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출신 생태학자이자 정치인이기도 한 얀 베라넥 씨(41)의 현재 직함은 ‘그린피스 반핵 캠페인 대표’이다. 전 세계 핵 관련 이슈를 파악하고 반핵 환경운동가의 활동을 지원해주는 게 그의 임무이다. 올해 초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현지를 방문해 방사능 전문가의 조사를 이끌기도 했던 그가 지난 10월9일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핵 산업을 수출 품목이나 지방 경제 활성화 수단으로 생각하는 한국 정부에 대해 “다들 휴대전화를 사용하는데 뒤늦게 유선 전화 생산에 투자하는 꼴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에 오기 전 생각했던 것과 다른 점이 있나? 일본과 가까운 한국에서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핵에 대해 훨씬 염려를 많이 할 줄 알았다. 원전 지역의 인구 밀도도 굉장히 높아 지방 정부가 안전 수칙이나 대피 기준에 대해 대책을 마련했으리라 생각했는데, 기대보다 훨씬 무관심한 것 같다. 현 상태로 유지해도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마치 암에 걸린 사람이 자신은 암 환자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시사IN 조남진얀 베라넥 그린피스 반핵 캠페인 대표.
한국 정부는 여전히 원전 확대 정책을 고수하고 외국에 원전 수출까지 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원전 건설 비용이 200억 달러 규모인데 그 가운데 한국 정부가 금융 조달할 비용이 100억 달러라고 들었다. 자국의 돈을 들여서 부유한 아랍에미리트를 돕는 한국 정부를 납득할 수 없다. 그리고 원전은 그다지 이윤이 나는 사업이 아니다. 비즈니스 기회도 앞으로 더 적어질 것이다. 앞으로는 신재생 에너지 시장이 더 커질 것이다. 이미 2010년 10월 기준 신재생 에너지 투자액은 원자력의 10배를 넘어섰다.

하지만 여전히 원자력이 신재생 에너지에 비해 경제적이라 믿는 사람이 많다. 원자력은 보조금을 많이 받기 때문에 싼 것처럼 보일 뿐이다. 원전 개발 단계인 R&D에서부터 정부로부터 많은 투자 자금이 들어가고 세제 감면 혜택을 받으며 폐로(원자로 폐쇄)나 사고 시에도 공적 자금이 충당된다. 이 모든 것들을 계산에 포함한다면 원자력은 결코 싸지 않다.

경북 원자력 클러스터 토론회에 참석했는데. 자치단체에서 원자력을 미래를 위한 첨단 혁신 기술로 홍보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경북도는 동해안을 세계 원자력 시장 선점을 위한 전진 기지로 구축한다는 목표 아래 정부가 개발 중인 고속증식로 등 원자력 관련 연구 개발 시설을 들이겠다는 유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곳에서 도입하려는 고속증식로와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시설은 이미 1960년대의 유산인 구식 개념이다. 미국, 프랑스, 영국, 일본 등 선진국도 개발하려고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한, 검증되지 않은 기술에 100억 달러를 투자하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또 다른 문제는 이런 기술에 대한 수요가 앞으로 20~30년 뒤에는 없어진다는 것이다. 대부분 재생에너지로 옮아갈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기술을 성공적으로 개발한다고 해도 사려는 고객이 한 명도 없을 수도 있다.

원자로를 폐쇄하는 데만도 막대한 예산과 시간이 든다고 알고 있다. 어떤 로드맵으로 가야 사회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까? 폐로를 한다 해도 핵폐기물에 대한 기술적 해결책은 세상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사실 ‘좋은 로드맵’이란 있을 수가 없다. 물론 핵 관련 산업계로 하여금 폐로 비용과 폐기물 관리 비용을 충당하도록 할 수 있지만, 많은 OECD 국가의 경우 이에 막대한 공적 자금을 들이고 있다. 그린피스가 최근 서울 사무소를 냈다. 본부에서는 한국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본부에서는 한국의 원전 관련 상황을 잘 인지하고 심각하게 보고 있다. 한국은 앞으로 점점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나라가 될 것이기 때문에, 한국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느냐는 한국 국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관심사이다. 한국의 에너지 정책을 개선해 한국 경제와 환경이 나아지도록 돕는 것도 내 임무 중 하나이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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