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가 궁금해? 비그포르스를 봐!”
  • 이종태 기자
  • 호수 217
  • 승인 2011.11.16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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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 취임 후 ‘복지사회’에 대한 열망이 높아진 가운데 홍기빈씨가 〈비그포르스,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를 펴냈다. 스웨덴 복지국가의 틀을 마련한 비그포르스는 우리 사회에 어떤 영감을 줄까.
초·중·고교 무상급식, 실질적 무상보육, 0~3세 유아에 대한 아동수당….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캠프 공약의 원형이었던 ‘서울시의회 예산안’(2010년 9월)의 내용이다. 뭔가 파고 세워야 ‘제대로 돈 썼다’고 여겨오던 한국 지자체로서는 놀라운 예산안이었다.

그러나 일부(초등학교 무상급식)는 이미 현실이 되었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은 이런 ‘열망’을, 20세기 초·중반 스웨덴 정치인 비그포르스의 용어를 빌려 ‘잠정적 유토피아’라 부른다(복지국가 스웨덴의 설계자 ‘비그포르스’  참조). 최근 〈비그포르스,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라는 책을 낸 그를 만났다.


   
ⓒ시사IN 백승기
〈비그포르스,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를 펴낸 홍기빈 소장(위)은 “스웨덴 사민당이 ‘전체 국민을 위한 정당’으로 노선을 바꾸면서 집권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런 책을 왜 냈나. 비그포르스의 사상을 한국에서 복원하기 위해서인가?
그가 역사의 전면에 나선 1930년대 초반은 당시 세계를 풍미한 시장자유주의가 공황으로 폭발하고, 나라마다 새로운 시스템을 모색할 때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우리가 겪고 있는 사태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1930년대에 서구 각국은 제각기 다른 길로 갔다. 미국은 뉴딜, 독일(과 서유럽 국가들)은 사회적 시장경제, 이탈리아는 파시즘. 이 중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은 물론이고 민주주의·평화·인권 같은 보편 가치까지 실현한 나라가 스웨덴이었다. 그 중심에 비그포르스가 있었다.

상당수 학자들은 스웨덴 사민주의를 ‘후한 케인스주의’ 정도로 본다. 세금 많이 걷고 재정지출 많이 해서 복지국가를 한다는 것이다.

스웨덴은 오히려 재정과 통화를 굉장히 신중하게 통제하는 나라다. 비그포르스도 1932년 재무장관에 취임한 이후 3년 동안 정부 지출을 많이 늘렸다. 그러나 그 뒤에는 급속히 재정적자를 해소하면서 균형재정을 이뤄낸다. 물가 안정을 위해 통화량도 대단히 엄격하게 관리했다.

신자유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 목표가 바로 물가 안정이다. 이는 물론 금융 투자자들이 물가 인상을 워낙 싫어하기 때문이지만.

그러니까 ‘어떤 정책은 시장주의고 다른 정책은 복지주의’란 식의 이분법으로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 예컨대 시장은 효율이고, 국가 개입은 비효율이라는 통념이 있다. 이에 따르면, 산업(생산과 고용)은 그냥 시장에 맡겨둬야 하는 거다. 그런데 기업(시장)은 충분한 이윤이 예상되지 않으면 산업에 투자하지 않는다. 따라서 때로는 ‘효율’적이라는 ‘시장’ 때문에 ‘나라 살림’이 파탄 나는 것이다. 비그포르스는 이런 이분법을 뛰어넘었다. 시장(기업)이 산업을 활성화시키지 못하면 이에 국가나 노동조합·협동조합 등도 뛰어들 수 있다고, 유연하게 생각했다.

비그포르스에겐 ‘시장이냐, 국가냐’라는 이분법이 없었던 것인가. 우리나라의 경우 보수 세력은 대개가 극단적 시장주의자이고, 진보 세력은 시장을 굉장히 싫어하는 듯 보인다.

