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1일 새벽 3시쯤,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 주 판지와이 지구에 있는 기지에서 한 미군이 걸어 나왔다. 그는 캄캄한 밤길을 약 2㎞ 걸어 발란디 마을에 도착한 뒤 자고 있는 민간인들을 향해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광란의 총격은 세 집에서 모두 12명이 사살당한 뒤 끝났다. 미군은 시신들을 모아 불태우는 만행도 저질렀다. 사망한 12명 가운데 7명은 한 가족이고, 나머지 5명은 이웃인 것으로 전해졌다. 희생자 중 아홉 명은 어린이였고 대부분 머리에 총상을 입었다. 이후 약 1.5㎞를 걸어 알코자이 마을로 넘어간 그는 또다시 한 가옥에 침입해 4명을 더 사살했다. 그렇게 무고한 민간인 총 16명이 살해되었다.


일곱 살 아들을 물고문하는 아버지

이 사건이 발생한 뒤 미국은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빠졌다. 코란 소각 사건을 미처 마무리 짓지도 못한 상황(〈시사IN〉 제235호 기사 참조)에서 참사가 또 발생하자 오바마 대통령은 또다시 아프간 정부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미군의 조기 철군이 다시 떠오를 정도로 아프간 현지에서의 충격 여파는 크다. 현재 이 사건을 저지른 미군 용의자의 정확한 신상은 나오지 않고 있으나 39세 미군 하사로 두 아이와 아내를 둔 가장임이 밝혀진 상태다. 사건 직후 기지로 돌아와 자수한 그는 헌병대에 인도되어 쿠웨이트로 이송되었다.


ⓒAP Photo미군이 아프가니스탄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이 터진 3월11일, 주민들이 범인이 소속된 부대 앞에 모여 항의를 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 조지 리틀 대변인은 3월12일, 사건 용의자가 이라크에만 세 번 파병되었으며 지난해 12월 아프간에 파병돼 네 번째 전쟁터에서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고 밝혔다. 이 미군이 이처럼 끔찍한 학살을 벌인 이유는 무엇일까. 익명의 미군 군의관은 “정상적인 사람이 이런 사건을 벌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건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PTSD)으로밖에 설명이 안 된다. 전쟁 트라우마가 그를 미치게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문제는 이런 ‘인간 폭탄’들이 지난 10년간 미국 어디에나 있어왔다는 사실이다. 사실 아프간보다 더 위험한 것은 미국인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용의자가 본국에서 근무했던 루이스-매코드 기지는 미국 서부 워싱턴 주 타코마에 있는 곳이다. 포트루이스라는 미군 기지와 매코드라는 공군 기지가 함께 있으며, 지난 10년간 아프간과 이라크에 미군을 파병해온 주요 기지이다. 포트루이스 기지에는 세 개의 스트라이커 전투여단이 주둔한다. 스트라이커 부대(신속 기동군)는 미군이 21세기 안보환경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목적으로 창설했다. 1999년도 미국 육군 전략계획 지침서에 따르면, 21세기 전략적 요구에 부응해 전방위 대처 능력을 확보하고 전 세계를 작전 지역으로 삼는 형태의 타격 부대를 창설한다고 되어 있다.

포트루이스 기지에는 10만명 이상의 미군과 군무원이 주둔한다. 이 기지에 근무하는 미군은 거의 대부분 이라크 파병을 여러 차례 다녀왔다. 재작년부터 미국이 아프간 칸다하르에 파병을 시작해 올해 4월에도 다시 대규모로 아프간 파병이 있을 예정이다.

그동안 이 기지에 있는 미군들이 벌인 엽기적 사건은 한둘이 아니었다. 미국 군사 신문 〈성조〉는 루이스-매코드 기지를 ‘미군기지 가운데 가장 문제가 많은 곳’으로 꼽기도 했다. 이곳 장병들이 제대해 벌인 싸움질이나 강도, 가정폭력, 음주운전, 살인과 자살 등 각종 범죄와 비행이 연일 미국 언론에 오르내린다.

지난해 11월 루이스-매코드 기지 소재 군사법원은 아프가니스탄 민간인 3명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26세 캘빈 깁스 하사에게 종신형을 선고했다. 깁스 하사 등 미국 육군 제5스트라이커 부대 소속 병사 5명은 지난해 초 순찰 도중 비무장 민간인을 살해하고 희생자 주검 옆에서 찍은 사진과, 희생자들의 손가락·치아 등 신체 일부를 기념품으로 가지고 귀국했다.


ⓒAP Photo루이스-매코드 기지 입구. 포트루이스 기지에는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돌아온 미군이 많다.

