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먹는 육류 중에 닭고기가 제일 싸다. 사료 투여량에 대한 증체량에서 소·돼지와 비교해 월등히 효율이 높아서 그렇다. 고기로 먹는 닭을 육계라 하는데, 이 육계를 식당에서 먹는 닭의 크기까지 키우는 데 30여 일이면 된다. 채소보다 더 빨리 자란다고 할 수 있다.

이 싼 닭고기를 한국인은 그렇게 저급한 음식으로 여기지 않는다. 쇠고기와 비교하기는 그렇지만, 적어도 돼지고기와는 다른 그 무엇이 있다고 여긴다. 보양 음식으로서의 지위에 이 닭고기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것이다. 통닭·백숙·삼계탕·닭볶음탕 등등을 먹으면 어쩐지 몸에 좋을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은 한국인이면 다 같이 공유하는 정서일 것이다.

오랜 옛날부터 한반도에서 닭을 키웠지만 양껏 먹을 수는 없었다. 한반도 토종닭은 지금의 육계처럼 빨리 자라는 것도 아니고 산란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제는 토종닭을 도태시키고 외래 종자를 이식했다. 그렇다고 일제강점기부터 닭고기를 충분히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규모 양계 농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광복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그나마 농가에 조금씩 있던 닭들의 씨가 마르게 되는데, 전쟁통에 눈에 보이는 대로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전쟁 후 미국이 원조품으로 닭을 약 40만 마리 들여와 농가에 공급했다는 기록을 보면 그 당시 피폐상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전후 복구기인 1960년대에도 닭은 흔하지 않았다. 사위나 와야 씨암탉 잡아주던 시기였다. 한국인이 닭고기를 보양 음식으로 여기는 것은 그 가난한 시절의 추억이 아직도 강렬하게 뇌리에 남아 작동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황교익 제공동대문 닭한마리 골목에 있는 한 식당의 외관. 요즘 손님 절반이 일본인이다.

1970년대 들어 닭고기 수급 사정은 확연히 달라진다. 나무와 철사망으로 서너 층 높이의 케이지를 길게 지어 닭을 치는 농가가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사육 마릿수만 보아도 1960년대 1000만 마리 정도였던 것이 1970년대 초에 2000만 마리를 넘긴다. 전국 어디든 시장 골목 입구에서 볼 수 있던 닭집들은 이즈음에 생긴 것이다.

닭이 이리 넘쳐나도 닭이 보양 음식이라는 오랜 관념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즈음에 닭고기가 보양 음식이라는 관념이 더 강화되었다. 외식업체 때문이다. 통닭집은 ‘영양센타’라 간판을 붙였고, 닭백숙에 인삼 뿌리 하나 달랑 넣고 삼계탕이라며 팔았다. 여름날에 복달임으로 먹던 개장국이 이 삼계탕과 닭백숙·통닭 등에 밀려났다. 한국인의 보양 음식으로 닭이 우뚝 선 것이다.


한국인의 보양 음식 신화 보여줘

동대문 닭한마리는 한국인의 보양 음식 신화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음식이다. ‘닭한마리’라는 그 이름에서부터 뭔가 ‘필’이 오지 않는가. 닭을 통째로 먹으니 기운이 날 것 같은.

동대문 근처는 큰 시장이다. 종합시장일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제일 큰 의류시장이기도 하다. 닭한마리 식당들은 이 시장의 골목 안에 있다. 좁은 골목에 규모 있는 식당만 서넛 된다. ‘닭한마리’를 음식 이름으로 처음 썼다는 식당은 1978년에 개업했다고 한다. 닭한마리의 원래 이름은 닭백숙이다.

원조라고 하는 닭한마리 식당 측의 말에 따르면 닭한마리 작명은 의도된 것이 아니었다. 이 식당에서는 닭백숙을 전문으로 내었다. 그 당시에는 인근에 동대문종합터미널이 있었다. 손님 중에 차 시간을 맞추어야 하는 사람도 많았다. 시간 없는 손님들은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주문을 했다. “여기, 닭한마리” 하고. 닭백숙인데 두 마리, 세 마리가 아니라 한 마리를 달라는 뜻으로 손님이 “닭한마리” 하고 주문했고 그게 음식 이름이 된 것이라 하였다.


