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임유철씨(40). 그가 만든 축구 다큐멘터리 영화 〈비상〉은 2006년의 화제작이었다. 스타 플레이어가 별로 없는 시민구단 인천 유나이티드와 장외룡 감독을 다룬 이 영화는 다큐로는 드물게 관객 4만여 명을 모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다큐 영화로는 최고 흥행작이었다.

2009년 그는 고향 부산으로 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 직후였다. ‘뭘 해도 부산에서 해보자’ 싶었다. 창원 MBC 시청자미디어센터, 동의대 등에서 ‘다큐멘터리 강의’를 했다. ‘다큐멘터리 아이템을 찾는 방법’을 가르치면서 ‘이런 것도 아이템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검색을 했다. 우연히 경남 고성에 있는 사회복지시설 보리수동산의 축구팀 기사를 보게 되었다. 학생들과 함께 5분짜리 영상 실습을 하기 위해 그 보육원 축구팀을 찾게 되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다큐 감독으로서의 예감 같은 게 통했다. “첫날, 〈비상〉을 찍을 때의 느낌 같은 게 들었다.” 그가 경남 ‘동고성 FC’의 박철우 감독(50)을 처음 만난 날이었다.

ⓒ시사IN 조남진‘동고성 FC’의 박철우 감독(오른쪽)과 이 축구단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 중인 임유철 감독(왼쪽)이 경남 고성의 축구 연습장에서 만났다.

축구 통해 책임과 권한을 배우다

무엇이 임유철 감독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임 감독은 경남 시설아동 대표팀의 전술 연습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공격수, 미드필더 라인, 수비수 라인이 동시에 공격을 전개하는 순간이었다. 이때 미드필더가 자칫 공을 빼앗기게 되면 앞서 나갔던 공격수들까지 전력 질주해 복귀해야 한다. 다른 팀 감독은 그럴 때 실수한 아이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박철우 감독은 어떻게 할까.’ 임 감독은 궁금했다. 박 감독은 공을 뺏긴 아이에게 말을 했다. “○○야. 공을 잡으면 니가 그 공의 주인이다. 주인이니까 패스를 하든 드리블을 하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게 주인의 권한이다. 근데 봐라. 네 옆의 동료들이 헐떡거리제? 니가 방금 최선을 다했으면 안 미안하다. 근데 최선을 다했나? 그렇게 주인이 공을 뺏기면 동료들이 지친다. 그럼 경기에 이길 수 있나? 이게 바로 책임이다. 사람에게는 책임과 권한이 있는 기다. 알겠나?”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던 임 감독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초등학생에게 이런 방식으로 ‘책임’과 ‘권한’을 가르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축구를 배운 아이들에게 폭행·가출·도벽이 사라졌다는 박 감독의 말이 ‘사실이겠구나’ 싶었다.

보육원 아이들에게 축구를 통해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축구 감독. 박철우씨는 축구 선수 출신이 아니다. 20대 초반, 군대를 마치고서 들어간 창원의 한 자전거 공장에서 그는 노동운동을 했다. 해고와 출근 투쟁. 3년간의 공장 생활이 끝났다. 어려서부터 알고 지낸 스님의 권유로 2년 동안 경남 진해에 있는 절에서 ‘절 살림’을 하며 생활하기도 했다. 2000년, 그 스님이 박씨를 불렀다. 미인가로 운영하던 보육원을 인가 시설로 바꿀 계획이 있으니 함께 보육원을 운영해보자고 제안했다. 1320㎡(400평) 남짓한 밭에서 채소를 키우고, 스님들이 모아온 돈으로 보육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냈다. 그는 날짜를 정확히 기억했다. 2003년 1월13일. 보육원이 정식 인가를 받은 날이다. 2003년부터 2년 동안 대학에서 사회복지 과정을 전공하고, 그는 사회복지사가 되었다. 역시 사회복지사인 아내와 보육원에서 일을 했다.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은 만 18세가 지나면 보육원을 떠나야 한다. 그때 정부에서 주어지는 독립자금은 500여 만원이 전부다. 사춘기 때 정체성 혼란을 겪고,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기 쉽다. 자신의 불안한 미래를 이미 알고 있는 아이들은 가출을 하거나 폭력·도벽 등 문제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게 등산이었다. “내가 지식이 많은 것도 아니고, 아이들에게 운동 말고는 줄 게 없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육체적으로 힘들어했다. 아이들의 일기를 보니 정신적으로도 산행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그즈음 보육원장인 스님이 “축구를 해보면 어떨까” 권유했다.

