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가을이었다. 당시 한국PD연합회장이었던 김영희 PD(사진)와 함께 평양에 갔다. 6·15공동선언 남측 언론본부의 일원으로 ‘남북 기사교류’ 협정을 맺기 위해서였다. 그는 ‘협상의 달인’이었다. ‘김정일 사망설’이 돌던 무렵이라 일정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양측의 신경전이 거칠었다. 그때 그의 요령 있는 ‘밀당(밀고 당기기)’ 덕분에 협정이 원만히 이뤄질 수 있었다.

그 이듬해 그를 만난 곳은 거리였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에 항의하는 언론인 총파업 현장에서 선봉에 선 그는 한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떨고 있었다. 그렇게 한국PD연합회장의 책무를 마친 그는 백의종군해서 〈나는 가수다〉를 들고 다시 시청자 앞에 섰다. 진지함과 재미 사이에서 그만큼 진폭이 큰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러나 잠시의 환호 뒤에 비난이 쓰나미처럼 몰려들었다. 꼴찌를 한 김건모의 재도전을 받아들였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저해가 된다며 경영진은 그를 프로그램에서 하차시켰다. 시청률 전투가 한창인 전장에서 장수를 바꾸는 것을 후배들은 MB에 맞선 ‘괘씸죄’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그는 ‘쌀집아저씨’라는 별명에 걸맞게 사람 좋은 웃음을 남기고 홀연히 남미로 떠났다. 마음의 갈라파고스를 향해. 60일간 29차례 비행기를 타며 남미를 방황했다. 그리고 말했다. “뭐든 괜찮았습니다. 외로워서 좋았습니다.” 

〈소금 사막〉이라 이름 붙여진 이 여행기는 조금 독특하다. 여행지 정보나 맛집, 멋집 그런 시시콜콜한 정보가 전혀 없다. 거친 스케치 몇 장과 사진 몇 장, 그리고 알 듯 모를 듯한 감상이 전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남미 뒷골목을 정처 없이 떠도는 여행자가 된 느낌을 받는다.  

인터뷰 요청 문자를 보내고 꼬박 하루가 지나 답신이 왔다. 아프리카라고 했다. 아직 방황이 끝나지 않은 것일까? 그는 “사람들이 너무 지쳐 있다. 그래서 위로가 필요한 것 같다. 이 책이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라며 답변을 갈음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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