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적 질문 던졌던 ‘빨치산 철학자’의 복권
  • 장정일 (소설가)
  • 호수 236
  • 승인 2012.03.3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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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철학자’ 박치우는 철학과 삶을 일치시키려 했다. 그는 하이데거 유의 ‘불안의 철학’이 주류로 자리 잡은 시대에 당파성을 가진 철학을 옹호했다. 철학이란 무엇일까, 이 땅의 철학이란 무엇일까.
위상복의 <불화 그리고 불온한 시대의 철학:박치우의 삶과 철학사상>(길 펴냄, 2012년)은 중층적인 저작이다. 먼저 이 책은 일제강점기에서 해방 공간에 이르는 이 땅의 지식사회학으로 읽을 수 있고, 또 한편은 박치우라는 잊힌 철학가에 대한 평전으로 읽힌다. 하지만 그 어느 편에 치중하든, 마지막에는 두 갈래가 하나의 초점으로 모인다. 즉 이 책은 지식사회학이라는 일반적 방법론과 평전 형식의 개별적 사례를 통해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거기에 대한 대답을 시도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쓰는 ‘철학’이라는 용어는 일본 메이지 시대의 철학자 니시 아마네가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필로소피아(philosophia)’를 일본어로 옮긴 것이다. 비단 이 용어만이 아니기는 하지만, 일본을 통해서 유입된 철학이라는 용어야말로 임화의 ‘이식’ 문학론이 문학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해준다. 이런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철학이 하나의 학문으로 정착되어간 과정을 통해 더욱 잘 증명된다. 3·1운동에 덴 일제는 무단통치를 문화통치로 바꾸고 좀 더 효과적인 내선일체를 수행하기 위해 1926년에 경성제국대학을 설립했다.

   
ⓒ이지영 그림

이 땅의 철학은 경성제대에 철학과가 만들어지면서 비로소 학문이 되었다. 하지만 일제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던 경성제대 철학과는 그 특성상, 지식사회학이 가리키는 시대적·사회적 구속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철학은 어떠한 학문보다 사상이나 비판과 직결되어 있는 까닭에, 피식민지 조선 학생들에게는 강한 금기가 설정됐다. 모든 교수가 일본인이었다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특히 유념해야 할 경성제대 철학과의 교과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서양철학 가운데 주로 독일 관념론과 하이데거 유의 실존철학만 취급됐다. 둘째, 관념론 위주였던 만큼 당연히 마르크스 철학은 뿌리째 배제됐다. 셋째, 조선 시대의 성리학과 같은 전통 사상은 철학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오늘의 한국인들이 철학을 일컬어 ‘우리의 문제나 삶과 상관없는 뜬구름 잡는 헛소리’라고 손사래를 친다면, 그 원인은 현실과의 괴리로부터 시작한 식민시대의 철학 교과에 있지 않을까? 아니, 우리나라 철학계가 아직도 그때의 관성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경성제대 설립, 철학의 시작

박치우는 1909년, 함경북도 성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경성제국대학 철학과에 입학했던 1928년, 같은 강의실에는 훗날 5·16 쿠데타를 반기고 박정희를 도와 ‘국민교육헌장’을 작성한 박종홍이 있었다. 지은이는 박치우와 박종홍을 경쟁 관계로 놓고, 이 책의 곳곳에서 두 사람의 글과 삶을 비교하거나 평가한다. 그 가운데 두 사람이 대학을 다니던 시절, 유럽과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에까지 번졌던 ‘하이데거 유행’에 대한 박치우와 박종홍의 시각은 무척 예시적이다.

지은이는 두 사람에게 고루 영향을 끼친 철학자로 호세이 대학 철학과 교수였던 미키 기요시를 꼽는다. 1923년 독일 마르부르크에서 하이데거를 사사한 그는 귀국해서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보급하기 위해 애를 쓴 학자다. 우리나라에 번역된 <독서와 인생>(범우사 펴냄, 2007년)은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참극과 당면한 세계공황 앞에서 하이데거가 유행하게 된 사정을 이렇게 암시하고 있다. “마르부르크 시절 이래 내가 경험한 이른바 불안의 철학이나 불안의 문학이 몇 해 뒤에는 일본에서도 유행하게 되었다. 그것이 몇 년 뒤에 유행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이 유행하기 위해서는 프랑스나 독일에서처럼 하나의 요소, 즉 마르크시즘의 유행이 앞서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순서다.”

   
<불화 그리고 불온한 시대의 철학:박치우의 삶과 철학사상>위상복 지음길 펴냄
미키 기요시에 따르면, 하이데거 유의 ‘불안의 철학’이 유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르크스주의가 유행했어야 했다. 저 언명은, 불안의 철학이 마르크스주의의 반정립(antithese)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바이마르 독일은 물론이고 유럽과 일본의 부르주아들은 ‘마르크스만 아니면 무엇이라도!’라는 심정으로 불안의 철학을 받아들였고, 불안의 철학이 열어놓은 뒷문으로 구세주인 양 들어온 것이 바로 나치즘(독일)·파시즘(이탈리아)·군국주의(일본)였다.

혜성과도 같이 빛나는 문장으로 시대에 경종을 울린 박치우는, 자주 하이데거로 대표되는 불안의 철학을 공박했다. 프랑스혁명으로 획득된 시민계급이 산업사회가 빚어낸 소외와 위기(공황)의 극복을 시민계급 내부의 모순(빈부)과 경제 기구에서 찾지 않고, 정신이나 내면에서 찾으려는 노력이 바로 불안의 철학이라는 것이다. 박치우는 이들에게 놓인 전망이라고는 슈펭글러와 같은 숙명론의 설파나 파시즘에의 투항밖에 없다면서 나치에 협력한 하이데거를 비판했다. 반면 하이데거로 졸업 논문을 쓰기도 했던 박종홍은 나치에 협력했던 하이데거의 오류까지 따라 하는 오욕의 길을 갔다.

박치우와 박종홍의 다른 길

박치우는 제1세대 철학자치고는 드물게 많은 글을 남겼다지만, 생전에 저서는 <사상과 현실>이라는 단 한 권뿐이었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철학과 삶을 일치시키고자 했던 그의 궤적을 쫓아야 한다. 그는 “사상가란 별다른 사람이 아니라 현실의 강박, 현실이 그의 해결을 위하여 우리를 향하여 부르짖고 있는 그 소리를 ‘심장’을 통하여 힘 있게 들을 수 있는 인간이다”라면서, 산더미 같은 고민을 가진 “오늘의 이 땅에는 왜 아직까지 이렇다 할 사상가가 나오지 않는 것일까요!”(‘아카데미 철학을 나오며’)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그는 더할 나위 없이 명료한 어느 글에서 철학은 수학이나 과학처럼 이론에 그치는 게 아니라 당파성을 가진다면서, ‘철학은 우선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특정한 계급의 공명을 얻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선언한다(‘철학의 당파성’).

이 책을 읽으면서 윤대석·윤미란이 박치우의 모든 글을 모아 엮은 <사상과 현실-박치우 전집>(인하대학교출판부 펴냄, 2010년)을 함께 읽었는데, 지금 읽어도 문제성과 신선도가 전혀 떨어지지 않는 명저가 아닌가 한다. 반공 이데올로기가 드센 철학계에서 완전히 도외시된 박치우를 되살린 지은이의 공도 크지만, 무엇보다 큰 것은 문학비평계가 박치우에게 덮어씌운 ‘친일 비평가’라는 오명을 벗겨준 일이다. 나아가 지은이는, 태백산에서 사살된 ‘빨치산 철학자’ 박치우를 통해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나는 감히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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