2004년 4월부터 보육원 축구단을 시작했다. 운동을 좋아했던 박철우씨가 축구 감독을 맡았다. 내친김에 축구 지도자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보리수동산 아이들이 중심이 된 동고성 FC는 전국 유소년 클럽대회에 출전해 8강에 오르고, 통영컵 결승전에 진출하기도 했다. 아이들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아이들에게, 축구는 꿈이었다.


아이들이 축구에 빠져들면서 변화가 생겼다.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경남 보육시설 대표팀의 훈련·경기 모습(위 왼쪽부터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박철우 감독은 자신의 월급 200만원 중에서 집에는 65만원을 가져다주고 나머지는 축구팀 운영에 썼다. 그때 축구팀과 동행해 촬영했던 임유철 감독은 “유랑극단 같았다”라고 말했다. 15인승 봉고차에 아이들 20여 명이 탔다. 텐트·아이스박스·베개·부식 따위를 싣고 이동했다. 빽빽하게 들어찬 봉고차. 속도를 낼 수 없어서 3시간30분이면 갈 곳을 7시간 가까이 걸려 도착하기도 했다. 숙소를 구할 돈이 없어서 주차장에 16인승 텐트를 치고 잠을 잤다. 박철우 감독이 공중 화장실에 가서 물을 받아와 밥을 짓고, 라면을 끓여 식사를 해결했다. 상황은 열악했지만 그의 팀은 평판이 좋았다. 반칙을 하지 않는 팀으로 유명했다. 감독과 심판들이 뽑는 페어플레이상, 모범상을 여러 차례 받았다. 박 감독은 말한다. “축구를 잘하면 직장에서도 인정받지 않나. 그런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축구팀을 시작했다. 아이들에게도 최선을 다하자고 말했다. 그러면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존중받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동고성 FC는 2009~2010시즌, 꿈에 그리던 ‘주말 리그’(기존 유소년 축구대회)에 참여한다. 일반 유소년 클럽팀인 이 팀이 ‘엘리트 축구팀’들과 붙게 된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18전 전패. 어떤 경기에서는 10골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비등비등한 경기를 할 때도 많았다. 한 경기도 이기지 못했지만 박철우 감독은 가능성을 발견했다. 지역에서 좋은 소문이 나자 도움이 답지했다. 도민 프로축구팀 경남 FC에서 산하 유소년팀으로 들어오라고 제안했다. ‘동고성 FC U15’에서 ‘경남 FC U15’로 이름을 바꾸고, 유니폼·공 등을 지원받았다. 경남 FC 유소년팀이 되는 건 물품 지원뿐 아니라 축구에 재능이 있는 아이에게 프로 선수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끈이 생긴다는 뜻이었다. 신민규라는 아이가 축구 명문 진주고로 스카우트돼 진학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즈음 다른 아이들은 진학을 위해 훈련을 줄여야 했다. 현재 경남 FC U15팀은 ‘취미로’ 주말에 훈련하는 팀이 되었다. 박철우 감독은 ‘그게 아쉽다’고 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매일 2시간만이라도 축구 훈련을 하면 엘리트 선수 팀을 한 번은 이길 수 있을 텐데….”

보육원 등 전국의 시설 아동들이 참여하는 축구대회가 있다. 보건복지부장관배 전국대회다. 동고성 FC의 명성이 경남에 퍼지면서 박철우 감독은 ‘경남팀’ 감독까지 맡게 되었다. 경남 지역에 있는 보육원 아이들을 모아 2008년부터 3년 동안 출전했다. 여름방학에 한 달 동안 운영되는 임시 팀이었지만 박 감독은 경남의 다른 보육시설 아이들에게도 축구를 통해 사회성을 길러주고 싶었다. 하지만 임시 팀을 상설 팀으로 바꾸고픈 생각을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아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때 임 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나타난 것이다.


아동복지시설 보리수동산 아이들이 중심이 된 동고성 FC(위 맨 오른쪽)는 전국 유소년 클럽대회에 출전해 8강에 오르기도 했다.


