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게 하나 없는 꼬리곰탕
  • 주진우 기자
  • 호수 24
  • 승인 2008.02.25 07:5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명박 특검이 막을 내렸다. 그러나 특검이 애초부터 김경준씨의 허구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집중해 이명박 당선자에 대한 수사가 미진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명박 당선자가 김경준씨 회사를 홍보한 점(위)과 명함(아래)에 대해서 특검은 명쾌한 결론을 내놓지 못했다.  
 
“BBK 사건은 검은 머리 외국인에게 대한민국이 우롱당한 사건이다.” 이명박 당선자를 조사했던 문강배 특검보는 확신에 차 있었다. 김경준씨는 주가조작을 한 사기꾼이어서 믿을 수 없으며 이 당선자의 모든 의혹은 혐의가 없다는 것이다. 특검의 발표는 명쾌했다. 정호영 특검은 “만족할 만한 결실을 거두었다”라고 수사에 대해 자평했다.

그러나 특검 수사로 의혹과 의문이 모두 해소됐다고 보는 이는 많지 않다. 심지어 이명박 당선자 진영에서도 그런 기류가 감지된다. 한 대통령직 인수위원은 “이런 식으로 아무 관련도 없다고 하면 누가 믿어주겠나”라고 말했다. 특검의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은 특검이 당선자와 관련된 몇 가지 의문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당선자가 왜 ‘사기꾼’ 김씨와 동업했는지, 왜 BBK를 자기 소유라고 말하고 다녔는지, 왜 사기꾼 회사의 홍보맨 구실을 했는지 국민의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사기꾼 김씨의 말은 믿을 수 없으니’ 이 당선자의 주장으로만 사건을 재구성해보자. 2000년 2월18일 이명박 당선자는 김씨와 함께 BBK의 지주회사격인 LKe뱅크를 설립했다. 당선자는 30억원을 출자했다. 만난 지 한 달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일이다. 김씨는 살로먼스미스바니 증권사에서 실적을 부풀렸다가 쫓겨난 뒤였다.

하지만 당선자는 김씨를 ‘아비트리지(차익거래) 귀재’라고 언론에 자랑하고 다녔다. 당선자는 사기꾼에게 회사 인감도 맡겼다. 그리고 돈을 모아줬다. 당선자는 친구 부인으로부터 7억원을 유치했다. 당선자의 친형 이상은씨가 소유한 다스로부터 190억원, 지인이 대표로 있는 심텍으로부터 50억원, 절친한 동문 김승유씨가 행장으로 있던 하나은행으로부터 5억원. 심텍은 이 당선자에게 소송을 걸어 돈을 되돌려 받았고, 하나은행 돈 5억원은 이 당선자가 물어줬다. 2001년 말 김씨의 회사에서 횡령과 주가조작이 발생하자 일반 투자자들은 곧바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 당선자는 사기꾼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가 2004년 2월에 들어서야 소송을 제기했다.

특검 부른 동영상 수사는 '실종'

현대건설 회장 출신으로 ‘경제 하면 이명박’이라는 것이 이 당선자 측의 최대 자랑거리였다. 이 상징이 그를 대통령으로 밀어 올렸다. 그런데 최고의 경제 전문가가 사기꾼 김씨와 거래한 대목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김씨의 누나 에리카 김씨는 “이명박씨와 내가 특별한 관계여서 동생과 비즈니스가 시작되었다”라고 말했다. 특검은 에리카 김씨도 사기꾼이라고 규정했다. 당선자는 사기꾼 에리카 김씨와도 친했다는 얘기다.

국민이 김씨의 대국민 사기극에 말려들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작용했지만, 당선자의 책임이 적지 않다. 이 당선자는 초반부터 BBK와 전혀 무관하다고 단언했다. 급기야 그가 대통령직까지 걸겠다고 나서면서 BBK 사건은 대선의 최대변수로 떠올랐다. 만약 이 당선자가 BBK 명함이나 광운대 동영상에 대해 ‘납득할 만한’ 해명을 했다면, 나아가 김경준씨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인정했다면 BBK 문제가 특검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시사IN 안희태
2월21일 특검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정호영 특검.
 
 
이명박 당선자가 “BBK를 설립했다”라고 스스로 얘기한 광운대 동영상은 특검수사를 부르는 직접 계기가 됐다. 특검팀은 “동업자인 김경준씨를 홍보해주기 위해서였다”라는 당선자의 해명을 100% 받아들였다. 법적 책임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사기꾼을 도와 투자자를 현혹하는 일을 했다는 책임은 여전히 남는다.

