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효과'는 불멸이겠지만...
  • 반이정 (미술 평론가)
  • 호수 21
  • 승인 2008.01.30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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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델을 살 돈이 없어 유난히 많은 자화상을 남긴 반 고흐는 이번에 소개된 <자화상>에서 밀짚모자를 눌러쓴 상반신을 마분지 위에 유화로 올렸다.  
 
우울증과 정신질환에 시달린 반 고흐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만 후세에 알려진다. 그런데 그 과정이 간단치 않다. 흉부에 권총을 겨눠 관통상을 입은 반 고흐는 그 상태로 숙소까지 걸어서 귀환했고, 죽음의 그림자가 그를 완전히 집어삼키기까지 무려 3일간 침상에서 신음해야 했다. 생전 그림 단 한 점만 매매될 만큼 충분한 저주를 받았건만 임종조차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충동적 자살 행각은 왼쪽 귀 일부를 도려낸 사건과 함께 반 고흐의 광기와 기행을 인용할 때 빠지지 않는 메뉴가 되었다. 인체를 훼손하는 이런 ‘자기 희생’ 은 종교적 모델에 동화되면서 전기 작가는 반 고흐를 성인의 반열에서 다듬어 나갔고, 후대 관객 또한 신화적 가중치가 부풀려질수록 환호했다. 이것은 반박과 의혹이 허락되지 않는 절대 진리의 일반적 제조 공정이라 할 수 있는데, 반 고흐는 대표적 성공 사례로 거론될 수 있다.

혹은 종교적 모델이 차용된 반 고흐 숭배 작업은 그의 희생을 통해 남은 자들에게 천문학적 이윤이 배분되는 구조를 전세계적으로 형성했다. 한편에선 재평가에 따라 이름값이 급등하던 1920년께 위작이 판을 쳐 망자의 명예를 더럽히더니, 다른 한편에선 천재 숭배가 극에 달해 1990년 5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8250만 달러(한화 약 770억원)에 거래된 <가세 박사의 초상>은 경매 사상 최고 거래가를 경신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숱한 아트 상품과 기념품 제작에 그의 이름을 사용되었고, 떼돈 벌이에 소용되었다. 이 모두가 추모 작업의 일환일 수 있으나, 그는 뒤늦은 영화를 누릴 수 없었다.

<가세 박사의 초상>  770억원 신기록

물론 후세 전기 작가의 추상적 숭배 작업으로 인해 반 고흐의 미학적 성과가 훼손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성전화에 버금가는 윤색을 목도하는 오늘날과 비교하면 당대 평가는 야박했다. 화상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회고록은 오늘날 반 고흐의 정신 상태를 시각화해 격찬받는 ‘불타오르는 붓질’이 당대 화상들에겐 “거미줄 같은 그림”이라는 평가 절하와 함께 큰 격노를 샀다고 전한다. 그뿐만 아니다. 타계한 1890년 이후 10년간 그의 개인전은 한 차례도 개최되지 못할 정도로 업계의 냉대와 외면은 심각했다. 그의 대표작 <해바라기>를 소장한 탕기 영감에게, 당시 의사는 우울증 치료를 위해 그 괴상한 그림을 멀리하라는 소견까지는 구전될 정도니 오죽했겠는가.

   
  군청색과 노란색이 극명한 보색대비를 이루는 광기의 <노란집>(위 왼쪽)과 아를르 시절에 그린 <씨 뿌리는 사람>은 고흐의 대표작이다.  
 
초유의 국내 회고전으로 소개되는 이번 전시에는 도판으로만 접했던 대표작 일부가 공수되어 실체를 드러냈다. 몇 점을 살피면 이렇다. 세간에는 비교적 덜 알려진 파리 시절의 대표작 <압셍트가 담긴 잔과 물병>은 당대 예술가의 벗과 독이 되었던, 알코올 도수 70의 압셍트를 묘사했는데, 그의 화폭 위를 군림하는 노란색 집권의 실체에 대해, 한 의학 연구는 압셍트에 함유된 신경독이 그로 하여금 사물을 노랗게 지각하는 황시증(黃視症)을 유발했을 것이라는 해설을 내놓기도 했다.

