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에 나온 로버트 라이시의 새 책,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안진환·박슬라 옮김, 김영사 펴냄)를 읽으며 나는 계속해서 입을 딱 벌려야 했다. 라이시는 클린턴 행정부의 노동부 장관을 지낸 세계적 경제학자이며 저술가로 그동안 펴낸 여러 책(〈국가의 일〉 〈부유한 노예〉 〈슈퍼 자본주의〉 등)에서 보여준 입장은 ‘기술 결정론’과 ‘세계화 운명론’이었다. 한마디로, 날로 심각해지는 소득 불평등과 불안정한 삶은 정보 기술의 발전·확산과 결합된 글로벌 아웃소싱 때문인데 이는 되돌릴 수 없는 일종의 ‘운명’이란 것이었다. 그렇다면 대안은 ‘세계화에 대한 적응’이며, 국가의 임무는 사소한 사회개혁 조치에 제한된다.

그러나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에서 라이시는 더 이상 결정론과 운명론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견해를 완전히 바꿨다. 라이시는 중산층 몰락과 빈부격차 심화의 원인이 ‘불가피한’ 기술발전 때문이 아니라 ‘자유시장’ 이념과 정책 때문이라고 딱 잘라 말한다. 공기업 민영화, 노동조합 파괴, 최저임금제 하락, 사회보장 축소, 금융 탈규제 등으로 인해 미국 사회가 피폐해졌다는 이야기다. 이와 함께 루스벨트 시대로부터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 그리고 닉슨 시기에 이르기까지 지속된 ‘뉴딜 동맹’, 즉 케인스 경제학과 결합된 개입주의 복지국가야말로 미국(과 세계)의 ‘대번영’을 이끈 정치경제적 토대이며 미국 사회의 ‘기본 합의’였다고 주장한다.

루스벨트(맨 앞)의 뉴딜 정책이 미국의 번영을 이끌었다.
불평등 구조 놔두면 대불황 계속

그러면서 라이시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무엇이 바뀌었냐고 묻는다. 금융회사와 대기업의 수익성이 조금 회복되었다지만, 부유층은 더 부유해지는 데 비해 중산층과 가난한 저소득층은 더 가난해지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라이시가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에서 집중하는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그는 지금처럼 심각하게 불평등한 부와 소득의 분배 구조가 유지되는 한 대불황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문제의식으로 이 책을 썼다고 서론에 밝히고 있다.

그래서 라이시는 강력한 소득 재분배 정책을 요구한다. 오바마 정부가 현재의 대불황에서 벗어나려면 1930년대에 대통령 루스벨트가 실시한 뉴딜 동맹 정책, 즉 강력한 부자 증세와 사회안전망 구축, 노동조합 권리 강화, 기업에 대한 최저임금제 강제, 대규모 공공사업 등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위기 이후 일자리와 주택 상실, 노후 보장 위기에 직면한 중산층과 저소득층에게 저축과 검약을 강조하면서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요구하는 것은 경제위기 극복은커녕 경제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 책의 제2부에서 라이시는 미국의 우울한 미래를 전망한다. 오바마 정부가 지금처럼 미국 사회의 ‘기본 합의’(즉 누구나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를 외면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경우, 파시스트의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로버트 라이시 지음/안진환·박슬라 옮김/김영사 펴냄
집권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파시스트들(일명 독립당)은 배타적 애국주의 및 고립주의와 복지국가적 평등 지향성을 동시에 주창할 것이라고 라이시는 예상한다. 실제로 최근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한 ‘세금 반대 티파티(anti-tax tea party)’ 운동은 몰락하는 백인 상류층(특히 유대인 금융 자산가들)에 대한 분노와 반(反)연방정부 사상, 인종주의 및 애국주의를 결합시키고 있다. “만약 여기서 (뉴딜 동맹 재건이라는)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면 결국 독립당이나 그와 비슷한 정당이 그 빈자리를 국수주의와 고립주의, 편견과 불신으로 채우게 될 것이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바로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사상과 정책을 나름 각각 열심히 추종하며 모방해온 한국의 민주당(혹은 국민참여당)과 한나라당에 대한 라이시의 경고이기도 하다.

기자명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