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체제가 마침내 미국과 마주 앉았다. 2011년 12월 김정일 위원장 사망으로 열리지 못한 3차 북·미 고위급회담이 재개되는 것이지만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에 첫 대좌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사뭇 다르다. 북한 지도체제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북·미 고위급회담은 계속될 것임을 시사한다.

반면 남북 대화는 당분간 재개 가능성을 가늠하기 어렵다. 최근 우리 측에서 적십자회담과 산림 병충해 방재 지원을 위한 실무 접촉을 제의했으나 북한은 좀 더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며 이들 제안에 응하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북·미 간에는 협상의 목표가 분명하고 주고받는 협상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는 반면 남측의 대화 제의는 유연성이라는 모양새에 초점을 맞춘 것이기 때문이다. 오랜 경색 국면을 돌파하기에는 제안 자체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결과적으로 북한이 응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제안했으리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시기적으로 북한이 9개 항의 공개 질문장을 발표한 상황에서 남측이 제안한 회담에 북한은 애초 응할 수 없는 것이었다. 더구나 연평도 해상 사격훈련과 키리졸브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목전에 두고 북한이 회담을 수용하리라고 기대했다면 이는 난센스다.

선(先)조치·후(後)대화로 관계 진전을

김정일 사망과 김정은 체제의 출범, 중국의 영향력 증대, 한반도 문제에 관한 미·중 협력 강화 등 주변 정세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남북 간에 경색 국면은 지속되고 있다. 분단 67년 만에 다시 남북 관계 일대 전환의 기회를 맞은 지금, 이 호기를 그냥 흘려보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1980년대 말 사회주의 체제 붕괴나 1990년대 중·후반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와는 또 다르다. 우리가 어떤 정책적 선택을 하고 얼마나 치밀한 전략적 구도를 갖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미래가 결정될 수 있다.

북한은 계획을 갖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주 북한 노동당 정치국은 오는 4월 중순 당 대표자회 소집을 결정했다. 당 대회를 대신해 여는 회의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김정은 체제를 공식 출범시키고 새로운 대내외 정책이 천명될 것이다. 남한에서는 향후 정권의 향배를 결정할 총선이 예정되어 있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이러한 전환기적 상황 변화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 것인가, 4월 이후의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논의해야 한다. 정부가 지금까지와 같이 수수방관만 한다면 정치권과 시민사회로부터 강력한 반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총선 이후 레임덕이 가속화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 대화의 재개 필요성은 증대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2월22일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일차적 목표이며 이를 위해 남북 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라는 방침을 재확인한 만큼 정부 또한 이를 실천에 옮겨나가려 할 것이다. 만약 이 대통령이 이번 기자회견에서 그 다음 날 베이징에서 열릴 북·미 고위급회담과 관련해 ‘금번 회담이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미국과 적극 협조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했더라면 이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남북 대화 재개를 위해 매우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를 활용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이 크다.

북한은 북·미 고위급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미국으로부터 줄곧 남북 대화에 응하라는 압력을 받을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남북 대화와 북·미 대화의 병행이 바람직하다. 이왕 북·미 대화가 지속되고 있는 만큼 북·미 회담의 모멘텀을 살려나가면서 남북 대화 재개의 여건을 조성해나가야 한다. 정부는 4월 말 이후 상황에 대비한 종합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우선 다양한 형태의 대북 인도적 지원과 민간단체의 교류 협력을 지렛대로 삼는 것이다. 선(先)조치, 후(後)대화의 형식을 취하면 남북 관계의 진전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대화의 물꼬가 트이면 한반도 평화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나가야 한다. 지금처럼 평화를 지키는 차원의 소극적인 평화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평화를 만들어가는 실천적 과제를 도출하고 그 방향에서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는 더 이상 선택 사항이 아니라 국내외 상황이 요구하는 필수 과제이다.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이미 ‘2013년 체제 만들기’를 주창하면서 정부를 향해 실천 전략을 요구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남은 기간 한반도 평화의 기초를 닦는 데 선도적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이것이 레임덕을 최소화하는 유일한 방안이자 한반도의 미래에 그나마 기여하는 일이 될 것이다.

기자명 이봉조 (전 통일부 차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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