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선생님처럼 눈물이 나요
  • 김미화 (방송인)
  • 호수 21
  • 승인 2008.01.3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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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
박완서 지음
열림원 펴냄

나는 오늘 이 글을 쓰면서 ‘행복한 눈물’이 난다. 삼성에서 비자금으로 구입했다는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은 값이 뭐 몇 십억원이라지만 내 행복한 눈물의 값은?  단 5000원이다.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영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우리 집까지 가는 데 고속도로 통행료가 왕복 5000원 정도니까 좋은 공기와 자연의 혜택을 흠뻑 입고 사는 대가치고는 거저인 셈이다.

나는 1년 전 용기 있게 시골로 내려갔다. 매일 생방송이 밤낮으로 있고, 여러 바쁜 일정이 있는데 어떻게 그 먼 거리에서 서울로 왔다갔다 할 수 있을까? 나조차도 겁이 났다. 1983년에 코미디언이 되어 25년 동안 쉼 없이 방송을 했다. “누가 내 인생에 브레이크를 좀 걸어다오~” 마음 속으로 외치던 간절한 바람이 작년에서야 이루어진 것이다.

천천히 천천히 다운시프트하고 살자, 오랫동안 마음으로 생각했다.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시간이 왜 그리 더뎠는지? 좋은 집, 좋은 차, 비싼 동네…. 내 주위에 내가 원하면 완벽하게 누릴 수 있는 편리함이 가득했고 나는 그걸 놓치기 싫었다. 그러나 내 몸속에는 어린 시절 땅에서 기어 다니면서 흙 파먹고 자라던 인자가 흐르고 있었나 보다. 피가 흙으로 끌리는 걸 어쩌랴.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용기를 내서 시골 구석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집을 지으면서 1년 동안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 시골에 집을 짓기가 어찌나 힘들던지 별로 권하고 싶지는 않다.

어찌어찌 집을 짓고 난 이듬해 겨울, 나는 박완서 선생의 〈호미〉를 읽으면서 ‘맞다 맞다, 박완서 선생님이나 나나 다 똑같은 기쁨을 맛보며 사는구나’ 깨닫고 무척 반가웠다. 나의 시골 생활은 비포장 흙길에서 제일 먼저 시작된다. 처음에는 이 불편한 시골길이 싫었다. 비 오면 진흙탕에 차가 온통 흙 범벅이 되고 눈 오면 꼬불꼬불 언덕길을 못 올라가, 마을 앞 다리 위에 차를 세워둔 채 뾰족구두를 차에 싣고 다니는 등산화로 갈아 신고 걸어서 집까지 귓불이 떨어져라 입김을 호호 불며 걸어가야 하니, 보통 신경질이 나는 게 아니었다. 동네 이장님을 찾아가서 길을 좀 빨리 포장 해달라고 사정도 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 비포장 흙길이 정말 좋아져서 포장을 하지 말기를 바란다. 주말에 나는 백암 장에서 산 3000원짜리 장화를 신고 그 길을 걷는다. 진돗개 할머니 집에서 주신 백구 두 마리, ‘봉팔이’ ‘춘자’ 와 함께 그 길을 걷는다. 흙길 주변에는 신기하게도 그 겨울에 다 죽었을 것 같던 들풀과 들꽃이 다시 새순이 올라오며 파란 생명을 뿜어 올린다. 비가 오면 빗물이 고스란히 땅속으로 스며들고 걸러져서 냇가로 흐르고, 생명을 길러내고 다시 증발하고 비가 온다. 모든 포장 걷어내기 캠페인이라도 벌이고 싶을 정도이다. 

   
     
 
얼마 전에 가수 장사익씨와 얘기를 나누다가 내가 “늦게 뜬다는 게 참 어려운데 장사익씨는 복 받으신 거예요” 했더니, 느릿느릿 특유의 말투로 들려주는 답이 기막히다. “꽃 두~, 늦게 피는 꽃이 있시유~. 목련 갸들은 성질이 급해 가지구 빨리 폈다 빨리 지지만, 가을 국화는 모진 추위랑 바람이랑 다 이겨내고 피드라구유~.”

나는 목련이 빨리 피고 지는 것까지는 봤지만, 가을 국화가 모질게 핀 모습은 본 일이 없어 가슴에 와닿지 않을 뻔했다. 그런데 우리 집 앞 개울가에 흐드러지게 핀 노란 들풀이, 가을 국화 ‘감국’인 줄 누가 알았으랴. 동네 분들이 알려줘서 새끼손톱만 한 노란꽃 냄새를 맡아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 그 작은 꽃 어디에 그리 강렬한 국화향이 숨어 있었는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는데, 심지어 다른 꽃이 다 사라지고 낙엽이 덮인 그 길에 오로지 홀로 산국화인 노란 감국만이 오랫동안 빛나게 피어 있었다.

시골에 산다는 건 몸을 머슴처럼 놀려야 한다는 뜻이다. 잡초와 풀 사이에서 땡볕과 씨름하고 통나무를 쪼개 땔감 준비하고, 나무 해충 방제해주고, 고추 모종 흙 북돋워주고, 어느 정도 고추대가 커지면 아래 이파리를 훑어내줘야 위에 고추가 크고 실하게 자란다. 비 오면 장대비를 맞지 않게 덮어줘야 하고, 집 앞 눈 치우고 모래 뿌리고. 가만히 있으면 집이 엉망이 되니 몸을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이 들고 한가할 때 시골로 갈 수도 있지만 나이 들면 더 편리한 곳으로 가고, 지금 젊은이가 이곳으로 위치 이동을 하는 게 맞다. 그래서 자연을 즐기고, 차고 청정한 공기를 마시고, 좋은 물 마시고, 자연에서 나온 먹을거리 먹고, 몸을 충전하고, 다시 힘을 얻어 직장에 나와 열심히 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호미〉에서 박완서 선생은 이렇게 얘기한다. “돌이켜보니… 자연이 한 일은 다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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