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전문 프로듀서’라는 타이틀로 방송에 몇 번 얼굴을 내민 적이 있는 필자이지만, 막상 ‘어디까지가 오지인가’라는 질문에는 대답이 궁하다. 휴대전화와 인터넷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2012년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에겐, LTE 통신망과 와이파이가 안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오지처럼 느껴질 것이고, 우리가 흔히 ‘오지’라고 생각하는 나라 사람들이라고 해도 살아가는 데 별 불편이 없다면 막상 자신이 ‘오지’에 살고 있다는 자각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언제부터인가 나름의 기준을 세워 오지를 구분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전깃불’이 들어오는가 하는 것이다. 별것 아닌 듯해도, 전깃불이 들어온다는 것은 길이 뚫린 지 꽤 되었다는 이야기고, 한번 뚫린 도로로는 외지 사람과 물건들이 들어온다. 그리고 집집마다 텔레비전이 켜진다. 텔레비전은 바깥세상의 소식뿐만 아니라 삶의 방식, 그리고 그것에 대한 선망까지 실어나른다.

 

ⓒ탁재형 제공캄보디아 전통술 ‘쓰라 써’는 항아리에 긴 대롱을 꽂아 마을 주민이 돌아가며 마신다.

 


2009년 방문했던 캄보디아의 라타나키리는 그런 면에서, 사라져가는 오지의 경계선 위에 있던 지역이었다. 도로 포장이 되지 않아 우기 때엔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고는 하지만, 소수민족이 부족 단위로 갈라져 살던 촌락마다 길은 어김없이 이어졌고, 그 위로는 여성용 속옷부터 플라스틱 대야에 이르기까지 숲속 생활에 안락함을 더할 물품들을 바리바리 실은 오토바이 보부상들이 분주히 돌아다녔다.

길옆을 따라 나무를 베어 만든 전봇대가 도열한 장병들처럼 세워지고, 전깃줄은 하루가 다르게 도시의 편리함이 미치는 영역을 넓혀가던 참이었다. 6년 전 이 지역을 방문했던 선배 프로듀서의 말에 따르면, 그때까지만 해도 이 지역에는 여자들까지 통치마 하나로 허리만 가린 채 살아가는 부족이 꽤 되었다고 하는데, 이제 상의는 물론 브래지어까지 부족 여성의 필수품이 되어버린 모양이었다. 물론 나이 드신 할머니들이 간간이 전통적인 모습 그대로 돌아다니는 걸 볼 수 있었지만, 위아래로 흰색 파자마(!)를 곱게 차려입은 18세의 마아치는 꿈에라도 그렇게 해볼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일찍부터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

“저희 할머니 세대는 윗옷을 입으면 불편하다고 하시는데, 전 오히려 옷을 안 입으면 부끄럽고 불편해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시청자들이 원하는 현실의 모습을 찾아 보여주기도 해야 하는 것이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다. 기껏 고생스럽게 캄보디아에서 가장 외진 곳 중 하나라는 라타나키리까지 와서, 보여주는 게 중국제 파자마와 티셔츠를 입은 주민이라면…. 당장에 프로그램 데스크로부터 ‘엄청나게 오지라더니, 뭐 이래요?’라는 소리가 들려올 게 뻔했다. 배를 수배해서 톤레사프강을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했다. 모터보트로 물살을 가른 지 두 시간. 

 

 

 

 

 

 

ⓒ탁재형 제공쓰라 써는 쌀과 누룩으로 발효시키는데, 마실 때 물을 부어 우려낸다.

 

 

마침내 전봇대를 찾아볼 수 없게 된 곳에서 우리는 한 할아버지를 만났다. 올해로 일흔다섯이라는 담 깜뿐 할아버지는 땀뿐족 마을의 촌장이셨는데, 한눈에도 몸이 불편해 보였다. 몇 년 전에 농사일을 하다가 쓰러져 몸의 오른쪽을 못 쓰게 되어버렸다고 했다. 외부와의 연결이 원활치 않아 전통적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수상(樹上)가옥 안에서,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도움으로 도시에서 구해온 링거를 맞으며 투병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할아버지가 매일 쉬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고 했다. 불편한 걸음으로 우리를 집 아래로 안내한 할아버지는 끌과 망치를 손에 쥐고 절반으로 나뉘어 맞물려 있는 아름드리 통나무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내가 들어갈 관이야. 옆엣것은 내 아내 거고.”

담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흐뭇함이 피어났다.

“이곳 사람들은 일찍부터 죽음을 준비해. 난 마흔다섯 살 되던 1979년부터 시작했어. 정령이 꿈에 나타나서 이제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고 했거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잖아. 운전하다가 죽기도 하고 농사를 짓다가 죽기도 해. 죽는다는 게 확실한데 준비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멍청한 짓이지.”

할아버지 집 앞 뜰에는 장례식에 참석할 하객을 대접할 물소 한 마리도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이렇게 미리 준비해놓지 않으면 자식들이 음식거리를 구하러 이리저리 돌아다녀야 하잖아. 그러면 조문객이 식사라도 편하게 할 수 있겠어?”

당연하다는 듯 오히려 되묻는 담 할아버지의 얼굴엔 걱정거리를 모두 해결해놓은 사람의 평화로움이 가득했다.

“이리 와봐. 이 녀석들까지 있으니 정말 안심이거든.”

담 할아버지가 가리킨 집 안 한 귀퉁이에는 높이 50㎝ 정도의 항아리가 여러 개 늘어서 있었다. 겹겹이 비닐로 봉해놓은 항아리 하나를 뜯자, 안에 가득한 갈색의 곡식으로부터 희미한 술냄새가 피어오른다. 

 

 

 

 

 

ⓒ탁재형 제공캄보디아 라타나키리에서는 오토바이 보부상들이 생필품을 나른다(아래).

 


항아리에 대롱 꽂아 돌려 마시는 술

캄보디아의 전통술 ‘쓰라 써’다. 네팔의 똥바와 마찬가지로, 물을 섞지 않고 쌀과 누룩으로만 발효시키는 것이 특징인 쓰라 써는 마실 때 비로소 물을 부어 우려내어 먹는다. 항아리에 긴 대롱을 꽂아,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돌려가며 마심으로써 친밀감과 소속감을 높이는 것이다. 할머니가 항아리에 물을 붓자, 그제야 곡주 특유의 화려한 향기가 올라온다.

“좋은 술이 있어야 사람들 기분도 밝아지지. 그래야 장례식에 온 손님들이 덕담이라도 한마디 더 건네주지 않겠어?”

항아리를 어루만지는 할아버지의 얼굴엔 마치 자신이 그 자리에 초대받은 손님이라도 되는 양 즐거운 미소가 어린다.

미리 마셔본 담 할아버지의 장례식 술은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했다.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맛이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전깃불이 들어오는 세상에선 사라져가는, 삶과 죽음에 대한 깊고도 진한 통찰이 담겨 있었다는 사실이다.

 

 

 

기자명 탁재형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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