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학원에 다니던 어느 날 친구를 따라 나이트에 가기 시작합니다. 부킹도 해보고, 춤도 추고. 어느새 사람들이 제 춤을 따라 하기 시작해요. 왜? 잘한다고 하니까.”

김재형씨(32)의 말에 고등학생 청중 200여 명이 웃음을 터뜨렸다. 별명이 ‘하버드의 아이돌’인 김씨는 현재 하버드 대학 한인학생회 회장이다. 남들이 잘한다고 하는 것마다 ‘꽂혀’ 그것만 했다는 그는 고등학교 때는 농구에, 한때는 텔레마케팅에 꽂혔다. 그런데 지금은 하버드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있다.

그는 ‘서울’ ‘강남’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출신’만이 하버드로 유학을 간다는 선입견을 깼다. SKY 출신이 아니다. 하버드 교수들도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서울대?’라고 묻곤 했다. ‘아니다. 혹시 단국대라고 아느냐’라면서 특유의 친화력으로 학생회장에까지 올랐다.

ⓒ시사IN 조우혜하버드·MIT 한인학생회 학생들이 12월21일 서울 ‘상상마당’에서 토크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시사IN〉이 주최하는 ‘하버드·MIT 한인학생회와 함께하는 리더십 포럼’이 12월21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KT&G상상마당 라이브홀에서 열렸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포럼으로 진행한 지난해와 달리 이번엔 토크 콘서트와 리더십 포럼을 병행했다. 멘토-멘티 소모임 시간도 따로 가졌다. 올해 포럼에는 UC버클리 의대를 나와 하버드 케네디스쿨을 졸업한 제이슨 안 씨, 변호사이면서 하버드 주커만 펠로인 저스틴 듀클로스 씨, 하버드 보건대학원을 나와 하버드 학부생 진로상담관을 맡았던 제니퍼 듀클로스 씨가 리더십 포럼 강사로 나섰다. 김재형씨를 비롯해 하버드와 MIT에 다니고 있는 한국인 유학생 5명은 토크 콘서트 강사로 나섰다.

무료로 진행된 이번 행사는 시작 전 신청자가 800명 넘게 몰리기도 했다. 포럼은 ‘꿈’을 설계해주는 사회적 기업 ‘모티브하우스’ 서동효 대표의 강연으로 시작했다. 포럼은 두 분야로 진행됐다. 한국 유학생 5명이 각자 책·꿈·사람·오감·스토리를 주제로 ‘공감’ 콘서트를 열었다. 하버드 출신 펠로의 ‘리더십 포럼’도 동시에 열렸다.

공감 콘서트의 첫 주자인 유혜영씨(28·하버드대 정치경제학)는 ‘책’을 자신의 키워드로 삼았다. 경남 진주 태생인 그는 학원 한번 다니지 않았다고 했다. 알파벳도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익혔다. 대신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를 즐겼다. 시작은 펭귄북 추리소설 시리즈였다. 고등학교 때는 친구들과 누가 더 대하소설을 빨리 읽는지 겨뤘다. 〈아리랑〉 〈혼불〉 〈삼국지〉를 그렇게 ‘뗐다’. 서울대에 진학해 ‘철학하는 짐승’이라는 소모임을 만들어 책을 읽고 함께 나눈 고민을 책으로 만들었다. 책에서 관심사를 찾고 앞으로 나아가는 기회를 얻었다.

흔히 하버드 유학생 하면 재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편견은 ‘꿈’을 현실로 만든 윤선규씨(30·MIT 환경공학과)가 깼다. 윤씨는 집이 가난했다. 그가 살던 집은 어머니가 고등학교 운동부에서 청소일을 하며 얻은 정구장에 딸린 단칸방이었다. 아버지는 노점상을 했다. 유학은 꿈도 못 꿀 처지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처한 조건이 아니라 꿈을 바라보았다. 놓지 않았다. 윤씨는 후배 학생들에게 환경 때문에 미리 좌절하거나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시사IN 조우혜‘리더십 포럼’이 끝난 뒤 참가자와 강연자가 함께 모였다. 강연자들은 참가자들의 이메일 주소를 받아두며 지속적인 만남을 약속했다.