이라크에서 복귀한 이 부대 출신 예비역 병사가 일곱 살 난 아들을 욕실에서 물고문하다 체포되는가 하면, 일곱 살짜리 딸이 알파벳을 제대로 외우지 못한다고 고문을 가한 병사도 있었다. 아내에게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붙인 병사도 있다. 지난해 4월에는 우울증 치료를 받던 전투위생병이 고속도로에서 광란의 질주를 벌이다 경찰에 포위되자 머리에 총을 쏴서 자살한 사건도 있었다. 그의 차 안에서는 이미 아내가 총에 맞아 숨져 있었다. 집에서는 다섯 살 난 아들 시신이 발견됐다. 군 관계자는 “지난해에만 이 기지에서 장병 1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2년간 장병들이 주변 마을에서 총기를 들고 위협한 사건이 24건이나 된다”라고 말했다.

루이스-매코드 기지가 위치한 워싱턴 주 레이크우드에 사는 주민들도 이들 때문에 항상 불안에 떤다. 주유소를 운영하는 마이클 헌터 씨(56)는 “이 부대에서 이라크·아프간으로 파병을 시작한 뒤 기지 주변이 조용한 날이 없다. 총격과 강도, 음주로 인한 폭력 등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사건 때문에 주민들이 불안해한다. 며칠 전 술을 먹은 병사가 우리 주유소에서 행패를 부렸다. 만약 그 병사가 불이라도 내서 우리 주유소가 폭발할까봐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커피숍 주인 엘리자 세런 씨(34)는 “이곳 지역방송에서는 거의 매일 이들의 범죄 뉴스가 나온다. 군인들이 아프간이나 이라크에서 귀국한 직후가 가장 심각하다. 주민 사이에서는 이들의 파병 스케줄을 확인하고, 이들이 돌아온 직후에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떠돈다”라고 말했다.

이곳 주민들은 새해 첫날에도 악몽 같은 일을 겪었다. 워싱턴 주 레이니어 산 국립공원에서 공원 순찰대원에게 총을 난사해 살해하고 산속으로 도주했던 벤저민 컬턴 반스(24)가 사망한 채 발견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인간 람보 사건’으로 불린 이 뉴스의 주인공 반스도 루이스-매코드 출신 참전용사였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레이크우드, 듀폰, 스패너웨이 등 루이스-매코드 기지 주변 지역이 귀환 장병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과 범죄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지난해 12월 보도했다. 기지 인근 듀폰에 사는 브레이든 씨(24)는 “이 기지 주변 집값이 갈수록 떨어진다. 기지 병사들의 범죄가 심해지면서 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며칠 전 5번 고속도로에서 군복을 입은 병사가 제한속도 시속 70마일을 넘어 100마일(시속 160㎞)이 넘는 속도로 달려가는 것을 본 일이 있다. 스쳐가며 본 그의 눈은 정상이 아니었다. 그 뒤 나는 미친 사람이 날뛰는 고속도로에서 다시 운전할 자신이 없어졌다”라며 불안을 호소했다.


참다 못해 지역을 떠나는 주민들

지역사회에서 파병 장병들이 일으키는 문제가 이처럼 심각해지자 루이스-매코드 기지 안에서도 자체 진상조사 및 전쟁 트라우마 검사를 실시했다. 기지 안에 있는 메디간 군병원 관계자는 “파병을 다녀온 군인 모두 의무적으로 전쟁 트라우마 검사를 받는다. 이 검사에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 장병은 심리치료·상담 등 집중 치료를 받는다”라고 밝혔다. 그런데도 왜 병사들의 범죄는 끊이지 않는 걸까? 앞서 총기 난사 사건의 용의자는 2010년 이라크에서 근무할 당시 자신이 타고 있던 차가 전복돼 머리를 다쳐 가벼운 뇌손상을 입었다. 하지만 그는 이곳 기지로 돌아와 전쟁 트라우마 검사를 받은 뒤 ‘근무 적합’ 판정을 받고 아프간에 다시 파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지에 근무하는 브라운 하사(가명)는 “검사는 다분히 형식적이다. 겨우 한 시간에 걸친 면담 동안 수많은 질문을 받는다. 대부분 ‘예’ ‘아니요’로 대답하는데, 나는 이런 검사는 충분히 우리 본마음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가 이 검사에 걸려 전쟁 트라우마가 있는 겁쟁이로 남고 싶겠는가”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 검사를 통과하지 못해 ‘근무 부적합’ 판정을 받을 경우 이것이 곧 ‘제대=실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미군이 하는 각종 검사가 병사들의 범죄를 막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루이스-매코드 기지의 장병들만 전쟁 지역을 다녀온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특히 이 지역 출신 장병들이 심한 전쟁증후군을 보이는 이유는 이들이 다닌 전장 중 특히 위험한 곳이 많다는 점과 연관이 있다. 스트라이커 부대가 전략적으로 적진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 장점을 가졌기에 이들은 가장 위험한 곳에 배치될 수밖에 없다. 한 예로 이들이 파병되었던 아프간 칸다하르는 탈레반의 거점 지역으로 미군 사망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곳이다. 병사들은 매일 긴장 상태로 지내야 한다. 뇌손상을 입은 병사도 많다. 이렇게 만들어진 ‘인간 폭탄’들이 미국 전역으로 혹은 세계 또 다른 파병 지역으로 흩어지면서 전쟁의 후유증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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