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기의 실패한 휴거
  • 진중권(중앙대 문과대학 겸임교수.문화평론가)
  • 호수 3
  • 승인 2007.10.01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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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일승천의 기세로 할리우드에 날아간 <디 워>가 혹평 속에 추락하고 있다. 스필버그를 제치고 8조원을 벌어오겠다더니 막대한 외화만 갖다 뿌린 셈. 애써 쌓은 한국 영화의 명성에도 단박에 먹칠했다.

   
 
진중권(중앙대 문과대학 겸임교수.문화평론가)
욱일승천의 기세로 할리우드에 날아간 <디 워>가 혹평 속에 추락하고 있다. 스필버그를 제치고 8조원을 벌어오겠다더니 막대한 외화만 갖다 뿌린 셈. 애써 쌓은 한국 영화의 명성에도 단박에 먹칠했다.
 
 
사람만 하는 게 아니다. 할렐루야, 은혜 충만한 한국에서는 뱀도 휴거를 한다. 종말의 그날은 2007년 9월14일. 원래 이날 거대한 뱀은 입에 여의주를 물고 미국의 하늘로 승천을 했어야 한다. 하지만 “영차!” 거국적 성원으로 미국 하늘로 헹가래 친 뱀은 제 힘으로 날지 못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이무기 따라 덩실 하늘로 떠올랐던 부푼 마음의 풍선들은 일제히 김이 새버렸다.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를 제치고 8조를 벌어다주겠다던 영화. 잠시 후에는 “아동용 B급 괴수영화”가 되더니, 이제 와서 자신이 “인디 영화”란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당당히 겨루어 박스 오피스 1위를 할 거라더니, 미국 영화 다 노는 비성수기에 10위권에 드는 것도 잘한 거란다. 원래 비디오를 비롯한 2차 판권을 노린 영화였다나?

로스앤젤레스를 습격할 이무기는 원래 두께 1m(제작비 300억원)에 길이 1백m(수익 8조원)짜리 뱀이라 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이 놈의 길이가 짧아진다. 50m, 30m, 10m. 급기야 1m가 되어 슬며시 비디오 가게로 기어 들어왔다. 두께 1m에 길이 1m라면, 그게 뱀이냐? 주사위지. 이 ‘블록버스터 인디’ 뱀이 주사위 몸매라도 유지했으면 좋겠다. 거기서 더 짧아지지 말고.
영화는 문화이자 산업이다. 산업적으로는 미국에서 막대한 달러를 벌어오겠다고 했다. 결과는? 외려 막대한 원화를 미국에 갖다 뿌린 꼴이 됐다. 문화적으로는 한국 영화를 미국에 알린다고 했다. 결과는? 평단과 관객의 조롱을 당하며 그동안 다른 감독들이 애써 쌓아올린 한국 영화의 명성을 일거에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바로 이게 덜떨어진 주관적 애국자들이 싸지르고 다니는 객관적 망국질이다.
언론은 어떤가? 미국 신문이 ‘자막 없이 보는 영화’라고 했더니, 이를 ‘말이 필요없는 영화’라는 칭찬으로 옮긴다. ‘용이 있는데 플롯이 왜 필요해?’라고 했더니, 조롱한 줄도 모르고 쓰기를, ‘거 봐라. 플롯이 없어도 좋은 영화란다’. 이 와중에도 열심히 승전보를 전하는 덜떨어진 언론도 있다. ‘한국 영화 최초로 박스 오피스 5위 진입’, ‘한국 영화 미국 흥행 기록 깨다’, ‘흥행에 청신호 켜지다’ 등.

망신살의 길이는 이보다 길다. 이번 일로 한국 관객의 수준도 폭로됐다. 서사에 개연성이 필요하다는 것은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다 배웠던 얘기. 한국의 대학원생이 방송에 나와 <300>과 <디 워>의 차이가 뭔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할 때, 미국의 초등학생은 인터넷에 UCC를 올려 한국의 어른들에게 두 영화의 서사가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조목조목 설명해 주었다.

   
 
ⓒ난나 그림
 
덜떨어진 애국자들과 언론이 망신살 더해

우리 엄마보고 할매라고 불렀다고 아침 먹고 따지러 온 한국의 어른들. 그 ‘호러블 보이’에게 인종차별의 폭언을 퍼부었다. 그러나 소년은 점잖게 대꾸하기를, “나는 한국을 비판한 것도 아니고, 한국 사람을 비판한 것도 아니고, 한국 영화 전체를 비판한 것도 아니고, 그저 이 영화를 비판했을 뿐인데, 왜 이렇게 흥분하는지 모르겠다”. 누가 어른이고, 누가 어린이인지.
남의 피부색마저 시비 걸던 이들이 제 취향만은 존중하란다. 그럼 남의 취향도 존중했어야지. 몰려다니며 패악질을 하다가 미국에서 혹평이 쏟아지자, 갑자기 미적 상대주의자로 전향한다. 그래, 취향은 상대적이다. 하지만 거기에도 수준은 있다. 애들 보기엔 ‘뽀뽀뽀’도 재미있겠지. 하지만 애가 대학생이 돼서도 ‘뽀뽀뽀’를 애청한다면, 부모로서는 당연히 자식의 남다른 상태에 대해 리모컨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지 않겠는가?

2천 년 동안 그랬듯이 이번에도 휴거는 오지 않았다. 그래도 돌들은 또다시 세상의 중력에서 풀려날 휴거를 기다린다. BT(줄기세포) 갖고 한번 난리를 쳤고, IT(컴퓨터 그래픽) 갖고 한번 소동을 벌였으니, 남은 것은 NT뿐. 나노기술 들고 나와 “대한민국의 기술” 외치며 “330조”를 벌어다줄 새로운 모세는 지금 어디에 있느뇨?

※ 외부 필자의 기고는 <시사IN>의 편집 방침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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