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28일 임종석 전 의원은 보좌관이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이유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불과 3개월 전 같은 재판부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그림 로비와 뇌물 수수 의혹에 대해 무혐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두 판결을 지켜본 서울대 조국 교수가 문제 제기를 해왔다.
형사사건에 대한 진상은 검사와 피고인 양측의 주장을 모두 듣고 제출된 증거를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담당 재판부가 가장 잘 알기 마련이다. 물증은 없고 진술만 있는 사건에서는 피고인들이 입을 맞추어 ‘꼬리 자르기’를 시도하기 마련인바, 재판부는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점을 인정하면서도, 최근 3개월 사이에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부장 이원범)가 내린 두 가지 판결은 매우 유사한 사실관계에 대해 정반대 결론을 내놓고 있기에 법학 교수로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이어진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주도한 사람이다. 그런데 2009년 1월 전군표 전 국세청장 부인이 “남편이 청장 재직 당시 한상률 차장으로부터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최욱경 화백의 그림 ‘학동마을’을 받았다”라고 주장하자, 한씨는 미국으로 출국해 1년3개월간 도피했다. 그는 도피 기간에 국세청 소비세과장의 주선으로 주정 3사와 고문 계약을 체결하고 약 7000만원을 받았다.
그런데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는 두 가지 행위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한씨 부인이 전씨 부인에게 ‘학동마을’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한씨가 부인과 공모해 뇌물을 줬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씨와 소비세과장 사이에도 공모가 없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씨는 참으로 똑똑하고 자율적인 부인과 참으로 충성스러운 부하를 두었나보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여러 증거와 정황을 인정했지만, 검찰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을 하지는 못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외국 법원이라면 정반대 판결을
한편, 임종석 전 의원 사건의 사실관계는 이렇다. 임 의원 보좌관은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 신삼길씨로부터 총 1억여 원의 금품을 받았다. 검찰은 신씨의 진술 외에는 보좌관이 받은 관련 자금이 임 의원의 정치자금으로 실제 사용되었다는 구체적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지만, 보좌관은 월급 계좌를 비롯한 모든 관련 계좌를 제출하고 운동선수인 딸을 뒷바라지하는 어려움과 자신이 대학원을 다녔던 상황 등을 증언하면서 이 금품을 개인적으로 사용했다는 증거를 제출했다. 재판부는 이 자금의 대부분을 보좌관이 개인적으로 사용했으며 임 의원이 쓴 증거가 없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임 의원이 이 자금의 구체적인 사용 과정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의원실 운영을 총괄하던 보좌관의 금품 수수에 대해 ‘공동 정범’으로서 책임을 진다고 판단했다.
이 두 사건이 외국에서 일어났다면 어떠했을까 상상해본다. 오히려 정반대 판결이 나오지 않았을까. 물증이 없고 진술만 있는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검사의 입증이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에 이르지 못한 경우에는 비록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이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면이 있는 등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이 법리가 두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된 것일까. 재판부는 이명박 정권의 노무현 죽이기의 선봉에 섰던 한상률과 이에 맞서 싸웠던 임종석이라는 정반대 성향의 피고인을 공평하게 대한 것일까. 단지 필자의 과민반응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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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러했듯 2011년도 다사다난했다. 또한 언제나 그러했듯 대부분의 사건이 금세 관심에서 멀어졌다. 진실 규명이 장기화되면서 흐름을 놓치기 쉬운 의혹일수록 특히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