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함 한나라호가 위태로운 항해를 이어가고 있다. 강성 쇄신파인 김성식·정태근 두 의원은 탈당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12월19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전면에 등장한다. 당 대표의 권한을 모두 가지면서도 당헌·당규의 당권·대권 분리 규정은 적용되지 않는 막강한 자리다. 한나라당이 위기 극복 카드로 ‘박근혜 올인’을 선택한 셈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2012년 권력 재편기를 앞두고 거대 여당이 격랑에 휩싸이는 모습을 보면, 대선·총선을 앞두고 핵분열한 2007년 열린우리당이 떠오른다. 당시 열린우리당 세력은 일일이 세기도 힘들 정도의 집단 탈당과 신당 창당 과정을 겪은 끝에, 대선이 끝난 뒤에야 옛 민주당과 힘겨운 통합에 성공했다.

열린우리당과의 공통점과 차이점

한나라당의 운명도 열린우리당과 같을까. 2007년 열린우리당과 2011년 한나라당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짚어보면 이 물음에 답하는 데 도움이 된다.


ⓒ뉴시스12월15일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표.

공통점을 확인하는 것은 쉽다. 큰 선거는 다가오는데 민심이 당을 떠나면, 선거를 치러야 하는 정치인들은 저마다 딴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열린우리당은 ‘재·보선 전패’라는 헌정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성적표를 받으며 거의 반년마다 지도부가 바뀌는 내홍을 겪었다. 한나라당도 지방선거 패배, 분당을과 강원지사 선거 패배, 서울시장 선거 패배로 이어지는 3연타가 결정적이었다. “이대로는 총선을 못 치른다”라는 위기의식이 확산되면서, 두 당은 핵분열 1단계로 진입한다.

임기 말 인기 없는 대통령의 존재도 힘이라기보다는 짐이다. 대통령을 향해 온건하게는 “국정을 쇄신하라”부터 강경하게는 “탈당하라”까지 당으로부터 요구가 빗발치기 시작한다. 대통합이나 재창당과 같은 ‘판 흔들기’는, 대통령이라는 부담스러운 짐을 자연스럽게 떼어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역시 핵분열의 강력한 촉매다.

정부와 당의 노선에 대한 문제 제기도 크게 불거진다. 열린우리당은 노선 투쟁이 좌우 양쪽에서 진행됐다. 중도개혁파들은 당의 지나친 좌클릭 때문에 민심 이반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반면 선도탈당파였던 천정배·최재천·이계안 의원 등 ‘민생정치모임’은 정부의 민생 개혁 실패를 지지율 추락 원인으로 꼽았다.

한나라당에서는 전선이 이보다는 단순하다. ‘왼쪽’으로부터의 노선 전환 요구를 당이 어느 정도나 수용할지의 문제다. 탈당을 선언한 김성식 의원은 ‘반값 등록금’과 부자 감세 철회 등을 주장하며 이른바 MB노믹스에 줄기차게 반대해온 인물이다.

불만과 위기의식이 임계점에 달했다고 곧바로 폭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꼬를 트는 계기가 필요하다. 이른바 ‘선도 탈당’ 역시 두 당 모두에서 관찰된다. 열린우리당은 2007년 1월 임종인·이계안·최재천·천정배 의원의 ‘선도 탈당’ 행렬이 기폭제가 되어 끝내 당이 무너졌다.

한나라당 쇄신파 역시 이 단계로 진입했다. 12월13일 의총에서 탈당을 선언한 김성식·정태근 의원은 이후 며칠 동안 탈당 선언이 이어질 것으로 보았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황우여 원내대표가 급히 의총을 중단시키면서 흐름이 끊겼고, 박근혜 전 대표가 부랴부랴 쇄신파를 만나면서 선도 탈당 흐름은 일단 잠복했다.


ⓒ연합뉴스한나라당 쇄신파인 정태근(오른쪽)·김성식(왼쪽) 의원이 12월13일 탈당을 선언하고 있다.

공통점은 여기까지다. 일단 현재의 한나라당이 2007년 열린우리당과 같은 핵분열 단계로 곧바로 진입하리라 보는 것은 섣부르다. 한나라당의 선도 탈당이 연쇄 폭발을 일으키지 못한 것은 단적인 장면이다. 두 당이 처한 주요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보다는 분열의 강도가 약하거나 최소한 속도가 느릴 가능성이 있다.


지지기반 굳건, 유력 대권 주자 존재

열린우리당과 달리, 한나라당은 핵심 지지기반이 무너지지 않았다. 이것이 첫 번째 차이다. 2007년 열린우리당은 진보·개혁 지지층이 실망해 이탈한 데다가, 가장 확실한 호남표마저 옛 민주당과 나눠 가지며 분열한 상태였다. 그 결과 어떤 세력은 ‘진보 집토끼’를, 또 어떤 세력은 ‘호남 집토끼’를 잡겠다고 앞다퉈 울타리를 넘기 시작했다. 천정배·이계안·최재천 등 개혁파가 모인 민생정치모임이 전자를, 김한길·강봉균·이강래 등 중도 성향 호남 의원이 많았던 중도개혁 통합신당이 후자를 대표한다.