경남 대표팀 창단 미적대는 이유

이즈음 지역 보육원에서 조금씩 축구팀에 대한 문제 제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평판도 좋고 아이들도 좋아하는데, 무엇이 문제였을까. 기자는 언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 부분에 대해 박철우 감독은 말을 아꼈다. 대신 임유철 감독이 분위기를 전했다. “처음 경남 시설아동 대표팀을 상설화하자고 제안했을 때, 박 감독은 힘들 거라고 했다. 왜 시도도 안 하고 포기하느냐고, 아이들과 약속을 하지 않았냐고 반문해도 박 감독은 미소만 지었다. 나 또한 그 이유를 금방 알게 되었다.” 보건복지부장관배 대회 마지막 날, 경남 아동복지시설협의회에서 ‘취재를 안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박 감독에게 전해왔다. 바로 전날까지 카메라 앞에서 웃고 대화하던 이들이 말이다.

보육시설은 외부의 관심을 부담스러워한다. 심지어 신문이든 방송이든 언론이 취재하고 나면 해당 보육원 원장이 구속된다는 징크스가 있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다. “시사 다큐가 아니고 따뜻하고 좋은 면만 담겠다고 설득해도 소용이 없었다.(임유철 감독)” 박철우 감독이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보육원 원장은 이런 논란이 일자 “그냥 보리수동산 안에서만 축구를 하는 게 어떻겠느냐”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인근 다른 보육시설 관계자들은 축구팀에 아이를 보내지 않거나 부담스러워했다. 자신의 시설로 돌아간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싶다고 떼를 쓴 일이 있었다. 시설 원장이 반대하자, 몇몇 아이가 그럼 보리수동산에서 살게 해달라고 떼를 쓴 것이 큰일이 되어버렸다. ‘박 감독이 아이들을 꼬드겨 시설에서 빼내려 한다’는 식으로 소문이 퍼져나갔다. ‘초등학교부터 체계적으로 축구를 가르치고, 프로 축구팀에까지 진출시켜보고 싶어하는’ 박철우 감독과 조용한 현상 유지를 원하는 보육시설 관계자 사이에 갈등이 싹텄다. 일부 원장이 축구팀에 아이들을 보내지 않게 되면서, 그리고 아이들이 중학교로 진학하게 되면서 축구팀은 흐지부지 해체의 길로 들어서게 될 처지였다.


임유철 감독이 아이들과 한 약속

그러자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임유철 감독이 나섰다. 애초 ‘보육원 축구팀’을 촬영하려 했다가 축구팀 창단하는 일을 거들게 된 셈이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희망해’라는 누리꾼 모금 서비스를 통해 ‘경남 지역의 보육원과 저소득층 아이들이 뛸 수 있는 유소년 클럽팀을 만들자’고 모금을 시작했다. 1637명이 630여 만원을 모금하는 데 동참했다. ‘보육원·저소득층 유소년 축구팀’을 운영하는 데 1년에 드는 돈은 대략 6000여 만원. 임유철 감독은 프로축구연맹, 경남 FC, 경남도청 등을 찾아다녔다. 신태용 감독·홍명보 감독·이영표 선수·김병지 선수 등 여러 축구인이 모금의 취지에 공감해 ‘모금 영상 촬영’도 기꺼이 수락했다.

임유철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면서 아이들과 한 약속을 지키고 싶다.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경기에서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나와 박 감독님도 계속 너희가 축구를 할 수 있게 하겠다고.” 보육원 아이들은 도와주겠다는 어른들이 그 약속을 어기는 걸 많이 겪어왔다. 그래서 어른들의 호의를 좀체 믿지 않는다. 축구팀에 가장 강력하게 반대했던 한 보육시설을 임유철 감독이 방문했을 때, 그 시설에 있던 ‘팀 아이’ 다섯 명이 임 감독에게 다가와 안으면서 했다는 말. “정말로 영감님(아이들은 ‘영화감독’을 줄여 임유철 감독을 이렇게 불렀다)이 약속을 지킬 줄 몰랐어요.” 그 말을 듣고, 더더욱 임 감독은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두 감독은 곧 경남 지역 아동센터, 프로 구단, 경남도청 등을 찾아다닐 계획이다. 박철우 감독은 경기에 지고 들어온 아이들에게, 훈련을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항상 말했다. “울어도 좋다. 하지만 포기하지 마라.” 어려운 환경 때문에 쉽게 포기하는 아이들을 바꾸고 싶었다. 두 감독도 ‘누구에게나 찬란한’ 팀 창단을 포기하지 않는다(〈누구에게나 찬란한〉은 임유철 감독이 준비 중인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목이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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