또 파종하는 농부 도상을 밀레 작품에서 가져온 아를르 시절 <씨 뿌리는 사람>도 작열하는 태양의 과장된 노란색과 신인상주의 영향이 읽히는 푸른 색점이 상호 간섭하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군청색과 노란색이 극명한 보색대비를 이루는 광기의 <노란 집>도 볼만하다. 일본 목판화의 평면적 바탕화면이 떠오르는 <우체부 조셉 룰랭>, 셍 레미 시절 남긴 들라크루아 모작 두 점 역시 내세울 만한 대표작이다.

   
  생전에 그를 이해했던 다감한 동생 테오와 나란히 묻혀 있는 오베르의 묘소 모습.  
 
그러나 이런 거물을 밀어내고 주최 측에서 홍보용으로 낙점한 건 역시 자화상이다. 모델을 살 돈이 없어 유난히 많은 자화상을 남긴 반 고흐는 이번에 소개된 <자화상>에서 밀짚모자를 눌러쓴 상반신을 마분지 위에 유화로 올렸다. 때문에 종이가 기름기를 빨아들여 유화 고유의 윤택은 사라졌고, 생략이 많은 소묘 기법으로 인해 미완성작처럼 보일 정도다. 그렇지만 <자화상>을 얼굴 마담으로 뽑은 데에는 어떤 주저함도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초상화는 전작의 품질을 공증하는 ‘효과’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완숙기와 사뭇 다른 초기 화풍 음미할 만

이번 전시의 공간 연출은 명장의 일대기를 따라가도록 동선을 구성했다. 반 고흐 가족도를 담은 빈티지 기록물 카피본과 장황하게 벽면에 기재된 연보를 지나 관객이 처음 만나는 작품은 그의 모색기와 습작의 산물로 보이는 <슬픔>인데, 나이를 식별할 수 없는 나체 여성이 절망적으로 몸을 웅크리고 있는, 가늘지만 완강한 선이 인상적인 흑백 석판화다. 이 작품은 롭스나 뭉크의 퇴폐주의 미학을, 반 고흐 이후 등장한 미술운동인 빈 분리파의 형식적 프레임 안에 담은 인상마저 들 만큼 ‘반 고흐스럽지’ 않다.

또 곧잘 화사하고 강렬한 원색 구성으로 기억되는 전성기와는 극명히 대조되는 우중충하고 어두운 네덜란드 화풍도 한동안 펼쳐진다. 뉘넨 시절 자연주의를 상징하는 <감자 먹는 사람들>의 석판화 버전이나, 바르비종 풍 풍경 전문화가 코로를 떠올리게 만드는 풍경화도 앞 섹션에 포함된 초기작이다. 이처럼 전시의 구성은 미술사의 반 고흐 시대 구분법, 즉 그의 거주지 이동 경로(네덜란드, 파리, 아를르, 셍 레미, 오베르)를 따른 나열 방식을 취한다. 이는 총 67점으로 그의 일대기를 포괄할 의도였겠지만 완숙기와는 사뭇 다른 전반기 화풍을 통해 오히려 단 10년간 압축된 작가 이력이 반 고흐 개인의 독보적 결과물이라기보다, 시행착오와 당대적 미감에서 부분적으로 영향 받았음을 읽어내게 해준다.

비교적 한산한 시간대임에도 세기의 영웅을 동아시아로 옮겨온 이 성지 순례 체험은 미술관 안에 배식 줄처럼 긴 인간 띠를 형성시켰다. 2004년 70만 관객 동원으로 국내 전시 사상 최다 입장 기록을 세운 <샤갈전>을 신호탄으로 매년 20세기 회화사의 거장을 유치해 짭짤한 재미를 보는 한국일보사에게 반 고흐 만한 문화 사업 아이템은 없을 것이다. 불패 카드임이 입증된 반 고흐를 빼드는 순간 이미 질 수 없는 싸움이 된다. <샤갈전>의 기록을 갈아치울 기세다. 전시 제목이 ‘불멸의 화가’라고 한다. 작가야 작품을 통해 불멸한다지만, 산술 불능의 명예·열광·경제 효과 등이 21세기 초 과연 누구에게 돌아갈까를 숙고하면, 그의 고통스런 세기말적 영면이 보색대비처럼 선명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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