1920년대 스웨덴 보수파는 시장을 뉴턴 물리학의 법칙처럼 받아들였다. 시장은 자체적 법칙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이에 개입했다가는 오히려 더 큰 재앙을 불러들인다는 거다. 이에 대립하는 사민당 왼쪽의 마르크스주의자 역시 자본주의는 내부 모순이 심화되다 필연적으로 붕괴하는, 자체 법칙을 가졌다고 봤다. 사실은 좌우 양측이 모두 경제는 자체적인 법칙이 있으며, 이를 인간이 거스를 수 없다는 ‘패배주의’를 공유했던 것이다. 예컨대 실업률이 20~30%로 치솟는 상황에서 보수 정당들의 실업 대책은, 우습게도 ‘그냥 놔두는 것’이었다. 실업자가 많아져 임금이 더 떨어져야 자본가들이 노동자를 고용하기 시작할 거라는 논리였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야 곧 혁명이 일어날 것인데 무슨 대책이 필요하겠는가.

   
〈비그포르스,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그 전통,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한국의 보수 세력도 영세 자영업자나 중소기업 보호를 ‘시장을 거스르는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진보 세력 중에도 복지정책에 매우 비판적인 분이 간혹 있다. 당시의 스웨덴 사민당은 어땠나?
1920년대까지 무능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비그포르스가 1932년 당대회에서 “사민당의 경제정책은 단 두 가지다”라고 날카롭게 비꼰 적이 있다. 하나는 마르크스주의, 다른 하나는 시장자유주의…. 당원 중 상당수가 신봉하던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조만간 붕괴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붕괴하기도 전인 1920년대 중반에 덜컥 집권했다. 그런데 이렇게 국정을 맡았으면 현존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정책적으로 개입해 인민의 삶을 개선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마르크스의 〈자본〉을 뒤져봐도 그런 정책은 안 나온다. 그러니 실패할밖에. 사민당 간판 내걸고 실제로는 시장자유주의(당시에도 주류였던) 정책을 시행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었다. 비그포르스는 사민당이 현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효과적으로 개입할 독자적 틀을 갖추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이를 되풀이할 거냐고 비꼰 것이다.

그래서 비그포르스는 뭘 했나?
1932년 총선을 앞두고 ‘나라 살림의 계획’(planhushallning)을 제시했다. 꼭 필요하지만 민간 기업이 투자하지 않는 부문에서 정부 지출로 공공사업을 벌이겠다는 거다. 그래서 일자리를 늘리고 사회 전반적인 생산성도 높이려 했다. 이와 함께 사회복지 정책으로 시민들이 일자리 및 생활 안정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당시로서는 매우 구체적인 플랜을 제시한 것이다.

보수 정당들이 매우 곤혹스러웠겠다.
진보 세력은 흔히 이념에 찌들어 현실을 모르고 구체적 대책도 못 세우는 무능한 세력으로 치부된다. 그런데 당시에는 거꾸로였다. 보수 세력이야말로 시장근본주의란 이념에 찌들어 어떤 대책도 내놓지 못하는 무능한 세력으로 전락한 것이다. 유럽 시민에게 중요한 것은 이념이 아니라 일자리 전망이었다. 혁명주의 세력이 강했던 독일 사민당은 구체적 정책을 내지 못했고 이에 따라 히틀러가 집권했다. 스웨덴 보수 세력은 ‘경제도 좋지 않은데 정부 지출을 늘리자니, 제정신이냐’고 따졌지만, 결국 사민당이 1932년 총선에서 승리했다.

‘망국적 포퓰리즘’이 당시도 유행어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사민당은 1932년 총선에서 과반수를 얻지 못하지 않았나?

