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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서적’ 거부 대가는 ‘잔인한 4년’

2008년 국방부가 불온서적을 지정한 것에 반대해 헌법소원을 냈던 군법무관들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국방부는 이들을 징계했고, 헌법소원은 기각되었다. 불명예 전역이라는 꼬리표가 붙게 되었다.

송지혜 기자 song@sisain.co.kr 2011년 11월 21일 월요일 제2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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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아(가명), 아빠가 이 책 읽어줄게.” “이거 싫어, 저 책 좋아, 저거 읽어줘.” 지영준 법무관(40)은 세 살배기 딸을 재우기 전에 아이와 씨름했다. 지 법무관이 ‘교육적으로 더 나은’ 책을 읽어주려고 하면, 아이는 자기가 보고 싶은 책을 따로 골랐다. 막 말문이 터지기 시작한 아이도 자기가 읽을 책은 스스로 가려냈다.

지영준 법무관은 2000년 군법무관 임용시험에 합격했을 때 “절대 전역하지 않겠다”라고 다짐했다. 빈농의 아들로 1999년 사법시험 2차에서 떨어진 그는 더 공부할 자신이 없었다. 10년을 복무하면 변호사 자격이 주어지는 군법무관에 지원했다. 그때 먼저 합격한 친구들 7명이 매달 각각 10만원씩 모아서 그에게 건넸다. 당시 사법연수원 월급이 70만원 정도였으니, 친구들에게 진 마음의 빚은 그 액수보다 더 컸다. 이를 계기로 군법무관으로서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뉴시스
군대 불온서적 지정이 기본권 침해라며 헌법소원을 냈던 신성수·지영준·한창완·박지웅 법무관(왼쪽부터).


그러나 세상일은 그의 바람처럼 되지 않았다. 전역하지 않겠다던 지영준 법무관은 2009년 3월18일 군법무관 파면 처분을 받고 군을 떠나야 했다. 2008년 7월 국방부가 불온서적 23권을 지정한 것에 대해 동료 법무관 6명과 함께 같은 해 10월 헌법소원을 냈기 때문이다.
3년 전 헌법소원을 처음 제안한 이는 박지웅 법무관(30)이었다. 그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불온서적 지정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의견서를 낸 것을 보고 적극적으로 팔소매를 걷어붙였다. 한창완 전 법무관(30)도 군법무관 내부 통신망에 올린 글에서 불온서적 지정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헌법소원에 함께할 뜻을 밝혔다. 지 법무관은 박 법무관에게 평소 알고 지내던 최강욱 변호사를 소개했다. 최 변호사는 이후 불온서적 헌법소원 법률 대리인을 맡았다. 이환범 전 법무관과 신성수 전 법무관 등도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국방부의 협박과 회유를 못 이긴 2명은 헌법소원을 취하했다.

일이 터진 건 그로부터 5개월여가 지난 2009년 3월이었다. 이들에게 징계가 내려진 것이다. 박지웅·지영준 법무관은 파면을, 한창완 전 법무관은 1개월 감봉을, 나머지 2명은 5일간 근신 처분을 받았다. 국방부는 군 위신 실추와 복종 의무 위반, 품위 손상 등을 이유로 들었다. 당시 원태재 국방부 대변인은 “법무관들이 병사들의 인권을 의식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이라면 장관이나 총장 등 지휘 계통에 보고를 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군인도, 변호사도 아닌 실직자


지 법무관과 박 법무관은 헌법소원 주동자로 지목돼 나머지 4명보다 징계 수위가 높았다. 최강욱 변호사는 “국방부가 가담 정도를 자의로 해석한 것 같다. 파면 처분을 받은 지영준 법무관은 가담 정도에 비해 지나치게 징계 수위가 높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국방부가 헌법소원을 제기한 7명 중 가장 선배인 지영준 법무관이 행동대장을 자처하고 나서서 박지웅 법무관을 비롯한 후배 군법무관을 포섭한 것으로 의심한 것 아니냐’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지 법무관의 파면은 ‘상부에 문제를 제기하면 파면될 수 있다’는 일종의 시범 케이스라는 것이 군 안팎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군법무관 사이에서도 “과한 조처는 곧 헌법소원 취하를 압박하기 위해서다”라는 말이 퍼졌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지영준 법무관은 파면 처분을 받은 바로 다음 날부터 출근하지 못했다. 군인도 변호사도 아닌 실직자가 된 셈이다. 직장에서 쫓겨나더라도 두 아이를 건사해야 하는 가장이었다. 마음을 추슬러야 했지만 쉽지 않았다. 국방부 상급자는 ‘지금이라도 헌법소원을 취하하면 징계를 면하게 해주겠다’며 회유를 계속했다. 먼저 힘을 낸 것은 아내 홍은희씨(35)였다. 홍씨는 영어학습지 교사를 시작했다. 


   
 
지 법무관도 밭에서 콩을 심고 양봉장에서 꿀을 따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지 법무관은     8년간 군법무관으로 일한 경력을 갖고도 법률사무소에 취직할 수 없었다. 변호사법에 따르면, ‘강제 퇴직’인 파면 징계를 받은 사람은 3년 동안 직원으로 고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돌았다. 2007년 말 참여정부 시절, 국방부 장관 주재로 열린 군무회의는 불온서적 지정을 근거로 하는 대통령령 군인복무규율(불온표현물 소지·전파 등의 금지 규정)이 장병의 기본권을 제한한다며 위헌 소지가 있다고 결정했다. 그로부터 고작 1년 만에 다시 이 규정을 근거로 불온서적을 지정한 것이다. 최 변호사는 “군의 기본권을 법률이 아닌 대통령령으로 제한할 경우 자의적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2010년 10월28일, 헌법재판소는 군인복무규율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책 23권의 불온성 여부는 일일이 판단하지 않았다”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23권이 이적물이냐 하는 논란은 계속 남게 됐다. 지영준 법무관은 황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보며 국방부를 상대로 6명이 낸 ‘파면 등 징계처분 취소’ 청구 소송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겠다고 짐작했다.


2년5개월 만에 군법무관으로 복귀했지만…


지 법무관은 2010년 4월 1심 판결에서 파면처분 취소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지씨가 군법무관 시험 합격 후 8년 동안 군을 위해 기여했는데, 파면되면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없어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라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박 법무관을 비롯한 전·현직 법무관 5명에 대해서는 징계처분 취소가 기각됐다.

지난 8월16일 2심에서 지 법무관에 이어 박 법무관도 파면처분이 취소됐다. 그러나 감봉·근신 처분을 받은 4명에 대한 항소는 기각돼 대법원에 올라간 상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파면은 책임의 정도에 비추어 너무 무거운 징계여서 징계 재량권을 일탈하고 남용한 것으로 위법하다”라고 판시했다.

이들은 2년5개월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지난 9월7일 군법무관으로 복귀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보직 대기 명령이었다. 10월18일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정직 1개월이 결정됐다. 정직이 끝나는 11월 말, 현역 복무 부적합 심사를 거치면 12월 중 전역할 수 있다.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정직이라는 중징계를 받아 불명예 전역하는 꼬리표를 뗄 수는 없다. 지 법무관과 박 법무관 외에 3명은 이미 전역해 변호사로 활동 중이며, 나머지 1명은 여전히 장기 군복무관으로 일하고 있다.
지영준 법무관은 “그동안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지만 이제야 비로소 마음이 편안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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