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이 북한의 급변 사태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일부 우려와 달리 김정은 후계 체제는 안정적·체계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미 17년 전 김일성 주석의 사망을 경험한 까닭인지 김정일 위원장의 경우보다 더 신속하게 권력 승계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 작업도 거침없이 진행 중이다. 따라서 김정은에게 국가 지도자로서 지위를 부여하기 위해 필요한 당 총비서, 국방위원장의 직책을 맡는 절차도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일은 김일성 사후 3년이 경과한 시점에서 유훈통치를 끝내고 1998년 김정일 체제를 공식 출범시켰다. 그러나 김정은은 이미 2009년 4월의 헌법 개정과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의를 통해 김정일 사후에 대비한 권력구조와 인적 정비 그리고 정책노선 설정 등을 완비했다. 지난 1월1일 신년 공동사설은 김정은이 ‘당과 인민의 최고영도자’이며, 경애하는 ‘김정은은 곧 김정일’임을 천명했다. 과연 그런가?
김정일 위원장이 관심 보인 타이 모델
김정은이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그리고 후계자로서의 예비 기간이 김정일 위원장에 비해 짧았기 때문에 김정은 체제가 취약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이는 북한 체제의 특수성을 지나치게 간과한 것이다. 한 예로 2009년 개정한 북한 사회주의 헌법 전문에서 김일성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자이며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북한의 왕조국가적 성격을 천명한 것이다. 즉 수령중심주의가 혈통 중심의 승계 체제로 이어져나갈 것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김일성이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이니 김정은은 3대 수령이 되는 셈이다.
이와 관련하여 의미 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김정일 위원장은 지난 2000년 11월 평양을 방문한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에게 “타이(태국)는 강력한 전통적 왕실 체제를 유지하고 오랜 격동의 세월에서 독립을 보존해왔으며 그럼에도 시장경제를 갖고 있다. 그래서 나는 타이 모델에 관심이 많다”라고 말해 그녀를 놀라게 했다고 회고록에 적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나 ‘인민’보다 지난 60여 년간 미국과의 적대 관계 속에서 남한과 체제 경쟁을 하면서 형성되고 지켜온 ‘사회주의 조선’이라는 코드를 읽어내야 한다. 북한의 정치 문화에서 집단지도 체제는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었다. 북한에서 지도자는 유일해야 한다. 오직 김정은의 유일 지도 체제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주체사상과 선군정치의 전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은 곧 김정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지난 한 달 북한의 동향으로 볼 때 김정은 체제는 김정일 위원장이 추진해온 정책을 계승해나갈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추구한 연장선 위에서 정책을 구사해나갈 것이다. 이를 그들은 ‘김정일의 유훈’이라 부른다. 그렇다고 김정은 체제에 불안정한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는 김정일 체제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기도 하다. 김정일 위원장 집권 이후 북한 체제는 만성적인 경제난과 국제사회로부터 고립 등으로 고통을 받아왔다. 김정일 위원장은 이를 선군정치로 돌파하려 했다. 일단 김정은도 선군정치를 계승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대한 만큼 ‘인민 생활에 향상’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정권과 사회 사이의 간격이 표면화될 것이다. 김정은 체제가 김정일 시대보다 더욱 경제 문제 해결에 역점을 둘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렇듯 김정은 체제는 불안정한 요소를 내재하고 있지만 당장 체제의 안정을 위협하지는 못할 것이다. 김정은이 풀어야 할 최대 난제는 ‘경제강국 건설’이다. 김정은 체제가 체제 안정에 위협받지 않고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면 남한은 물론 주변 국가와의 관계 개선이 필수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북한은 전방위 외교를 추진해나갈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남북을 함께 보는 한반도적 관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사고와 전략이 분단 체제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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