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
동의보감출판사 펴냄
미리 말하지만, 내게 ‘내 인생의 책’ 같은 건 없다. 허구한 날 책 보고 글 쓰는 게 일인 사람한테 틈틈이 들춰보면서 삶을 돌아보는 책 따위가 어디 있겠는가. 그저 어떤 시기에 집중적으로 읽는 책이 ‘내 인생’의 책이 될 뿐이다. 지난 10여 년간 나를 사로잡은 책이 〈열하일기〉였다면, 요즘 내 일상과 사유를 뒤흔드는 책은 〈동의보감〉이다.
〈동의보감〉을 만난 건 5년 전이었다. 예기치 않게 다소 심각한 질병을 앓게 되었다. 평생 병원 다닐 일이 없었는데, 그때 처음 종합병원 신세를 졌다. 끔찍하게 복잡한 절차, 현란하기 짝이 없는 각종 검사를 거친 다음 그 분야의 최고 권위자라는 의사를 ‘알현’했다. 1분 정도 상담했을까. 의사는 말했다. “수술하세요.” “수술하지 않고 완화되는 방법은 없습니까?” 의사는 명쾌하게 말했다. “없다!”라고. 병원을 나오면서 생각했다. 아, 이게 바로 푸코가 말한 임상의학의 실체로군. 질병의 장소성, 전쟁 모델에 입각한 수술, 삶과 치유의 분리 등. 그리고 대다수 여성이 나랑 비슷한 병을 앓고, 그러면 간단하게 수술로 처리해버린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의료 권력이야말로 여성 억압기제의 중추부에 해당한다.
그래, 죽을병이 아니라면 버텨보자. 그때부터 등산과 요가를 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 즈음 〈동의보감〉이 내게로 왔다. 30대 중반의 한의학과 학생이 연구실(연구공간 수유+너머)에 철학 공부를 하러 왔다가 졸지에 〈동의보감〉을 전도하는 가이드 구실을 하게 된 것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울었듯, 동의보감을 만나기 위해 갑자기 그런 질병이 나를 찾아왔던 것일까? 이런 유치한 생각이 들 정도로 〈동의보감〉과의 만남은 가히 ‘운명적’이었다.
특히 〈동의보감〉과의 만남은 내 공부의 큰 변곡선이 되었다. 그것은 질병의 치유책을 넘어 몸과 일상, 삶과 우주에 대한 상상력의 배치를 바꿔주었기 때문이다. 임상의학이 몸과 질병을 삶으로부터 철저히 소외함으로써 ‘생체 권력의 장’을 확보했다면, 〈동의보감〉은 그러한 배치를 근본적으로 뛰어넘을 수 있는 우주적 비전을 지니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결코 ‘전통’ 의학서가 아니라, ‘미래의 책’이다.
물론 〈동의보감〉의 방대한 스케일은 ‘장난이 아니다’. 목차만 100쪽에 달한다. 하여, 읽어갈수록 아마존 정글이나 히말라야 고원에 들어선듯 아득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데, 신기하게도 포기하려고 할 즈음이면 또 다른 ‘고수’가 나타나 더 원대한 진경으로 이끌곤 한다. 이 또한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그래서 이젠 포기하겠다는 생각을 숫제 포기해버렸다. 쩝! 질병과 책과 사람, 이 ‘트리아드’가 만들어내는 기묘한 인연의 사슬이 과연 어떤 삶과 지식을 생산해낼 것인가? 실로 궁금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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