ⓒ황교익 제공닭한마리 상차림. 손님이 직접 닭을 해체해야 한다.

단지 손님이 그리 불렀기 때문에 닭한마리가 음식 이름으로 굳어졌다고는 할 수 없다. 닭백숙이라는 이름과 경합하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주인이든 손님이든 닭한마리라는 이름에서 뭔가 독특한 매력을 발견하는 단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닭백숙 그 이상의 무엇이 이 닭한마리에 있었다는 뜻도 된다.

닭한마리는 커다란 양푼에 닭이 통째로 담겨 나온다. 다 익힌 것이지만 가스 불 위에 올려 또다시 끓인다. 깔리는 찬은 김치, 양푼에 넣을 가래떡이 전부이다. 종업원이 가위와 집게를 놓고 가는데, 손님이 직접 이 닭을 ‘해체’해야 한다. 고기가 데워지면 이를 발라서 고춧가루·간장·식초·겨자 등으로 버무린 양념에 찍어 먹는다. 가래떡도 여기에 찍어 먹는다. 국물이 느끼하다 싶으면 김치를 더하면 된다. 고기를 다 먹고 나면 그 국물에 칼국수를 끓여 먹는다. 이것이 모자라면 밥을 넣어 죽을 끓인다. 닭한마리를 먹을 때 보통은 술을 한잔하는데, 고기는 안주가 되고, 칼국수와 죽은 끼니가 된다. 이 가격에 이만한 만족감을 주는 음식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닭백숙이라는 이름은 이 ‘코스식 만찬’의 이름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닭한마리로 최대 만족을 줄 수 있는 이름으로, 손님이 무심코 던지는 “여기, 닭한마리”에 주인이든 손님이든 필이 꽂힌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닭한마리를 상 위에 놓고 보면, 특히 그 상에 서너 명이 앉았다면, 그 고기의 양은 참 볼품없다. 먹성 좋은 사람이라면 그 닭한마리를 다 뜯어야 만족할 것이다. 이 빈약한 상차림을 그럴듯하게 포장해줄 수 있는 음식 이름으로 닭한마리도 훌륭해 보인다. 닭의 일부가 아니라 닭을 통째 한 마리 다 먹는다는 위안 혹은 허영이 이 이름 안에 담겨 있는 것이다. 여기에 닭이 몸에 좋다는 보양의 신화까지 덧씌워져 있으니 그 만족도는 극에 달하는 것이다.


ⓒ황교익 제공닭닭고기를 다 먹고 나면 칼국수를 넣어 먹는다.

〈미슐랭 가이드〉에 소개되기도

동대문 닭한마리는 동대문시장 상인들의 음식으로 시작되었다. 이제 동대문시장에 쇼핑을 온 일본 관광객에게도 소문이 나서 지금 손님 절반은 일본인이다. 지난해 봄에는 세계적인 식당 평가서 〈미슐랭 가이드〉 한국판에 닭한마리 가게가 실려서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음식점에 별점을 주는 ‘레드 가이드’가 아니라, 한국의 여러 관광지를 소개하는 ‘그린 가이드’에 실린 것일 뿐이지만, 그 덕에 동대문 닭한마리는 또 한번 유명해졌다.

닭한마리 식당에서는 이제 “여기, 닭한마리” 하고 주문하지 않아도 된다. 단일 메뉴이니 앉으면 상이 저절로 차려진다. 상에 놓인 음식을 보면 참으로 빈약해 괜히 무안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양푼에 김이 오르고 가위를 들고 고기 자르고 식성대로 양념 비비고 하다보면, 그러니까 손님이 음식을 조리하느라 분주해지면 그 무안함은 어느 결에 사라진다. 여기에 술 한잔 마시고 칼국수를 직접 끓이고 하면서 상 위에는 즐거움이 가득해진다. 주는 대로 받아먹는 것과는 다른 즐거움이 있다. 닭한마리 다 먹고 일어설 때면 국물 찌꺼기와 양념이 덕지덕지 붙은 빈 그릇들이 상 위에 가득해진다. 닭한마리로 든든하게 보양을 한 것이다. 서울의 서민은 이런 음식이라도 있어서 팍팍한 삶을 잠시 잊을 수 있는 것이다.

기자명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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