.

한창민: 농담 하나 하겠다. 386 세대에게 운동이라는 말이 친숙하다. 그러나 지금 40대에게 운동은 골프다. 40대가 골프 붐의 주역이다. 영어 몰입 교육을 낳은 기러기 아빠도 대부분 386이다. 강남 사교육을 일으킨 장본인도 386이다. 부모들이 과외를 받으며 대학에 가서 과외가 너무 당연하고 친숙한 것이다. 이게 386의 현실이다.

이성복: 386 세대는 대학 때 수업 들어가는 사람을 이상하게 봤다. 공동체 의식이 강해서 춤추고 노래하는 거에 익숙하다. 앞 세대, 뒷 세대와 차이가 이거다. 1970년대 학번은 개인주의인 반면 아주 뛰어난 사람도 많았다. 본고사 세대니까.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를 무지하게 한 사람이 많았다. 우리 세대는

   
 
ⓒ시사IN 윤무영
한창민 인터넷기업협회 사무국장
 
 
참여정부와 비슷하다. 이념이 중요하다. 책도 그런 책만 읽었다. 그러나 논리력·화술·토론 이런 것만 발달하고 발로 뛰는 걸 못한다. 나쁜 말로 입만 살았다.

김종민: 1980년대에는 대학이라는 가장 큰 조직이 열렸다. 조직에 익숙한 세대가 나타났다. 학생운동도 그렇고 운동이라는 것은 조직화가 핵심이다. 연대와 성취, 이런 것들에 인이 박혀 이 세대는 네트워크 능력이 탁월하다.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한창민: 1980년대에는 조직 자체가 거대화됐다는 특징도 있다. 과거에는 소수가 고립되어 지하에서 활동했었다. 만날 수 있는 범위가 좁았다. 그러나 전대협·한총련은 어마어마한 규모다. 시·도별로 다 있다. 그게 그대로 사회에 나가서도 네트워킹으로 연결되면서 어떤 세대보다 집단적이고 조직적이 됐다. 그런 경험을 했던 것이 쭉 통한다. 386은 만나면 무슨 학교 몇 학번 하면 다 통하지 않나.

이성복: 당시에는 대학생이 안 하면 누가 하겠냐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서 대학생 프리미엄이 있었다. 그래서 용서가 되었다.

김영춘: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문제 제기자, 터부 파괴자 구실을 했다. 그 결과가 민주화다. 민주화가 되고 나서 지난 10년 동안 권력 집단, 정치 권력 속에 편입되면서 개척자 노릇을 하기보다는 질서 속에 안주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시대 요구도 달라졌지만 새로운 시대 명제를 만들어내고 해법을 제시하는 데 실패하지 않았나 한다. 국민은 진보 개혁 세력에게 ‘이제는 경제다’라고 문제 제기를 한다.

김종민: 요즘 ‘반성 모드’가 많다. 다들 반성하자고 하는데 나는 체질상 반성을 잘 못한다(웃음). 386의 정치 참여가 늘면서 나라가 망가졌나? 실제로 내가 청와대나 정부에서 보며 느낀 것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박정희는 40대에 중정부장 하고 그랬다. 국민이 경제가 안 좋아서 화가 났다고 보지는 않는다. 경제는 발전하고 있는데 경제발전과 삶의 발전의 연결고리를 사회적으로 못 만든 것이다. 이것은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우리 삶을 발전시키는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것을 이 정부가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기대에 맞게 풀리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무능해서라기보다는 밑바닥부터 기초를 닦아가고 있다. 이 방향이 흐트러지지 않게 가야 한다. 이를 분배 위주 정책이라고 폄하하고 무능력하게 보는 것은 사회 발전에 좋지 않다.

김영춘: 386이 우리 사회 중간 허리 구실을 해줘야 한다. 40대는 집단적 성공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부·기업·노조의 중견이다. 공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국제 경쟁의 풍랑을 해쳐나갈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는 데 일해야 한다.

한창민: 386이 이념 지향적, 가치 지향적이다 보니 대결적이었다. 그러나 이제 남에게 배타스러운 태도로는 사회적 리더십을 얻을 수 없다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허리가 몸의 앞 뒤와 위 아래를 엮듯이 우리 윗 세대와 아랫 세대를 엮어주는 집단 네트워킹의 중재자가 되어야 한다. 과거의 네트워킹을 넘어선 입체적 네트워킹이 필요하다.

이성복: 지금 시대의 화두는 개혁이 아니라 포용과 통합이다. 개혁의 주체와 객체가 나눠질 시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포용을 해야 에너지가 운집된다. 대학 때 한 후배는 ‘우리 편이 아니야’라는 얘기 자주 했다. 우리 세대는 편 가르기식 사고를 했다. 현 정권까지 이런 경향이 있었지만 이를 벗어나는 것이 과제다. 우리 세대가 벌인 일이니까 털고 가야 한다.

김종민: 40대는 역사적 특성 때문에 아직도 사회적 구실이 있다. 타협하고 조정하고, 결정된 것에서 승복하는 합리적 룰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이 세대의 특성을 발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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