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산 문화유산 만들기에 목매는 일본
  • 도쿄·채명석 편집위원
  • 호수 213
  • 승인 2011.10.22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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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만들기 위해 일본이 발 벗고 나섰다. 중국 우타이산을 본보기 삼아 문화유산 등재를 노리고 있다. 일본의 상징인 후지산이 탈락할 경우 자존심에 큰 상처가 날 수 있다.
일본의 상징이자 자존심이기도 한 후지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만들기 위해 일본 전체가 발 벗고 나섰다.

일본 문화청 산하 문화심의회는 지난 9월 초 후지산(3776m)과 24개 주변 시설, 가마쿠라 막부(12~14세기)의 본거지 가마쿠라(鎌倉)를 ‘사무라이의 고향’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정식 추천하기로 결정했다. 문화심의회는 내년 1월 말까지 정식 추천서를 작성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의외인 것은 후지산이 자연유산이 아니라 문화유산 후보로 신청된다는 점이다. 도대체 어떤 연유에서일까.

후지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운동이 시작된 건 1990년대에 들어서이다. 처음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2003년에 일본 국내 심사 기관에 신청했으나 등산객이 버리고 간 쓰레기와 분뇨가 산등성이에 넘쳐난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Reuter=Newsis
도쿄 시내와 후지산을 배경으로 한 항공촬영 사진.

이에 충격을 받은 후지산 인근 시즈오카 현과 야마나시 현 주민들이 후지산 정화 운동을 벌이고 산등성이 나무를 마구 깎아먹는 야생 사슴 등을 구제한 결과, 2007년 일본 국내의 잠정 후보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후지산이 과연 세계자연유산 등록 기준에 합치될 것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되면서, 후지산을 자연유산이 아니라 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로 ‘세계유산만들기 추진위원회’가 궤도를 수정한 것이다.

200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중국 산시 성의 우타이산(五台山·3058m)이 후지산의 ‘롤모델’이다. 중국은 불교의 성지로 널리 알려진 우타이산을 처음에는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합친 복합유산으로 등재하려고 했다. 하지만 ‘현저한 보편적 가치가 있는 지형·생물·경관에 해당’하는 자연유산의 기준에는 합치되지 않는다는 판정을 받았다. 결국 절과 탑 등 문화적 경관만 인정을 받아 우타이산을 문화유산으로 등록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후지산이 만약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정식 심사에서 탈락할 경우 일본인 전체의 자존심에 먹칠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추진위원회는 그런 불미스러운 사태를 막기 위해 후지산뿐 아니라 그 일대의 신사, 호수 등 25개 시설을 한데 묶어 ‘문화 패키지’ 형태의 문화유산으로 신청하기로 전략을 수정했다.

추진위원회에 따르면 후지산 일대는 일찍부터 예술의 원천, 민간 신앙의 대상으로 신성시되어 온 지역이다. 예컨대 후지산은 나라 시대 말기에 완성된 <만요슈(萬葉集)>(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 헤이안 시대의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당시의 궁중 생활을 묘사한 얘기) 등에 등장한다. 또 에도 시대의 풍속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齊)를 비롯한 일류 화가들이 후지산을 소재로 수많은 명화를 남겼다.

민간에 널리 퍼져 있는 ‘후지산 신앙’도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일본의 고유 신앙이다. 예컨대 후지산 산록에 있는 센겐(淺間) 신사는 후지산의 신령을 모시는 신사로 일본 전국에 방계 신사가  흩어져 있다.  

   
ⓒFlickr
등산객들이 일출을 보기 위해 후지산 정상에 올랐다가 이른 아침 하산하고 있다.

세계유산 신청 건수 제한이 걸림돌

그런데 일본의 ‘올인 작전’에도 불구하고 후지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정식 등재될지는 아직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첫째는 세계유산 등록 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어 세계유산위원회가 신청 건수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현재 세계유산은 모두 936건으로 그 가운데 문화유산이 725건, 자연유산이 183건, 자연과 문화를 합친 복합유산이 28건이다. 참고로 한국의 경우 1995년 석굴암·불국사를 문화유산으로 지정받은 데 이어 2007년 제주도의 화산도와 용암동굴을 자연유산으로 지정받아 현재 문화유산 9건, 자연유산 1건이 등재돼 있다. 북한도 2004년 고구려 고분군을 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세계유산의 지역 편중 현상도 날로 심해지고 있다. 예컨대 이탈리아 47건, 스페인 43건, 프랑스 37건, 독일 36건 식으로 문화유산의 절반이 유럽 지역에 편중돼 있는 반면 세계유산조약 체결국 187개국 가운데 34개국은 아직 한 건도 등록하지 못한 상태이다. 또 1997년 나폴리에서 열린 회의에서 이탈리아가 한꺼번에 10건을 등록해 등록 건수의 상한을 두어야 한다는 국제 여론이 높아갔다.

전문가 추산에 따르면 세계유산의 상한은 1500~2000건이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아직 구체적인 상한은 정하지 않았지만, 가맹국이 신청할 수 있는 세계유산 건수를 연 2건으로 한정하기 시작했다. 2014년부터는 다시 신청 건수를 연 1건으로 제한할 방침이다. 그래서 일본 문화청은 후지산을 2013년 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서둘러 국내 추천 절차를 마치고 정식 등록 신청서를 내년 1월 말까지 세계유산위원회에 제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두 번째는 과연 후지산 일대가 ‘인류가 공유해야 할 현저한 보편적 가치가 있는 문화적 재산’이라는 조건에 합치하느냐 하는 점이다. 세계유산위원회의 등록 기준에 따르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서는 △인류의 창조적 재능을 표현하는 걸작 △인류 가치에 중대한 의미를 내포하는 건축과 기술 △현존 또는 소멸한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이 유일하거나 희귀하다는 증거 △인류 역사상 중요한 시대를 예증하는 건축 양식 △어떤 문화를 대표하는 전통적 취락 △현존하는 예술적·문화적 작품 등 6개 조건 가운데 1개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이치 후지, 니 다카, 산 나스비(첫째 후지산, 둘째 매, 셋째 가지)’라는 속담대로 일본인에게 후지산은 영산 중 영산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후지산 일대가 과연 ‘인류가 공유해야 할 보편적 가치’를 갖춘 문화 재산이냐, 아니냐에 대한 판정은 2년 후 그 결론이 내려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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