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의 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민주당-혁신과 통합-박원순 서울시장과 김두관 경남도지사 등 3자가 주축이 된 야권 통합 연석회의가 일단 ‘개문 발차’를 하기로 했고, 민노당-참여당-새진보통합연대가 참여하는 ‘진보 소통합’도 성사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야권 인사들이 2012년 승리의 ‘필수 전제조건’으로 설정하고 있는 ‘야권 대통합’이 내년 총선 전에 완성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변수가 워낙 많은 데다 아이러니하게도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대 상속자로 꼽혀온 박지원·유시민 두 사람이 적어도 지금까지는 대통합에 흔쾌하지 않은 행보를 보이고 있어서다.

11월14일 당 지도부가 국회의원·원외 지역위원장을 모아놓고 통합에 대한 로드맵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민주당 독자 전당대회(전대)’를 주장하는 박지원 의원이 열변을 토했다. “지금껏 당 지도부는 민주당이 통합을 주도하고 중심이 된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어제 합의를 보면 민주당 몫은 3분의 1이 됐다. 민주당이 통합의 중심에 서야 한다. 통합하자. 그러나 안 되면 연합하자.”

박 의원의 뒤를 이어 ‘선(先)전대 후(後)통합’을 주장하는 지역위원장들의 발언이 쏟아졌다. ‘선전대 후통합론’은 현 지도부의 임기가 끝나는 12월18일 이전에 민주당 전대를 치러서 차기 지도부를 먼저 세우고, 그 지도부가 외부 세력과 통합 논의를 진행하자는 안이다. ‘통합’보다는 ‘민주당 주도’에 더 방점이 찍힌다.

박 의원이 이처럼 단독 전대를 주장하는 이유는 명료하다. 통합을 하지 않고 지금 같은 구조에서 민주당 전대를 치를 경우가 유력 당권 주자로 꼽혀온 자신에게 가장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를 차기 당대표로 지지하는 의원들의 모임인 ‘수요회’ 멤버는 현역 의원만 30명에 이른다.

2009년 5월 원내대표 경선에 나가서 떨어졌을 때만 해도 박 의원의 당내 기반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그해 여름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입원과 서거 과정을 거치며 ‘DJ의 적자’라는 위상을 다시 한번 굳힌 그는 천성관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에서 정보력과 프레임 선정 능력을 과시하며 민주당의 전사로 떠올랐고, 이후 민주당 의원들을 개별 접촉해 우군으로 만들어 1년 후 원내대표에 당선됐다.

박지원 우군들 “지분 협상 절대 안 돼”

권노갑 전 의원을 좌장으로 하는 동교동계는 그런 박 의원을 한동안 경원했다. 원조 동교동계도 아니면서 중간에 합류해 DJ 유산을 몽땅 차지하는 ‘굴러들어온 돌’이 마뜩지 않았던 것이다. 동교동계 한 전직 의원은 “DJ 대통령 시절 박 의원이 청와대를 장악하고 동교동계 선배들을 견제할 때보다 DJ 서거 후 갈등이 더 심했다. 동교동계가 아예 박 의원을 각종 모임에서 철저히 배제했다”라고 말했다. 동교동계 인사들은 매주 화요일 이희호 여사를 모시고 DJ 묘역을 참배한 후 점심 식사를 같이하는데, 그 모임에 박 의원은 참여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관계가 적잖이 회복됐다. 박 의원이 꾸준히 동교동계와 접촉하며 지지를 호소했고, 따로 마땅한 대표선수를 내세우지 못한 동교동계도 그의 영향력을 마냥 외면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대통합 없이 총선을 치른다면 공천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원외 지역위원장들이 박 의원의 우군 노릇을 하고 있다. 이들은 “혁신과 통합이나 시민사회 쪽의 몇몇 명망가는 영입하면 되고, 진보 정당들과는 선거 연대를 하면 되지 지역구를 뭉텅 내주는 지분 협상은 절대 안 된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박지원의 야망’은 당 지도부의 통합 드라이브로 위기를 맞았다. 야권 전략통들은 당 지도부와 혁신과 통합 측이 ‘통합 후 전대’에 한목소리를 내는 이유가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라고 본다. 통합으로 판을 한번 흔들고 전대 투표권자를 대폭 확대할 경우, 민주당에서는 손학규·정동영·정세균 등 전국 선거를 여러 번 치러본 사람들이 유리한 위치에서 전당대회를 주도하게 되고, 혁신과 통합 처지에서도 대중성 강한 자기 쪽 사람을 지도부에 좀 더 많이 집어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반(反)박지원’ 연대 효과를 낳는다. 수도권의 한 지역위원장은 “수도권과 486 의원들 사이에서는 호남 대표로는 내년 총선과 대선 못 치른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온다. 영남 기반이 많은 혁신과 통합의 입장은 더더욱 그렇다”라고 귀띔했다. 이 때문에 야권에서는 이번 단독 전대냐 통합 전대냐의 논의가 실제로는 ‘이해찬(혁신과 통합 상임대표) 대 박지원 싸움’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혁신과 통합 측에서는 한명숙 전 총리가 대표 후보로 가장 빈번하게 거론된다. 한 전 총리는 정치자금 수수 의혹 재판에서 1심 무죄를 받아 정치적 위상이 상승했고 운신의 폭도 넓어졌다. 혁신과 통합 측은 문성근 상임대표의 출마도 독려 중이다. 문 대표는 대통합 운동을 가장 먼저 시작했고,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을 통해 18만명이 넘는 전국 조직을 확보했다. ‘진보행동’ 등 486 그룹에서는 아직 대표 후보를 공식화하지 못한 가운데, 이인영 최고위원의 이름이 자주 들린다. 