이전에는 이장춘 전 싱가포르 대사가 당선자가 사용한 BBK 명함을 공개했다. 특검은 이 역시 “그런 명함을 쓰지 않았다”라는 당선자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이 명함은 도대체 누가 왜 만들었단 얘긴가. 특검은 이에 대한 수사 결과를 내놓았어야 한다. 만약 명함을 사용한 사실이 없다면 이 전 대사를 무고죄로 처벌했어야 앞뒤가 맞다.

그동안 이 당선자와 관련된 의혹을 제기했던 사람들이 주목했던 대목은 이 당선자가 주가조작이나 횡령에 관여했다는 것이 아니다. 김경준씨도 이 당선자와 주가조작을 공모했다고 진술한 바는 없다. 당선자가 대선 기간 내내 “BBK와 무관하다”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명함이 나오고 본인의 입으로 BBK 설립을 밝힌 동영상이 발표되자 이 당선자와 BBK의 관계에 의혹의 눈길이 집중됐던 것이다.

특검, "이 당선자 답변 미리 준비해"

이명박 특검이 수사 결과를 발표한 이후 ‘특검을 특검하라’는 말을 뛰어넘어 ‘특검 무용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특검의 실효가 떨어졌고, 특검의 이 당선자에 대한 과도한 저자세가 부실 수사 의혹으로 확대된 탓이다.

특검은 수사 결과 발표를 나흘 앞두고 이 당선자를 2시간가량 조사했다. 꼬리곰탕을 먹으면서 이뤄진 실제 조사 시간은 1시간 남짓이었다고 한다. 문강배 특검보는 “당선자가 바쁜 점을 감안해 질문 사항과 예상 답변을 미리 컴퓨터에 쳐서 가지고 갔기 때문에 그 시간만으로 충분히 조사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예상 답변을 미리 만들어놓은 수사는 검사들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도곡동 땅이 이상은씨의 것이라며 검찰과 다른 결과를 내놓은 것에 대한 특검의 논리도 빈약하다. 지난해 8월 서울중앙지검은 이상은씨가 어떤 돈으로 도곡동 땅을 매입했는지 모른다는 이유를 들어 이 땅이 제3자의 차명재산이라는 결론을 내놓았다. 그런데 특검팀은 이상은씨가 기억하기 시작한 세부 내역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특검팀은 소 100여 마리를 팔아 2억5000만원 상당의 소득을 얻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으나, 1985년 당시 암송아지 값이 70만원대로 폭락해 농부가 자살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다른 근거로는 이상은씨 재산 관리인인 이병모씨의 휴대전화 위치추적 결과를 댔다. 이씨가 매각대금의 일부를 인출한 직후마다 서초동 영포빌딩에 있었기 때문에 돈의 주인이 이상은씨라는 것이다. 그러나 영포빌딩은 이 당선자 소유다. 검찰은 이상은씨가 매각대금을 모두 현금으로 인출한 사실도 미심쩍다고 의심했지만 특검팀은 “이상은씨가 현금을 선호했기 때문이다”라고 넘어갔다. 또 김만제 전 포철 회장 진술과 임직원 진술이 엇갈리는데도 특검팀은 이 당선자에게 유리한 증언만 받아들였다.

특검팀은 김경준씨가 사기꾼이라며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특검팀은 다른 범죄자의 말은 그대로 받아들였다. 김씨와 함께 수감돼 있던 신 아무개씨의 말을 근거로 ‘한글 이면계약서’는 김씨가 미국 로스앤젤레스 연방 구치소에서 위조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특검팀은 “미국 구치소 측에 프린터 기종 등의 여부는 물어보지 않았으며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김경준씨의 장인 이두호씨는 “수사도 하지 않고 계약서를 구치소에서 만들었다고 단정했다. 특검은 이런 상식 이하의 행동을 집단적으로 저지르고 있다”라고 말했다. 

특검팀의 발표를 지켜본 검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특검이 사실을 왜곡해서 발표할 리는 없다. 그러나 이명박 당선자의 변호사 같은 소리까지 하는 게 딱하다”라고 말했다. 한 원로 변호사는 1990년대 텔레비전 프로그램 <우정의 무대> 이야기를 꺼냈다. “무대 뒤편에 기다리는 어머니는 한 명인데 자기가 자식이라고 우기는 군인은 10명이다. 목소리를 듣고, 얼굴을 확인하고도 ‘뒤에 있는 분은 제 어머니가 확실합니다’라고 막무가내로 우기는 병사가 꼭 있다. 이번 특검이 꼭 그 막무가내 병사 같다.”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