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십 년 동안 중동은 석유로 세계경제에 만만찮은 영향력을 미쳐왔다. 그런데 앞으로 수십 년은, 중국이 ‘희토류’로 세계경제를 지배하는 시대가 될지도 모른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3월 중순 중국이 희토류 세계시장을 조작하고 있다며 유럽연합(EU)·일본과 함께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고 말했다. 중국은 세계의 희토류 생산량 중 90% 이상(95% 이상으로 추정되기도 함)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수출 물량을 크게 제한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선진국들이 일제히 반발하는 것이다.

희토류(稀土類, rare earth metals)란 문자 그대로 디스프로슘, 네오디뮴, 란탄, 테르븀, 사마륨 등 ‘희귀한 광물질’ 17종을 가리키는 용어다. 용도는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 LCD, 의료영상기기(MRI와 엑스레이 등), 하이브리드 자동차, 녹색 에너지까지 하이테크 제품에 집중되어 있다. 예컨대 란탄은 하이브리드 자동차 배터리의 핵심 원료다. 테르븀을 사용해야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전기 사용량을 80%까지 절감할 수 있다. 희토류가 없다면, 벽돌보다 작은 스마트폰은 만들기 힘들다. 2025년까지 미국 자동차의 연비를 현재의 두 배로 올리겠다는 오바마의 국가전략적 산업정책도 희토류 없이는 달성할 수 없다. 군사적으로도 희토류는 대단히 중요하다. 사마륨은 유도 미사일, 란탄은 야간 고글 생산에 사용된다.

1960년대부터 텔레비전 브라운관 원료로 쓰이기 시작했던 희토류에 대한 수요가 폭증한 것은 최근의 기술혁신 때문이다.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지난 10여 년 동안 희토류 수요는 연간 4만 메트릭톤(metric tons)에서 12만5000메트릭톤으로 3배 불어났고, 2014년에는 20만 메트릭톤을 넘을 예정이다.


ⓒ연합뉴스2009년 9월 중국 장쑤성 롄윈강(연운항)에서 희토류를 선적하고 있다.

희토류 채굴에 천문학적 비용 들어

그런데 사실 희토류는 이름과 달리 그리 희귀하지는 않은 광물이다. 납이나 구리처럼 지구 곳곳에 산포되어 있다. 단, 대량 채굴이 가능한 곳은 많지 않다. 더욱이 희토류는 방사성 물질 등 인체에 해로운 광물과 같이 묻혀 있는 경우가 많아서 채굴에 엄청난 비용이 든다. 단기적으로 큰 수익을 내야 하는 서구의 민간 기업으로서는 ‘희토류 채굴업’에 뛰어들 만한 인센티브가 크지 않다는 이야기다. 예컨대 미국에서 희토류 채굴업을 하려면, 10억 달러 규모의 투자와 15년 이상의 준비 기간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반해 중국에는 내몽골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희토류 지역이 존재하고, 국유 광업 기업들이 있어서 단기수익과 상관없이 희토류 채굴업을 할 수 있다. 더욱이 노동 및 환경 규제가 느슨하다. 덕분에 중국이 지구 시장의 희토류 독점 공급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서방 각국 희토류 확보 전략 마련

문제는 독점 공급자인 중국의 수출정책에 따라 세계시장이 춤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미 중국은 지난 6~7년 동안 수시로 수출을 제한해 희토류 가격을 치솟게 했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규모는 2005~2010년 사이 절반으로 줄었다. 이에 따라 산화 란탄의 경우 2010년 초에는 1㎏당 5달러였던 것이 지난해 7월 140달러, 같은 해 11월 62달러로, 폭등과 폭락을 거듭했다. 2010년 한 해만 봐도, 디스프로슘은 ㎏당 300달러에서 1900달러로, 네오디뮴은 45달러에서 450달러로 치솟았다. 더욱이 중국은 국내 기업에는 수출가보다 30~40% 싼 가격으로 희토류를 공급한다. 이는 해외 기업을 중국으로 유치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중국이 희토류를 ‘무기화’하는 현상까지 실제로 나타났다. 2010년 일본이 분쟁 지역인 동중국해 일대에서 조업하던 중국 어선들을 나포하자 중국이 일본에 대한 희토류 수출을 금지한 사건이 그것이다. 일본은 즉각 중국 선원들을 석방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환경오염을 핑계로 희토류 수출 제한을 공언한다. 지난 3월10일 중국 전국인민대

ⓒAP Photo오바마 미국 대통령(가운데)은 중국이 희토류 시장을 조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표대회에서 환경오염을 이유로 희토류 채굴 제한이 발의되기도 했다. 그러나 서방세계는 중국의 의도를 의심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WTO에 제소하고 다른 편으로는 다양한 희토류 확보 방안을 모색 중이다. 특히 미국은 자유시장 원칙 따위와 상관없이 희토류 산업을 국가전략적으로 육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민간 기업의 투자와 국가 지원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미국의 경우, 콜로라도 주의 몰리코프(Molycorp) 사가 캘리포니아 사막 지대의 희토류 산지를 다시 채굴하기로 했다. 2002년 환경문제로 채굴이 중단된 지역이다. 몰리코프는 이 사업을 위해 지난해 7월 주식시장에서 4억 달러를 조달했다. 최근에는 캐나다의 희토류 정제 업체를 13억 달러에 인수했다. 그러나 민간 기업이 가격 변동이 심한 희토류 부문에 이 정도의 대규모 투자를 쏟아 붓는 것은 심상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미국의 유력 경제지로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를 대표하는 〈블룸버그〉가 ‘국가 차원의 지원’을 역설하기도 한다. “WTO에 중국을 제소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성공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희토류가 미국 경제와 국방에 미치는 중요성을 볼 때 미국 정부는 몰리코프와 다른 관련 기업들의 성공을 위해 맡아야 할 역할이 있다.” 미국 의회 역시 국방부에 희토류 확보 방안을 제출하라고 압박을 가해왔다. 조만간 이에 대한 의회 브리핑도 이뤄질 예정이다. 미국의 경우, IT나 제약 같은 첨단산업 부문에서 국가 주도의 기술혁신이 이루어져왔다. 희토류 산업도 같은 발전 경로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한편 광업이 기간산업인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라이너스(Lynas), 에어러퓨러 리소스(Arafura Resources) 등 광업 부문의 대기업들이 최근 10억 달러 규모의 투자나 정제공장 설립 등으로 희토류 산업에 뛰어들었다.

덩샤오핑은 톈안먼 사태 직후인 1992년 초 ‘남순강화(중국 남부 지역을 순회하며 개혁·개방의 가속화 촉구)’에 나서며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엔 희토류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중국은 30년 뒤 희토류 세계시장의 지배자로 성장했다. 〈블룸버그〉는 이 발언을 인용하면서 “중국 정부가 희토류 가격을 올리거나 공급을 중단하는 사태에 대비해, 국방부는 몰리코프와 장기 매입 계약은 물론 라이너스 같은 비중국 기업과도 협력해서 공급을 다변화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희토류를 매개로 한 서방세계의 대중국 연합전선 결성을 촉구한 것이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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