보수 세력인 자유당·보수당·농민당의 의석을 합치면 사민당보다 더 많았다. 그래서 불황 타개 정책을 쓸 수 없게 되자, 사민당이 ‘꼼수’를 쓴다. 농민당의 젊은 당원을 비밀리에 ‘꼬여내’ 사민당-농민당 연정을 구성한 것이다. 놀라운 일이었다. 당시 스웨덴에서 농민당은 왕정을 지지하며 사회주의는 물론 자본주의까지 반대했던 ‘수구 꼴통’이었기 때문이다. 사민당이 노동자 계급정당 노선을 ‘전체 국민을 위한 정당’ 노선으로 전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집권 직후엔 건설노조 파업이 터졌다.
파업은 1년 넘게 계속되었다. 야당은 이를 빌미로 사민당 정부를 전복하려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진다. 스웨덴 노총(LO)이 나서서 파업을 진정시킨 것이다.

노총이 파업을 말렸다고? 우리 시각으로 보면 노동자 계급에 대한 배신이다.

스웨덴 노동운동에는 계급 내부의 지나친 소득 격차를 시정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있었다. 당시 건설노동자의 임금은 스웨덴 평균 임금의 170% 정도로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임금을 더 높이자는 파업은 다른 부문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기 힘든 측면이 있었다. 또한 비그포르스는 노동운동의 임무가 자본가를 때려잡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을 사회 전체의 생산을 발전시키는 주체로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자본 측과 협력할 수도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스웨덴 노총 내에서는 1920년대 후반부터 노동운동이 산업 합리화에 협력할 수 있다는 노선이 계속 확산되었다.


   
ⓒ뉴시스
박원순 신임 서울시장(오른쪽)이 10월27일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실제로 스웨덴 사민당은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 계급 타협을 주도하기도 했다.
1936년 총선에서 사민당이 보편적 복지를 내걸어 압승을 거뒀다. 자본 측은 장기 집권이 유력한 사민당을 계속 적대시할 수 없었다. 비그포르스가 주식협회에 나가 “스웨덴은 노동이든 자본이든 한쪽이 다른 쪽을 완전히 지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타협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런 흐름을 타고 1938년 잘츠요바덴에서 역사적인 노사협약이 이뤄진 뒤 산업평화와 사민당의 헤게모니가 굳건해진 것이다.

진보운동은 체질적으로 유토피아를 지향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스웨덴 사민당은 당대의 다른 진보 정당과 상당히 다른 정치 행태를 보인 것 같다. 이와 관련해서, 당신 책의 제목에 나오는 ‘잠정적 유토피아’를 간략히 설명하면?
사람들이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분노하고 좌절하면서, 변혁은 시작된다. 인간은 좌절로 끝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새로운 세상’을 열망하고 이에 상상력을 채워 ‘가상의 미래’를 만들게 되어 있다. 비그포르스가 말한 ‘잠정적 유토피아’다. 그런데 이 ‘잠정적 유토피아’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인간에겐 이 ‘잠정적 유토피아’를 실천하고, 그 결과를 과학적으로 성찰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당초의 ‘잠정적 유토피아’가 현실적으로 가능하고 바람직한 계획이었는지 판단하고, 그렇지 않다면 계속 수정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1930년대 불황 속의 스웨덴에서 노동자·서민의 열망은 무엇이었을까.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처럼 혁명이었을까? 아니면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었을까? 나는 그들에게 절박했던 것은 시장도 혁명도 아닌 일자리와 사회보장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시민의 열망을 모아 정책으로 실천하고 그 결과를 성찰해서 목표를 수정하며 ‘잠정적 유토피아’를 실현해온 것이다.

한국인의 ‘잠정적 유토피아’는 뭘까?

지금 한국인이 열망하는 것은 의료·교육·보육·주거·출산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아닐까. 예컨대 복지국가다. 사실 서구에서 이런 복지는 어느 나라나 다 하는, 허접하고 별것 아닌 제도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국인들은 꿈도 상상도 못해봤던 것 아닌가. 나라에서 보육과 출산을 책임지고, 대학 교육까지 지원하다니….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우월한 삶이 가능하다는 상상력과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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