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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 또 징계, <무한도전> 잔혹사

방심위가 [무한도전]에 열 번째 제재를 가했다. [무한도전] 팬들은 ‘표적 심의’라며 방심위의 구시대적인 기준을 비판한다. 방심위는 [1박2일] 제재 건수는 15회라며 억울해한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2011년 11월 18일 금요일 제2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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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PD에게는 숨겨진 욕망이 있었다. 지난해,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그는 PD에서 아나운서로 직종 변경을 신청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김 PD는 대체로 ‘친근한’ 외모의 <무한도전> 멤버 7명을 제치고 시청자가 꼽은 외모 순위에서 꼴찌를 한 바 있다. 직종 변경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아나운서국에 가서 <우리말 나들이> 같은 프로그램을 맡고 싶었다고 한다.

10월8일 방송분에서 김 PD는 <우리말 나들이>의 전 진행자 배현진 아나운서를 <무한도전>에 초청했다. 이 자리에서 배씨는 <무한도전>을 대놓고 지적했다. 출연진의 언행이 문제였다. 배씨는 지난 방송분을 일일이 비춰가며 ‘이 뻥쟁이들아’는 ‘이 허풍쟁이야’로, ‘이 멍청아’는, ‘약간은 모자라지만 이 착한 친구야’로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석에서 언어 순화를 거들던 그도 어색한지 자주 웃었다.

이날 방송에서 나온 발언은 지난 9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무한도전>에 대해 지적했던 내용이다. 방송통신의 유해성을 심의하는 방심위는 7월 방송에서 ‘과도한 고성을 지르는 모습’과 ‘저속한 표현을 반복적으로 방송’했다며 <무한도전>에 경고 조처를 내렸다.


   
ⓒ시사IN 양한모 그림


지나친 언어 순화가 무리수라는 건 당일 프로그램이 말해주었다. 떼쓰거나, 버럭 하거나, 투덜대거나 그간 견지했던 고유의 캐릭터를 잃은 ‘착한’ 출연진은 방송 내내 어색해했다. 6년간 다듬고 만들어진 캐릭터다. 이날 방송에 대해 일부 시청자는 ‘징계에 대처하는 <무한도전>다운 발상’이라고 환영했다.

10월26일, <무한도전>은 또다시 징계 위기에 처했다. 이번엔 자동차 폭발 장면이 문제였다. 9월17일 방송분에서 제작진은 출연진이 미션에 실패할 경우 터질 폭탄의 위력을 보여주겠다며 자동차를 폭파시켰다. 방심위 방송심의소위원회는 ‘주 시청자 층인 청소년들에게 자칫 위험 행위에 대한 경시 풍조 등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며 해당 건을 전체회의에 부쳤다. 방심위는 11월17일 전체회의를 열고 <무한도전>에 '권고'를 의결했다.

이번에 또 경고 조처를 받음으로써 2008년 5월 방심위 출범 이후 <무한도전>은 통산 열 번째 제재를 받게 됐다. 지금까지 세 번의 법정 제재(경고 2회, 주의 1회), 행정 제재인 권고 5회, 의견 제시 1회가 있었다. 법정 제재가 쌓이면 해당 방송사업자의 재허가 심사에서 감점 요인이 된다. 시청자들은 문제의 방송이 ‘독도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한 취지였는데 지나친 조처’라며 <무한도전>에 집중되는 징계에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


캐릭터에 맞는 언행에 ‘주의’ 집중

방심위의 지난 3년을 돌이켜보면, <무한도전>에 대한 지적은 점차 꼼꼼해지는 양상을 보였다. 지난 9차례 방심위의 지상파 심의에서 가장 밉보인 인물은 하하(본명 하동훈)였다. 2008년 초 군 입대로 2년여간 공백기가 있었음에도 하하의 구체적인 발언이나 행동에 대한 지적만 5건이다. 7월 방송된 서해안고속도로 가요제에 도전하면서 하하는 경쟁 팀인 유재석에게 “내가 너 이긴다. 내가 이 형 이긴다”라고 말하며 박명수의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다. 또, 가요제 준비를 잘 해왔으면서 약한 소리를 하는 멤버들에게 “겁나 좋잖아. 이씨, 왜 뻥쳐 뻥쟁이들아” “이거 놓으라고. 왜 나만 갖고 그래” 따위 고함을 쳤다. 하하 특유의 떼쓰는 말투가 자주 지적됐다. 당시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김태호 PD는 시정을 약속하며 “하하는 출연자 중 제일 어려서 어리광 부리며 떼쓰는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 시청자와도 일정 부분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3건을 지적받은 박명수다. ‘버럭’ 캐릭터로 입지를 다진 그는 지난 4월 방송에서 평소 넓은 인맥을 과시하는 정준하가 원빈에게 전화를 걸려고 하자 “멍청아, 원빈 전화한다고 조빈 걸면 죽여버려”라고 말했다. 지난해 3월 권고를 받은 장면에서는 번지점프대 위에서 길(본명 길성준)이 제기차기를 하자고 하자 “야, 너 미친놈 아니냐?”라고 말했다.

