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초령 아래 얼어죽은 소녀
  • 복거일 (소설가)
  • 호수 21
  • 승인 2008.01.30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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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아웃〉
마틴 러스 지음
펭귄 펴냄

 

1950년 12월 함경남도 장진군에서 미군 해병 제1사단은 생존을 위해서 처절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몇 곱절 많은 중공군에 포위되어 부대가 동강나 버렸다. 게다가 살인적 추위로 많은 사상자가 났다.

극한 상황에서도 해병의 사기는 높았다.  “후퇴, 말도 안 되지-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공격하는 거요(Retreat, hell ? we’re attacking in another direction)”라는 사단장 올리버 스미스 소장의 유명한 발언은 이때 나왔다. 그가 지적한 것은 포위된 군대에겐 후방이 따로 없으며 포위돌파를 위해선 적군으로부터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공격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6?25 전쟁에서 가장 처절하고 장렬했던 ‘장진호 싸움’에서 미군 해병 제1사단은 남쪽 해안으로 물러나면서 중공군에게 심대한 피해를 주어서 미군을 포위 공격했던 중공군 부대는 석 달 동안 전선에서 물러나야 했다.

 마틴 러스의 〈포위돌파(Breakout)〉는 참전했던 병사들의 회고를 통해서 이 작전의 실상을 자세히 그리면서도 전략적 상황을 잘 조감한다. 장진호 작전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싸움이었다. 만일 미군 해병 제1사단이 장진호에서 몰살했다면, 전황은 걷잡을 수 없이 유엔군에 불리해졌을 터이고 한반도가 다시 공산군에 점령되었을 수도 있다.

이 책이 그린 많은 죽음 가운데 내 마음에 오롯이 남은 것은 한 소녀의 죽음이다. 미군이 철수하자 주민이 모두 따라나섰다. 양쪽의 산줄기에 포진한 중공군으로부터 계속 공격받는 처지라, 미군은 한국인 피난민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중공군이 피난민에 섞여 미군을 공격했으므로, 미군은 피난민을 부대에서 떼어놓아야 했다.

   
     
 
많은 미군 병사가 당시 자기들을 따라나선 피난민을 돌볼 수 없었던 사정을 안타깝게 회고했다. 1연대 1대대 소속 대위였던 윌리엄 홉킨스는 중공군에 쫓겨 달아나다가 가족이 흩어진 피난민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남매가 길을 가는 것을 보았는데, 조금 있다가 소녀 혼자 추위에 떨면서 오빠를 찾는 것을 보았다. 단발머리를 한 그 소녀는 그에게 어릴 적 누이를 떠올리게 했다. 그는 눈 속에 넘어진 그 소녀를 벙커 안으로 데려가 뜨거운 차와 시레이션을 주어 원기를 차리게 했다. 그리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소녀에게 다시 길을 따라 내려가라고 일렀다. 그 다음 날 그는 황초령(黃草嶺) 아래 도로 옆에서 얼어죽은 그 소녀를 보았다.

이 겨울에도 북한 주민은 얼어붙은 두만강을 넘을 것이다. 과거 베트남의 보트 피플이 그랬듯이 탈북자들도 자신의 거처를 옮기는 것으로 의사 표현을 한다. 이것을 ‘발로 투표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 추운 겨울에 갈 곳 모른 채 무작정 이국 군대를 따라나선 사람들을 생각하면, 어쩌다 ‘굳세어라 금순아’를 듣고 흥남 부두에서 되돌아선 사람들을 떠올릴 때면 가슴이 저릿해진다. 그때보다 훨씬 더 압제적이 된 북한 정권 아래서 발로 투표하는 사람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막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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