윤씨와 달리 이진하씨(24·MIT 미디어랩)는 과학고를 다니면서 ‘공부하는 기계’로 키워진 경우이다.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는 시험 노하우를 ‘주입당했다’. 그런 이씨가 꺼낸 열쇳말은 ‘오감’이었다. 그는 도쿄 대학에 진학했다. 로봇학을 배우던 그는 당시 하던 공부가 본인에게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우연히 〈상상력의 천국 MIT 미디어랩〉이라는 책을 읽고 과학과 예술 분야가 융합된 미디어랩 과정을 밟겠다고 마음먹고 과감히 진로를 바꿨다고 한다. 


‘실패’도 재미있게 이야기해야

카이스트 석·박사를 거쳐 하버드 대학 박사 후 과정을 밟고 있는 물리학 박사 이효석씨(36)는 빠르고 재치 있는 입담으로 좌중을 웃겼다. 이씨는 학생들에게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라고 강조했다. 스토리를 만들려면 ‘관객·실패·재미’라는 세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인생의 관객은 주변 동료다. 실패마저도 이야기의 필수 요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게 재미다. 이씨는 남미로 의료봉사를 갔던 하버드 학생들을 예로 들었다. 이들은 정수장치가 없어서 배가 아픈 지역 사람들을 보고 후원해줄 기업을 물색했다.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 문제를 해결했다.

제이슨 안 씨(28·하버드대 케네디스쿨)는 이야기 리더십(Narrative Leadership)에 대해 말했다. 자기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고 소통하는가가 중요한 리더십의 자질이라는 의미다. 개인의 삶이 사회적 맥락 속에 닿아 있기 때문에 본인 인생을 ‘스토리텔링’해내는 능력도 중요하다. 제이슨 씨는 의대를 졸업한 뒤 아프리카 르완다, 아이티의 수해 현장, 인도 등을 다니면서 질병이 지니는 사회적 의미를 알게 됐다. 단지 의사가 되려는 목표가 아니라, 자신이 보고 들은 현장의 경험을 경력과 연관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제니퍼 듀클로스 씨(32·하버드 보건대학원)는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EQ(감성지수)라고 강조했다. 우리 몸에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똑같이 느끼는 ‘거울 뉴런’이라는 게 있어서 리더의 감성이 주변을 감염시킨다. MBA 과정을 밟은 인재 사이에서도 특히 성공한 사람은 EQ가 뛰어난 이들이었다. 공감 능력이 좋은 리더는 좋은 결과를 낸다.

저스틴 듀클로스 씨는 새로운 리더십 형식에 대해 말했다. 예전의 리더십 모델은 리더 한 사람이 이끌고, 그에게 모든 정보가 집중되며 책임자도 하나였다. 새로운 형식의 리더는 수평적인 관계에서 구성원에게 많은 질문을 하고 격려한다. 수많은 아이디어를 모아 하나의 좋은 아이디어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감각이 필요하다.

공감 콘서트와 리더십 포럼 이후, 강사들과 참가자들은 멘토-멘티 소그룹 만남 시간을 가졌다. 학생들은 영어 학습 비법부터 진로, 꿈 등 다양한 질문을 쉴 새 없이 쏟아냈다. 강연에 참석한 위다혜양(신목고 2학년)은 “하버드 학생이라고 하면 특별한 사람일 거라 생각했는데 별다르지 않더라. 편견이 사라졌다”라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지방에서도 열렸다. 12월20일은 제주에서, 12월22일은 경남 창원에서 학생 100여 명이 각각 참가한 가운데 리더십 포럼이 열렸다. 12월22일 포럼은 경남도청과 공동 주최로 진행되었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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