본인을 소재로 한 개그가 방심위의 ‘주의’ 조처로 이어지기도 했다. 2010년 8월, 아이돌을 준비하던 각 멤버가 열창을 하는데 박명수 차례에서 유재석이 “(박명수의 노래 부르는 모습이)정말 못생겼다”라고 놀리기 시작한 게 화근이었다. 전체 출연자의 공감을 얻어 잠시 노래가 지연될 정도로 큰 웃음이 터졌다. 덕분에 ‘빅 재미’를 선사했지만 방심위는 ‘특정 출연자의 외모를 장시간에 걸쳐 비하하는 장면’을 문제 삼았다. 이처럼 캐릭터와 맞는 행동과 말을 할 때 주의가 집중됐다.


   
ⓒ시사IN 양한모 그림
박명수와 동점을 이루는 건 인물이 아니라 ‘자막’이다. 서해안고속도로 가요제에서 박명수와 한 팀인 지드래곤이 박명수와의 주먹 싸움을 암시하며 반지를 많이 끼고 왔다고 하자 ‘원 펀치 파이브 강냉이 거뜬’이라는 자막이 떠 문제가 됐다. 조정 합숙 때 기상 미션에 실패해 엉덩이를 맞는 벌칙 과정에서 뜬 ‘쫘악, 휘청, 날아치기, 끄아’ 등에 대해서도 방심위는 저속한 표현이라고 문제 삼았다.

자막을 담당하는 제작진은 이 같은 요구를 받아들여 시정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최근 방영된 ‘우정촌’ 편에서 박명수가 정형돈의 첫인상에 대해 “더럽게 잘난 척한다”라고 말했지만, 자막은 “깨끗하지 못하게 잘난 척하고”라고 하는 등 다소 순화된 표현을 내보냈다. <무한도전>의 자막은 극에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한다는 점에서 제8의 멤버로 꼽히곤 했다. 김태호 PD는 “집에서 팔베개하고 시청하던 사람의 마음속을 자막으로 보여줘 동질감을 주고 싶다”라며 ‘자막 철학’을 밝힌 적이 있다.

방송 언어 이외에도 ‘베개 싸움’ ‘플라잉체어(뒤로 날아가게 만든 특수의자)’ 벌칙 등의 가학성, 간접광고 등에 대한 방심위의 지적이 있었다. 방송제재 사유 중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7조(품위유지)가 일곱 번, 51조(방송언어)에 대한 지적이 다섯 번 등장했다.

방심위는 표적 심의라는 일각의 지적에 억울한 기색이다. 실제로 같은 시기 KBS <1박2일>의 제재 건수는 15회, SBS <일요일이 좋다>는 10회였다. <무한도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무한도전>의 징계에 특히 반응이 뜨거운 건 지난 6년간 캐릭터의 성장을 지켜봐온 팬 층이 견고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무도빠’로 불리는 이들 팬 층은 매 방송을 깨알같이 복습해 당일 출연진의 의상이 과거 어느 드라마에 나왔는지까지 파헤치기로 유명하다. 한 열혈 팬은 “방심위처럼 민원이 제기된 일부 장면만 발췌해 보는 걸로는 부족하다”라고 지적했다. 전체적인 맥락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무한도전>은 프로그램을 통해 지구 온난화, 독도 문제 등 공익적 메시지를 던졌다.


“품위유지 조항은 ‘이현령비현령’이다”

방심위의 잣대가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권혁부 방심위 부위원장은 지난달 전체회의에서 “(언론이) 나이키 간접광고는 문제 삼지 않았다. 동원되는 말이 성인들이 하는 버라이어티 토크쇼에 적합하지 않다는 점에서 저급하다. 대갈리니(정준하 별명) 이따위 말을 쓰는 것이 방송 품위에 맞지 않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 전병헌 의원은 10월28일 기자회견을 열고 “방심위가 전체 메시지보다 일부분의 표현만을 문제 삼으며 ‘꼰대형’ 심의를 하고 있다. 품위유지 조항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라고 비판했다. 언론인권센터 윤여진 사무처장은 “방심위가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맞지 않게 보수적인 게 사실이다. 2008년 출범 이후 제재 건수가 매년 늘고 있는 추세다”라고 말했다.

10월19일 방심위에 출석했던 김태호 PD는 이번 사안에 대해 <시사IN>과 전화 통화에서 “하지 말라는 거 안 하고도 프로그램을 잘 만들 수는 있지만, 방심위 때문에 사내 자체 심의까지 강화될까봐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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