반면 한나라당은 중도층의 민심이 크게 이반된 가운데서도 30%를 넘나드는 지지율로 선두를 달린다. 얼핏 보면 지지율 선두 정당이 괜한 호들갑을 떤다고 착각할 정도다. 영남과 보수층이라는 ‘집토끼’가 흩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10월 서울시장 선거에서 보듯, 이 ‘집토끼’만으로도 한나라당은 이기는 선거는 못해도 얼추 경쟁하는 모양새까지는 만들어낸다. 내년 총선에서 인물 변수와 몇 가지 행운이 더해지면 ‘기적의 생환’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열린우리당보다는 모험주의의 강도가 약해지는 이유다.

둘째, 한나라당에는 유력한 대선 주자가 존재한다. 2007년 당시 정국은 한나라당에서 이명박·박근혜 후보가 맞붙은 경선이 사실상 본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열린우리당의 대선 후보군은 고만고만한 지지율에 머물렀다. 열린우리당 내에 구심점이 없었기 때문에 원심력은 더 강하게 작동했다.

현재의 한나라당은 박근혜 전 대표가 일단 구심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쇄신파의 탈당 움직임은 박 전 대표와의 회동 이후 가라앉았다. 박 전 대표가 2년7개월 만에 참석한 12월15일 의총에서는 윤상현 의원이 “박 전 대표에 대해 ‘불통’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모두 이명박 대통령 탓이다. 박 전 대표를 존경하고 사랑하고 신뢰한다”라고 말하는 등 거의 ‘박비어천가’가 쏟아졌다. 대세론이 유지되던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베팅’해볼 만한 대선 주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열린우리당과 큰 차이점이다.


ⓒ연합뉴스2007년 6월 열린우리당 의원 15명이 탈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외부에서 당 내부를 끌어당기는 힘에도 차이가 난다. 열린우리당은 당 외부에 2003년 분당한 옛 민주당이 있었다. 옛 민주당의 당세 자체보다도, 호남이라는 핵심 지지기반을 복원하기 위해 통합이 절박했다. 한나라당을 뛰쳐나온 손학규라는 잠재 대선 주자도 있었다. 당 외부의 인력이 당이 잡아두는 힘보다 훨씬 센 상황이 되자, 핵분열은 필연처럼 일어났다.

현재의 한나라당에는 이렇다 할 ‘외부의 대안’이 없다. 홍준표 전 대표가 주도했던 ‘서울시장 후보 이석연’이라는 실험이 실패로 끝난 데서 보듯, 보수 성향 시민사회는 정치적으로 아주 취약하다. 박세일 서울대 교수는 보수 정치권 내에서는 총리 후보급 인사로 꾸준히 거론되는 중량감 있는 인물이지만, 정작 그가 추진하는 신당은 대중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한다.

이 구도 자체를 뒤흔들 강력한 변수가 하나 있었다. ‘안철수 신당’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뛰어넘는 제3세력을 주창하며 안철수 신당이 등장했을 때, 박근혜의 구심력은 극도로 취약해지고 당 외부에서 잡아당기는 힘은 어마어마해지는 효과가 난다. 그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안철수 신당이 뜨는 순간 한나라당은 수도권 쇄신파를 중심으로 핵분열 국면으로 진입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하지만 안 교수가 신당설을 공식 부인하면서 이 변수도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여전히 변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의 구심력’과 ‘외부 대안 부재’라는 두 축이 한나라당의 결속을 유지하고 있다면, 두 축이 흔들릴 때 핵분열의 가능성은 따라서 높아진다. 비대위원장으로서 당 쇄신과 공천이라는 양대 과제를 짧은 시간 안에 해결해야 하는 박 전 대표가 먼저 시험대에 섰다. 공천 과정에서 큰 잡음이 인다거나, 2위로 내려앉은 자신의 지지율이 고착되어버리면 그만큼 그의 구심력은 약해지고 총선 전에 수도권을 중심으로 2차 탈당 움직임이 일 가능성이 있다.

당이 강도 높은 인적·정책적 쇄신을 한다면, 다시 말해 영남권 대폭 물갈이와 정책상 ‘좌클릭’이 동시에 진행된다면, 핵심 지지기반인 영남권·보수층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지켜봐야 할 변수다. 한나라당이 좌클릭하며 이곳에 빈 공간이 생긴다면, 한나라당 공천 탈락자들이 몰리며 보수 신당이 돌연 힘을 받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박 전 대표는 당 외부의 보수 세력이 인력을 확보할 여지를 주지 않으면서, 본인의 구심력을 최대한 강화하는 어려운 과제를 총선 전까지 완수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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