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랑키야는 콜롬비아에서 네 번째로 큰 상업도시다. 해마다 2월이 되면 이 도시는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에 이어 남미에서 두 번째로 성대한(혹은 그렇다고 바랑키야 사람들이 주장하는) 축제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른다. 도로가 통제되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일찍부터 몰려든 구경꾼과 상인들의 승강이가 잦아들 때쯤, 비아 콰렌타 거리에선 ‘그란 파라다(Gran Parada)’라고 불리는 축제의 본행렬이 출발한다. 화려하게 치장한 무용수들이 각자 소속된 댄스 그룹의 명예를 걸고 경쾌한 춤사위를 선보이며 거리를 활보한다.
축제에서 선보이는 춤은 크게 4가지다. 얼굴에 흰 칠을 하고 뺨에 붉은 점을 찍은 채 추는 춤은 ‘가라바토(Garabato)’라고 하는데, 이 분장은 살아 있는 생명을 상징한다. 이들 주변에는 악마의 형상을 하고 큰 낫을 든 무용수가 돌아다니는데, 인간이 제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떨칠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를 나타내는 것이다. 돌아다니는 악마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춤에 몰두해 있는 이들의 모습에선 어차피 찾아오게 되어 있는 죽음일랑 신경 쓰지 말고 오늘을 즐기라는 메시지가 느껴진다. 흑인들이 주로 추는 마팔레(Mapale)는 아프리카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대단히 격렬하고 역동적인 춤이다. 동물을 본뜬 분장을 하고 원초적인 몸짓으로 온몸을 흔드는 동작은 아프리카의 혈통을 이어받지 않고서는 흉내 내기조차 힘들 정도다. ‘콩고(Con go)’라는 춤도 그 이름만큼이나 아프리카의 색채를 많이 띠고 있는데, 머리 위로 1m 길이는 족히 됨직한 커다란 화관을 쓰고 나무칼을 든 모습이 아프리카의 주술사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이 축제의 가장 대표적 춤인 ‘쿰비아(Cumbia)’는 아프리카의 리듬에 인디오의 피리 선율, 그리고 스페인풍의 춤이 합쳐진 것으로, 이 축제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상징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카니발이 성대한 축제로 거듭난 까닭
사실 카니발은 유럽 가톨릭의 전통으로, 사순절(예수가 40일간 광야에서 금식하며 고행한 것을 기념하는 기간) 직전 신도들이 금식 기간에 들어서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먹고 마시며 즐겼던 것에서 유래했다. 이것이 남미에 와서 이토록 성대한 축제로 거듭난 것은, 이 땅이 겪어야 했던 비극과 무관하지 않다. 15세기부터 시작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 아래 대규모로 유입된 흑인 노예들은 고향으로부터 정교한 타악기의 장단과 특유의 리듬감을 가져왔고, 그것은 인디오, 유럽인의 문화와 뒤섞이며 다양한 음악과 춤을 탄생시키는 원천이 되었다.
스페인 지배자들 처지에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흑인과 인디오 노예들의 불만을 무마시킬 당근(노예의 개체 수를 늘리기 위한 성관계의 자유까지 포함하는)이 필요했다. 자연스럽게 카니발은 유럽인과 아프리카인, 그리고 인디오 모두의 축제로 자리 잡았고, 고향을 떠나 힘들게 살아가던 사람들의 고통은 축제의 기쁨 속에 치유되었다. 놀 수 있는 마당을 처음 마련해준 것은 유럽인들이었지만, 그 마당을 채우는 다채로움은 이내 원조 격인 유럽의 그것을 능가하게 되었다.
바랑키야 카니발을 상징하는 춤이 쿰비아라면, 카니발을 대표하는 술은 당연히 ‘아구아르디엔떼(Aguardiente)’이다. ‘불타는 물’이라는 뜻의 이 술은 사탕수수 즙을 발효시킨 것을 증류해 만드는데, 제조법은 베네수엘라의 ‘미체(Miche)’와 거의 동일하다. 스페인에도 아구아르디엔떼라는 술이 있지만 그것은 와인을 증류한 것이라는 점이 다르다. 축제 기간, 거리 곳곳에서는 아구아르디엔떼 병을 손에 든 사람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술 인심도 후해서, 낮부터 얼큰히 취해 자신만의 춤사위에 빠져 있는 아저씨와 눈이라도 마주칠 요량이면 잔을 내밀며 함께 마실 것을 권유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스페인 술의 이름으로 식민지 민중을 위로
불타는 물이라는 이름처럼 아구아르디엔떼의 맛은 강렬하고, 깔끔하다. 처음 마시는 사람은 술에서 치약 냄새가 난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아니스(Anise)’라는 이집트 원산의 향료가 첨가되었기 때문이다. 먼 옛날부터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은 이 향료가 정신을 맑게 해주는 힘이 있다고 여겨 음식부터 술까지 다양한 식품에 첨가해 활용했는데, 지금까지도 남미와 유럽은 물론 중동 술에도 널리 쓰이고 있으니 아니스 향을 풍기는 다양한 술의 매력과 멀어지고 싶지 않다면 치약 냄새라는 선입견은 빨리 걷어버리고 그 향기가 주는 깔끔함에 매료되어볼 일이다.
여러 면에서 아구아르디엔떼는 바랑키야 카니발과 꼭 닮았다. 인도가 원산인 사탕수수를 남미로 가져온 것은 유럽인이었고, 그것을 원산지에서보다 더 무성하게 키워낸 것은 남미의 토양과 아프리카인의 노동력이었다. 카니발이 유럽의 형식에 식민지의 내용을 담아낸 것처럼, 아구아르디엔떼도 스페인 술의 이름을 빌려 식민의 재료로 식민지 사람들의 땀과 눈물을 담아낸다. 고된 일상을 잠시 잊는 것이 축제의 목적이라고 한다면, 아구아르디엔떼가 사람들에게 선사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잠깐 동안의 즐거움을 뒤로하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때 느껴지는 쓸쓸함까지 포함해서.
축제의 마지막 날, 바랑키야에서는 축제를 상징하는 인물인 호셀리토 카르나발의 장례식이 열린다. 그는 지나친 음주를 즐기다 죽은 것으로 묘사되고,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눈물을 흘린다. 호셀리토의 장례식은 올해의 축제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물론 이것은 상징적인 것으로, 그는 내년 카니발이 열리기 전날 부활해 축제를 즐기다 또다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축제의 끝은 1년간의 기다림의 시작을 의미한다. 다음 카니발이 열리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삶의 고통을 잊고 싶어진다 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들 곁엔 아구아르디엔떼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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