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받은 말(언)의 역사를 생각함
  •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 호수 21
  • 승인 2008.01.3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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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새로 쓴 역사〉
존 킹 페어뱅크 지음
하버드대학교 출판부 펴냄

미국에서 연수할 때 중국 문제의 대가인 페어뱅크 교수와 일본 문제의 권위자인 라이 샤우어 교수의 강의를 청강한 경험이 있고, 그들이 각각 한국에 왔을 때 담소한 일도 있어서 두 교수에게 애착을 느낀다. 페어뱅크(1991년 작고)의 유작이 되어버린 〈중국-새로 쓴 역사〉(China-a new history. John King Fairbank. Harvard University Press. 1992)를 뒤늦게 요즘 읽었다. 읽었다기보다는 영어로 훑어본다(browsing)는 표현처럼, 이곳저곳 소가 목초 뜯어먹듯 살펴본 것이다. 읽고 싶은 책이 너무도 많아 그럴 수밖에 없다.

보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마르크시즘과 마우쩌둥 사상’과의 관계라는 관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마르크시즘에서의 프롤레타리아트는 본래 도시 노동자를 중심한 개념인데 그것을 중국에서,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도 그랬지만, 무산자(無産者)로 번역하는 바람에 중국에서는 그 뜻이 땅 없는 농민 중심으로 이동해버렸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도시 노동자 중심이 아닌 땅 없는 농민 중심의 마오쩌둥 공산혁명이 가능했을 것이다.

페어뱅크는 ‘feudal society’의 번역에 대해서도 유사하게 분석했다. 그것을 봉건사회(封建社會)라고 번역하고, 그 뜻을 지주에 의한 소작인의 착취 제도로 무게중심을 옮겼다는 것이다. 서양에서의 feudal은 그런 뜻만은 아닌데 말이다.

말은 존재의 집이라고도 한다. 김춘수 시인의 시에 나오는 대로 꽃이라고 이름지어 부르니 꽃이 되어 오는 것인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보수적 사람들이 노무현 정권을 좌파라고 부른다. 한 지도급 인사의 경우 노 정권을 ‘좌익’이라고까지 표현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김대중 정권 때 나타나기 시작한 좌파 운운이 노무현 정권에 대하여는 보수 쪽 사람의 일상 언어가 되어버리다시피 했다.

   
     
 
그런 현상에 대해 언어나 개념상의 이의(異議)를 갖고 있던 차에, 영국의 〈이코노미스트〉(12월15일자)에서 관련되는 기사를 발견하고, 마침 어느 곳에서 글을 청탁하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이코노미스트의 한국 대선 관계 기사를 보면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리버럴(약간 덜 친기업적이고, 약간 덜 친미적인)’ ‘liberal in Korean sense(that is, slightly less pro-business and pro-American)’이라고 표현하면서 정동영 후보도 ‘리버럴’이라고 말하고 있다. 개혁 또는 진보라는 뜻이고 굳이 정치사상사 맥락에서 말하면 유럽식인 ‘사회민주주의’라 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민주당의 진보파나 그런 성향의 사람들을 ‘리버럴’이라 한다.”

유럽 같은 데서 좌파·우파 하는 것과 우리나라의 경우는 다르다. 광복 후 공산당과 피나는 투쟁을 했고 지금도 대립한 우리 현실에서 좌파 운운하는 것은 주술적으로 ‘친공’이라는 뜻을 함축하기도 한다. 그런 용어는 억압적 언어가 되고 때로는 폭력성을 띤다.

이승만, 박정희 정권 때 반공 이데올로기가 판을 치던 엄혹한 냉전의 시대에도, 예를 들어 진보당이나 통일사회당 사람들에 대해서 혁신계라고만 했다. 계속 혁(革)신계 운운하다 보니 ‘가죽신’이라는 농담까지 생겨 통용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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