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최근 개성공단을 방문했다. 한나라당 현직 대표로서는 첫 방북이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강력한 메시지로 부각되었다. 개성공단을 방문한 후 홍준표 대표는 정부의 대북정책이 유연하게 바뀌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개성공단은 남북이 경제공동체로 갈 수 있는 중요한 일이자 평화공동체로 가는 중요한 지점이기 때문에 5·24 조처 중 개성공단에 대해서는 좀 더 탄력적이고 유연하게 대처하도록 정부와 함께 노력하겠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리고 입주업체 대표들과 한 간담회에서는 이들로부터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개성~개성공단 도로 보수 △출퇴근 버스 운영 확대 △입주 업체 금융지원 따위 문제를 풀기 위해 정부와 협의하겠다고 했다. 기본 원칙을 유연하게 가져가면서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소할 의지가 있음을 밝힌 것이 핵심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홍준표 대표와 한나라당의 역할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홍준표는 왜 이 시점에 방북했나

홍준표 대표는 왜 이 시점에 방북을 택한 것일까? 그 스스로 “남북관계가 꽉 막혀 있기에 정치인의 책무는 막힌 것을 뚫는 것”이어서라고 대답했지만, 여태 가만있다 왜 지금인가. 남북관계를 이대로 두고 더 이상 시간만 보낼 수 없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작용한 것이 아닐까. 최근 안철수 현상 등으로 국내 정치판에도 지각변동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존 정치 패러다임이 거센 도전을 받고 있고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만큼 불투명성이 높아졌다. 금년 하반기 들어 강화되는 주변국의 한반도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 모색과 우리 내부 정치 지형의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안전판으로 방북을 서두를 필요가 생겼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을 포함한 남북 경협 사업자들은 5·24 조처는 물론이고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대북 압박 정책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보아왔다고 주장한다. 5·24 조처만 하더라도 애초 북한의 도발을 응징한다는 취지에서 모든 남북 경협을 중단시켰으나 북한에 미친 영향은 미미했으며 북한을 응징하기 이전에 우리 중소기업을 먼저 응징하는 결과가 되었다고 비판한다. 이 같은 불합리한 조처의 시정과 함께 대북정책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집권 여당이 더 이상 수수방관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홍 대표의 방북은 정부가 전면에 나서서 유연성을 보이기 어렵기 때문에 당이 먼저 길을 여는 사전 분위기 조성 차원에서 당과 정부가 역할을 분담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반도 정세의 변화라는 큰 틀에서 보면 현재 가장 두드러진 상황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재개 문제에 대한 논의가 부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6자회담 재개 과정에서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북 지원과 협력이 다양한 형태로 제기될 공산이 크다. 인도적 차원의 식량 지원은 물론이고 ‘9·19 공동선언’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제반 후속 합의의 이행 차원에서 에너지 지원을 비롯한 경제·문화 분야에서의 교류와 협력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 재개를 위해 10월에는 북·미 대화가 열릴 전망이다. 남북 간의 비핵화 회담은 이미 지난달 베이징에서 열렸다. 북·미 회담이 열리면 6자회담 재개와 북·미 양자 관계 진전을 위한 문제가 포괄적으로 논의될 것이다. 최근에는 그동안 중단되었던 미군 유해 송환 협상과 함께 미국 거주 한인 이산가족 상봉 등이 성사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북·미 관계의 진전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남북관계가 제자리걸음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금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홍준표 대표의 방북은 자신의 의지와 소신의 결과라기보다는 한반도 안팎의 상황이 그의 방북을 이끌어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물꼬를 텄다.

이제 그 다음이 문제이다. 홍 대표의 방북이 전한 메시지에 북한은 물론이고 국민과 국제사회가 주목할 것이다. 후속 조처 없이 단순히 이미지로 끝난다면 아니함만 못한 결과가 될 것이다. 대북정책과 관련해서는 여당이 건설적인 대안을 갖고 노력하면 야당의 협조를 얻어내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최근 세계 경제의 위기 상황을 겪으면서 정치 리더십이 중요함을 새삼 깨닫고 있다. 이것이 취약하면 국론이 분열되고 여야가 대립함으로써 해결점을 찾지 못해 위기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 홍 대표의 방북이 ‘나비의 날갯짓’이 되어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에서 우리가 주도적 구실을 하는 전환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기자명 이봉조 (전 통일부 차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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