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봄, 나는 아프리카의 소국 말라위에서 내가 직접 출연하는 〈세계테마기행〉을 촬영하고 있었다. 수도 릴롱궤에서 우연히 만난 독일인 여행자의 차를 얻어 타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온종일 달려 도착한 곳은 무아(Mua). 현지인의 전통 예술과 공예를 전승시키는 데 40년이 넘는 세월을 바친 캐나다 신부님이 ‘무아 미션(Mua Mission)’이라는 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곳이다.

촬영은 순조로웠다. 결혼식 때 추는 전통 춤과 이성을 유혹하는 원초적인 춤사위까지, 격정적인 타악기 리듬에 맞춘 아프리카의 몸짓은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 같이 춤추게 될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촬영을 마치고, 땀에 흠뻑 젖어 함께 온 독일인 여행자 랄프를 쳐다보니 연방 싱글벙글이다.

“정말 멋졌어! 아프리카 춤은 언제 배운 거야?”

“배운 게 아니라… 몸 안에 있던 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느낌이랄까?(결국은 막춤이란 얘기)”

“네가 춤추는 동안, 난 그 춤만큼 멋진 걸 또 발견했지.”
 

ⓒ탁재형 제공‘카쟈수’를 만드는 증류기의 모습. 몸체가 옹기로 되어 있는 것은 우리나라 소줏고리와 닮았다.

랄프를 따라 마을 사람의 집에 들어서니 뿌연 연기와 함께 톡 쏘는 향기가 풍긴다. 반사적으로 입에 침이 고인다. 술 끓이는 냄새다. 향기를 따라 안뜰로 들어선 나는 흥분한 나머지 모자를 꽉 움켜잡았다. 멋진 말라위식 증류기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몸체가 옹기로 되어 있고, 아래틀과 위틀을 진흙으로 봉한 것은 우리나라 증류기인 소줏고리와 닮았지만, 알코올 증기를 냉각수가 들어 있는 외부 수조에 통과시켜 술을 얻는 구조는 서양 증류기인 폿스틸(Pot steel)과 같았다.

이 증류기 하나가 이 집 안뜰에 자리 잡기까지, 얼마나 긴 세월이 걸렸을까. 날름거리는 불꽃 속에서 달콤한 한숨을 내쉬는 증류기는 자기 얼굴에 난 흉터로 살아온 세월을 알아맞혀 보라며 무언의 질문을 던지는, 말없는 스핑크스 같았다.

안에서 끓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사탕수수를 발효시킨 것이라 한다. 1ℓ짜리 병 하나에 500콰차(약 3000원). 사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는 가격이다. 방금 받아낸 투명한 술을 플라스틱 컵에 따라 코끝에 가져가니, 가정식 증류주 특유의 옅은 숯불 냄새가 풍긴다. 찌르르하게 목울대를 울리는 자극적인 맛에서 투박하지만 순수한 서민의 정취가 느껴진다.

“마음에 드는데요. 이 술 이름이 뭐죠?”

돌아온 대답을 듣고 나는 아까 증류기를 처음 봤을 때보다 더 놀라서 한동안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마을 아주머니가 알려준 술의 이름은 ‘카쟈수’였다.
 

ⓒ탁재형 제공알코올 증기를 찬물이 든 수조에 통과시켜 술을 얻는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2008년 가을, 난 페루 쿠스코에서 자동차로 하루가 꼬박 걸리는 산골마을 키코그란데에서 잉카 제사장의 후예로 알려진 케로족의 생활 모습을 취재 중이었다. 케로족은 스페인 정복자에 의해 전파된 기독교 신앙 이외에도 산의 신령인 ‘아푸’, 호수의 여신인 ‘마마코차’, 그리고 대지의 여신인 ‘파차마마’를 섬기는데, 중요한 일이 있을 땐 반드시 데스파초(Despacho)라고 하는 의식을 치른다. 정갈하게 펼쳐놓은 보자기 위에 코카 잎과 사탕, 옥수수와 조 등 각종 곡식을 차려놓고 말린 야마(남아메리카에 서식하는 낙타과의 동물)의 태아를 올려놓은 뒤, 신께 정성스레 기도를 올리고 제물을 태우는 것이다.

지배자의 언어로 피지배자를 위로하는 술

이때 빠질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술이다. 의식을 시작하기 전, 참가자들의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는 의미로 독한 술을 한 잔씩 마시고, 의식 중에도 술을 땅에 부어 대지의 여신에게 바친다. 이것은 아마도 옥수수로 만든 술 ‘치차’를 신께 바치던 잉카 시대의 관습에서 비롯한 것일 텐데, 지금은 치차보다도 도수가 높은 사탕수수 증류주가 주로 사용된다. 이 술의 이름은 바로 ‘카냐수’였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아프리카와 페루의 외딴 마을에, 거의 비슷한 이름을 가진, 동일한 재료로 만든 술이 존재한다는 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 해답은 1494년, 유럽의 두 나라 사이에 맺은 조약에 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하고 2년이 지난 후, 당시로서는 해외 식민지 개척의 선두 주자였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양국 사이의 충돌을 예방할 목적으로, 교황에게 중재를 부탁해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체결한다. 현재의 경도 48~49도 사이에 가상의 선을 그어 그 선 서쪽 땅은 스페인 것으로, 동쪽은 포르투갈 영토로 선언한 것이다(남미에서 이 선은 브라질 서부 지역을 지난다. 이 때문에 브라질은 남미에서 유일하게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되었고, 아직까지 포르투갈어를 사용한다).
 

ⓒ탁재형 제공페루 케로족의 산골 마을을 취재 중인 모습(오른쪽). 이곳에서 신에게 바치는 술 ‘카냐수’를 접했다.

자기들 마음대로 지구의 소유권을 양분한, 지금으로선 황당하기 짝이 없는 조약이지만, 당시로선 신세계 개척에 일어날 불필요한 갈등을 미연에 봉합한, 솔로몬의 지혜쯤으로 여긴 모양이다. 이 조약에 기초해 스페인은 남미를, 포르투갈은 인도와 아프리카를 식민 지배하는 데 집중했다. 인도가 원산지인 사탕수수는 폭증하는 유럽의 설탕 수요와 맞물려 황금을 낳는 작물로 여겨졌고, 양국은 경쟁적으로 자신들의 식민지에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을 만들었다. 내륙국인 말라위는 18세기까지는 유럽인들의 발길이 뜸했지만, 이웃한 모잠비크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중요한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 사탕수수는 무더운 신세계의 기후 속에서 흑인과 인디오의 피를 마시며 무럭무럭 자라났다. 여기서 어떻게 증류주가 탄생했는지는 지난번 글에서 설명한 대로다.

사탕수수는 포르투갈어로는 ‘카나 지 아수카르’(Cana de acucar), 스페인어로는 ‘카냐 데 아수카르’(Cana de azucar)라고 한다. 카쟈수와 카냐수. 이젠 독자 여러분도 이 이름이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 쉽게 눈치 채셨으리라. 두 술은 지구 반대편에서, 서로 다르지만 같은 상처를 안은 사람들을, 그들을 괴롭히던 지배자의 언어로 위로하고 있다.

기자명 탁재형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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