친노 진영에서조차 유시민 진정성 의심

유시민 참여당 대표는 11월17일 민노당-통합연대 지도부가 진보 소통합에 합의하면서 한시름 놓았다. 1년 가까이 우여곡절을 겪었던 진보 소통합의 최대 걸림돌로 참여당의 동참 여부, 더 정확하게는 유시민의 참여 여부가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참여당의 한 고위 인사는 “이제 맘고생을 좀 덜었다. 이제 1차 관문을 지났으니 2차 통합을 위해 매진하겠다”라고 심정을 밝혔다.

하지만 야권의 대통합론자들은 여전히 유 대표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유 대표의 속셈은 대통합에 있는 게 아니라 진보 소통합으로 세를 키운 뒤 각종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 한다”라는 것이다. 친노 진영의 한 고위 인사는 “유 대표가 총선에서는 진보 통합당의 공천 몫을 최대한 따내고, 대선에서는 자신이 진보 통합당의 대선 후보가 된 다음 통합민주당과의 후보 단일화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라고 전망했다.

이처럼 친노 진영에서조차 유 대표에 대해 비판적 평가가 나오는 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몇 차례 사달을 겪으면서다. 유 대표는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뒤 최대 상속자가 되었다. 다른 친노 대표 인사들은 자의 반 타의 반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지만, 그는 개인적 인기와 참여당을 기반으로 친노 대표성을 확보했다. 대선 후보 지지도에서 야권 1위로 뛰어올랐고,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는 경기도지사 단일 후보 자리를 꿰차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떨어지고, 김해 재·보궐 선거에서 ‘무리수’를 두면서 친노 진영에서조차 외면받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자서전(〈문재인의 운명〉)으로 스타덤에 오르면서 유 대표는 친노 대표 주자의 자리까지 내놓아야 했다. 유 대표는 민노당과의 통합으로 돌파구를 찾아보려 했지만 그 또한 여의치 않았다.

혁신과 통합의 한 고위 인사는 유 대표가 최근 친노 진영에 복귀할 기회를 다시 한번 걷어찼다고 주장했다. 민주당과의 통합 논의를 주도하는 이해찬 전 총리가 야권 통합 연석회의에 참여할 것을 간곡히 권유했지만, 유 대표가 끝내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 인사는 “유 대표가 거의 참여할 것처럼 해서 이 전 총리가 ‘참여당이 온다. 연석회의 일정을 조금만 늦추라’고까지 했다. 그런데 막판에 유 대표가 태도를 바꿔서 이 전 총리가 크게 노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또한 오해라고 참여당 인사들은 말한다. 진보 소통합을 주도한 한 참여당 인사는 “유 대표가 민노당과의 통합을 가장 먼저 추진했던 건 민노당의 참여 없는 대통합은 의미가 없고, 그렇다고 민노당이 민주당과 1대1 협상을 시작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결국 유 대표가 물꼬를 튼 것 아니냐”라고 항변했다.

11월14일 연석회의에서 ‘민주당 주도론’을 강하게 주장한 박지원 의원은 회의 후 “내가 첫 발언을 너무 세게 해서 논의가 이렇게 흐른 것이 미안하다”라며 한 발 물러섰다. 유시민 대표 측은 “진보 소통합은 결코 유 대표의 대권 행보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둘 다 ‘반(反)통합파’로 낙인찍히는 데 대한 경계심이 담겨 있다. 개인의 욕심이 무엇이든, 두 사람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지가 ‘대통합’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다.

기자명 이숙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ok@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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